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데뷔작 <변호인>과 두편의 <강철비>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스크린 밖의 무거운 현실을 돌아보게끔 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양우석 감독이 선택한 다음 작품은 가족영화다. <강철비2: 정상회담> 개봉 당시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에서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하며 “따뜻하고 가벼운 가족 이야기를 웃으며 가볍게 찍고 싶다”고 밝혔던 양 감독 말처럼, <대가족>은 분명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띨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과연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편히 웃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 <대(對)가족>은 그래서 어느 순간만큼은 <변호인>이나 <강철비>보다 더 현실적이고 묵직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영화다. 양우석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가 관객 입장에선 코믹 휴먼 드라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연출자로선 이전 작품들과 <대가족>이 같은 결을 지닌 영화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 전작의 주요 소재를 떠올려보면 양우석 감독의 가족 코미디 영화를 의외의 선택이라고 느낄 관객이 많을 것 같다.
= 인정한다.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사실 전작과 같은 결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변호인>으로 과도한 사랑을 받은 이후, 한동안 관객들에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리는 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삼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시기의 최대 화두를 가족문제로 봤다.
- 어떤 점에서 같은 결의 영화라고 할 수 있나.
= 지금까지의 영화들 모두 자신에게 달리 선택권이 없는 ‘갇힌 사람’들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 그렇다. <변호인>은 법을 지키지 않는 법조인들 때문에 갇힌 사람들을, <강철비> 시리즈는 강대국들의 선택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했었다. <대가족> 또한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영화는 평만옥에 갑자기 나타난 어린 민국과 민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아이들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갇혀 있는 상태다. 무옥(김윤석)과 문석(이승기)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무옥은 유일한 자식이 승려가 되었기에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갇혀 있고, 문석도 출가를 하긴 했으나 과거 속세에서 행한 업보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상황이다. 이들 삼대가 변해가는 과정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 세 그룹의 사연이 영화에 적절히 분배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 <대가족>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장르이지만 개인적으론 전작들에 비해 구조는 훨씬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에서 이렇게 다수의 그룹에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건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작업임을 알고 있어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지금의 장르를 선택한 것도 관객들이 레이어가 복잡한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영화에 플래시백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 가족 이야기를 영화의 소재로 삼은 이유, 이 문제를 지금 시기의 가장 큰 화두로 본 이유는 무엇인가.
= 무조건적으로 가족을 지키자, 결혼을 하자 같은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가족을 바라보는 개인들의 시선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다 함께 곱씹어볼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 가족문화만큼 형태나 그 의미가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없지 않나.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부터 그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영화의 배경을 2000년으로 설정한 것도,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대한민국만큼 큰 변화를 겪은 나라가 인류사적으로 봐도 드물다는 생각에서다.
- 그 시기에 벌써 정자 기증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설정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꽤 많이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2000년에 실제로 수십만쌍의 난임부부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 영화처럼 의대생이 기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 가족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을 소재로 하다 보니 자칫 막장 드라마처럼 전개될 수도 있지 않나.
= 처음부터 담백한 톤을 목표로 했다. 그러다 보니 극에 뚜렷한 악역이 없다. 인물들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가 악역인 셈인데, 그 자극이 너무 셀 경우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이 영화의 본질을 흐릴 거라 판단했다. (영화 속 주요 소재인) 만둣국 자체도 좀 담백한 편 아닌가. (웃음)
- 무옥이 파는 음식이 만두인 이유는.
= 원칙적으로 만두는 설에 먹는 명절 음식이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먹는 음식이라는 점이 중요했고, 무옥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가 얼마만큼 과거형 가족에 얽매여 있는 사람인가를 잘 설명한다고 봤다. 평만옥은 인사동에 있는 취야벌국시라는 만두 가게를 모델로 했는데,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만두가 무옥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 사전 시사회를 통해 접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 많은 분들이 울컥했다는 감상을 남기셨다. 그런데 내 판단으로는 영화 자체가 그런 감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본다. 시나리오를 쓰고 편집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신파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보면서 울음이 나오려고 하면 그 장면을 과감히 편집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울림을 느꼈다면 그건 영화를 보는 동안 각자의 가족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후반부 문석이 엉겁결에 끌려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염불을 외우다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마음에 남는다.
= <대가족>의 화두인 어머니와도 관련 있는 장면이다. 문석이 출가한 결정적인 이유임과 동시에 아버지 무옥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된 근원적 계기와도 연결돼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관객들이 최대한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캐릭터들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재미있게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대가족> 속 이 장면
“문석은 지나가던 스님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인해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예정에 없던 염불을 외우게 된다. 직전 장면에서 무옥에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투었던 문석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면, 이를 떠올리며 웃을지 눈물 흘릴지는 각자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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