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에는 정석이 없다. 또 최고의 배우자감은 결국 '개취'(개인의 취향)에 달렸다. 쪼는 맛이 일품인 MBC 금토극 '지금 거신 전화는'(극본 김지운, 연출 박상우)이 글로벌 팬덤을 일으키며 이를 확인시키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남이 왜 민폐녀에게 끌리는 걸까. '지금 거신 전화는'은 이러한 의문을 품게 하며 안방팬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물론 내가 꽂히면 그만인 게 사랑이란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랑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거신 전화는'은 여러모로 남다른 스타일의 로맨스물이 되고 있다.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지금 거신 전화는'은 일명 로맨스 스릴러물. 그러나 비장한 음악을 배경에 깔고 배우 유연석의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에 집중하며 극 초반을 납치, 협박, 방화 등 위험천만한 소재들로 휘몰아칠 때만 해도 로맨스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스릴러에만 무게가 실린 듯했다.
유연석이 맡은 백사언은 간판 앵커 출신 대통령실 대변인. 인질 협상 전문가라는 특이한 이력도 있다. 뛰어난 언술과 냉철한 판단력,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로 매사에 칼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게다가 정치 명망가 출신의 여당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의 외아들이기도 하다. 이렇듯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엘리트인데, 그가 아내로 선택한 홍희주(채수빈)는 많은 이들의 눈에는 뜻밖일 수 있다.
원래 백사언의 정략결혼 상대는 아버지의 대선 레이스를 도울 청운일보 사주의 큰딸 홍인아였다. 백사언은 홍인아가 파혼을 요구하자 동생 홍희주를 대타로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공식석상에서는 홍희주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래서 백사언과 홍희주는 결혼 3년차에도 부모 앞에서나 부부 행세가 가능한 쇼윈도 부부다.
홍희주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서글픈 운명이다. 수어 통역사로 커리어를 키우며 존재감을 곧추세우고 있지만, 집안에서도 매정하게 선을 긋고 몰아붙이기 일쑤인 백사언 앞에서는 한없이 위축되는 게 현실이다. 쭈글이 같이 살면 못난이 같아지는 게 인생이건만 홍희주가 딱 그렇다
그런 홍희주가 납치됐다가 간신히 탈출했는데, 협박범의 전화기로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해 협박범 행세를 한다. 공사다망한 남편에게 이게 무슨 유치한 복수인가. 시청자들의 눈에는 전문팀까지 꾸려서 협박범을 쫓는 백사언에게 홍희주는 소위 민폐녀가 아닐 수 없다. 백사언이 권위주의적인 우월감으로 홍희주를 통제하려는 게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만큼 부부 사이가 단절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 사이의 견고했던 얼음장벽이 협박 전화를 계기로 깨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일어나 큰일이 난 듯하지만,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홍희주에게 송곳 같이 말하는 백사언도, 백사언을 원망하는 듯 이혼을 이야기하는 홍희주도 서로를 향한 진심은 사랑이었던 게 낱낱이 밝혀지는 중이다.
결국 '지금 거신 전화는'은 스릴러를 앞세웠을 뿐 실체는 러브스토리임이 4회에 이르러서야 확인됐다. 또한 주변에서 아무리 이렇다저렇다 많은 말을 해도 사랑은 제 눈에 안경인 것 역시 입증되고 있다. 쪼아대고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조차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이다.
드라마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본팩토리와 바람픽쳐스가 공동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높이고 있다. 당장 올해만 해도 '선재 업고 튀어', '손해 보기 싫어서' 등으로 대성공한 로맨틱 코미디 명가 본팩토리와 '킹덤 : 아신전'(2021), '최악의 악'(2023), '무인도의 디바'(2023) 등을 통해 다크호스로 떠오른 바람픽쳐스가 손잡고 살벌한 로맨스물을 내놓은 것이다.
동명 원작을 바탕을 하면서도 드라마에 맞게 새롭게 기획·각색해서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펼치고 있다. 배우 유연석과 채수빈의 케미스트리를 무채색의 단조로운 화면에서 재구성하는 연출 방식도 흥미를 자극한다.
총 12부작으로 이번 주말에야 반환점을 도는 상황이라 극적 긴장감도 계속 높이고 있다. 여전히 협박범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사라졌던 홍인아(한재이)가 다시 돌아오며 백사언과 홍희주 부부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시점이다. 홍희주의 대학선배라는 지상우(허남준)를 비롯해 홍인아의 꿍꿍이가 무엇일지, 나아가 이들이 백사언과 홍희주의 관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예의주시하게 되는 순간이다.
여느 로맨스물 속 달콤한 핑크빛 사랑의 큐피트가 아니라 살벌한 무채색 포스로 팬들의 마음를 정조준하고 있는 '지금 거신 전화는'이다. 으스스한 추위까지 겹친 어수선한 시국의 안방극장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로맨스물이 또 있을까 싶다.
조성경(칼럼니스트)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465/0000009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