올해 마지막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하얼빈'의 이야기는 이렇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서늘하고 위태로웠던 1909년, 그해 10월 26일 벌어진 하얼빈 의거를 둘러싼 안중근과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2022년 12월 윤제균 감독이 선보인 뮤지컬 영화 '영웅'에 2년 만에 다시 극장가에 문을 두드린 '안중근 영화'다.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안중근과 독립군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독립 투사들의 정신과 진심을 영화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하얼빈'은 기존 안중근 영화에서 보였던 '하얼빈 거사'에 중심을 두기보다 거사를 위해 거쳐온 과정에 집중하며 차별화를 뒀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뒤 전쟁포로를 풀어준 사건으로 입지가 흔들린 안중근이 이후 하얼빈 거사를 성사하기까지 이야기를 꽤 구체적으로 그린 것은 물론 처절할 정도로 외롭게 펼쳐냈다. 국권이 침탈당한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굳건한 심지로 거사를 행해야만 했던 장군 안중근의 면모 이면에 담긴 인간 안중근의 고뇌와 갈등을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하얼빈'이다.
배우들의 열연도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던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으로 변신한 현빈은 지금껏 영화에서 보였던 안중근의 모습과 전혀 다른 해석으로 '하얼빈'의 중심을 잡는다. 먼저 간 동지들의 목숨으로 괴로움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안중근. 의(義)를 위한 신념과 동지들을 향한 믿음, 그리고 가슴 한켠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죄의식의 무게를 오롯이 안고 견딘 안중근의 숭고한 정신이 현빈을 통해 완벽히 재현됐다. 현빈의 쓸쓸함과 강인함이 공존된 눈빛이 안중근의 고뇌와 외로움에 융화돼 가장 인간적인 안중근을 완성한 것. 특히 영화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얼어붙은 강을 걸어가는 현빈의 처연함과 묵직하게 읊조리는 내레이션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울리는 '하얼빈'의 백미 중의 백미다. '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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