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8부작 중 1~5회에 대한 리뷰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노인지(서현진)와 한정원(공유)은 몸 깊숙한 곳에 새겨진 상흔을 들여다보는 법을 모른다.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다시 한번 그 안으로 애써 편입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1년간 계약결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2015년 출간된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9일 공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극본 박은영·연출 김규태)는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탐구한다. 각자 지녔던 보이지 않는 상처는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감정에 닿아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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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이란 제도를 해부하는 영리한 시선
드라마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속성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낸다. 또 이를 영리한 시선으로 해부한다.
서로를 소유물로 여기며 통제하려는 한정원과 이서연의 결혼생활. 임신을 원치 않았던 이서연과 이를 눈치 채지 못했던 한정원의 뒤틀리는 관계. 노인지와 함께 일하는 윤지오를 만나 그 역시 계약결혼하는 이서연의 새로운 소유욕. 이 모두 알면서도 길들여지는 일종의 먹이사슬인 셈이다.
그럼에도 노인지와 한정원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발을 맞춰가려 노력한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채색의 관계에서 각자가 지닌 색을 도포하는 듯하다. 특히 3화에서 노인지와 한정원이 음악에 맞춰 탱고를 추는 장면에서 서로의 발을 밟고 넘어지기 일쑤인 두 사람의 모습은 "탱고는 파트너 없이 못 춰요"라는 노인지의 말처럼 결혼은 결국 관계를 맺어가는 것임을 형상화한다. 서로 어색하게 발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결혼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트렁크'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반기를 들거나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사람과 결합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과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들에 대해 그려나간다. "사람은 혼자인데 외롭다고 그걸 잊어요. 혼자가 아니면 어떻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겠어요?"
'트렁크'는 노인지의 대사처럼 혼자이기에 사랑을 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외로운 인간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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