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MBC 금토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김지운 극본, 박상우, 위득규 연출)은 동명의 웹 소설이 원작인 미스터리 멜로드라마이다. 주 무대는 대통령실, 방송사, 메이저 신문사 등이고 주인공들도 모두 교육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분위기는 매우 어둡다. 원작을 떠나 드라마 자체로서의 무게감이 꽤 묵직해 철학적 깊이가 만만치 않다.
과거. 클럽의 무명 가수 김연희는 클럽 사회자 나진철(박원상)과 눈이 맞아 딸 희주(채수빈)를 낳고 결혼했지만 이혼한 후 청운일보 홍일경과 재혼했다. 일경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인아(한재이)와 아들이 있다. 어느 날 사고로 막내는 죽고 인아는 청각을 잃지만 희주는 멀쩡하게 발견된다. 연희는 그들 모녀의 안위에 커다란 위협을 느낀다.
이에 혼자만 무사한 희주를 원망하며 생존을 위해서는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이후 희주는 함묵증에 걸린 채 성장한다. 백사언(유연석)은 정치 명가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백의용에 이끌려 일경 가족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때 희주를 알게 되었다. 성장해 방송사 아나운서로 근무하다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스카우트되었다.
3년 전 일경과 의용은 정략적으로 사언과 인아의 혼인을 결정하지만 결혼식 전날 인아가 사라지자 일경은 대타로 희주를 내세운다. 사언은 아내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긴 채 집에서는 희주와 남남처럼 살아왔다. 한 괴한이 희주를 납치한 후 사언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한다. 하지만 사언은 희주에게 조금도 관심 없으니 해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희주는 괴한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탈출한 뒤 그것으로 매일 밤 10시 사언에게 변조된 목소리로 전화해 협박하는가 하면 "희주와 이혼하라."라고 요구한다. 사언은 그 목소리 파일을 행정관에게 건네 정체를 파악하라고 지시한다. 희주의 직업은 수어 통역사. 어느 날 사언이 청와대에서 수어 통역사를 뽑으니 시험에 응시하라고 희주에게 제안하는데.
연희는 희주가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희주는 연희와 문자로 소통한다. 그녀가 유일하게 언어로 대화하는 상대는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 중인 진철. 주인공인 사언이 대통령의 말을 대신 전하는 대변자라면 희주는 화자의 말을 듣고 농아에게 수어로 통역해 주는, 역시 대변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 작품의 주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언어와 소통이다. 동물은 울음소리, 행동, 냄새, 소변과 대변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서로 소통을 한다. 그들의 언어는 소리, 페로몬, 액션, 배변 등인 것. 하지만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약 5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절부터 인류가 확실하게 언어를 사용했다고 본다. 10만 년 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언어와 문자는 소통에서 매우 중요하다. 수세식 화장실이 귀하던 과거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한 사람이 공중 화장실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밖의 사람이 "똥 눠?"라고 물었다. 안의 사람이 "똥 눠!"라고 답했다. 밖의 사람이 "똥 눠~."라고 말하며 갔다. 여기서 세 대화의 문자는 모두 같다. 하지만 억양과 뉘앙스 등이 다르다.
희주가 납치범 캐릭터가 되어 사언에게 전화를 거는 이유는 지난 3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약 20년 동안 언어의 중단을 강요당했고, 스스로 소리를 삭제하고 살아온 희주. 올바른 발음과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뉴스 등의 정보를 전달했으며 지금은 대통령의 공식적인 의견과 정책을 대변해 주는 일을 하는 사언이 부부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 작품은 버트런드 러셀부터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롤랑 바르트까지 아우르며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 혹은 거부를 거론한다. 러셀에 따르면 세계는 서로 독립해 있는 원자적 사실들이 서로 결합해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 명제이다. 명제는 무엇인가? 참 혹은 거짓을 가진 선언이고, 주장이며, 의견이니 곧 소통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적 철학자로 칭송받는 비트겐슈타인의 분석 철학은 '철학은 형이상학적 탐구가 아니라 언어와 기호의 이해와 탐구이다.'라는 명제를 던졌다. 알다시피 철학은 모든 학문의, 특히 과학의 어머니이다. 사언은 언어를 통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희주는 수화 언어라는 기호를 통해 부당하게 언어를 빼앗긴 사람들의 입과 귀가 되어 준다. 소통이다.
문제는 사언에게 있었다. 언어는 참 명제이어야 하고, 참으로 대화할 때 참다운 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대화가 없는 게 제일 나쁘다. 희주가 말할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된 사언은 "왜 감추었냐?"라고 묻고, 희주는 "누구나 비밀은 있는 법이다. 당신은 내게 숨기는 게 없느냐?"라고 글로 반문한다. 사언은 부하 직원에게 "아내에게 감춘 비밀이 있느냐?"라고 묻고 긍정을 듣는다.
바르트는 현대 신화학을 통해 신화와 전설은 물론 현대의 광고, 영화, 드라마 등 거의 모든 콘텐츠에 숨겨진 메시지와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소쉬르는 기호(언어)를 기표(발음)와 기의(이미지)의 합으로 보면서 기표를 더 강조했지만 바르트는 기의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기표의 표면적 의미 자체가 하나의 기표로 작동해 숨겨진 다른 의미를 만든다고 본 것.
언어(기호, 문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최전선의 수단이다. 한 나라의 언어와 문자와 기호는 같은 모양과 음성일지라도 발화자의 의도와 감정과 표현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파랗다'와 '퍼렇다'가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진심 어린 대화를 하고 있느냐?'라고. 신조어를 버리고 맞춤법을 지키라면서.
유진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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