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 현시점 기준 마지막 단 한 회만 남겨놓고 있어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WB 아마 실눈 뜨고 보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같이 보자고 해서 저희 집에 모이기로 했어요. 최초예요. 제 작품을 누군가와 같이 보는 게. 기절할 것 같습니다.
GQ 원래 이렇게 낮은 목소리에 차분한 말투예요?
WB 원래 목소리는 낮아요. 목소리는 낮은데, 최근에 저도 소름이 좀 돋았던 게 친구랑 얘기하다 “너무 화가 나” 하는데 순간 하빈이 말투가 나오는 거예요. 저만 느낀 줄 알았는데 친구도 너 방금 되게 장하빈 같았다고, 둘 다 하던 얘기는 온데간데없고 “뭐야? 방금 뭐야?” 그랬어요. 말투에는 아직 하빈이가 남아 있나 봐요. 평소의 저는 끝을 맺지 않는 식으로 매끄럽게 얘기하는데 하빈이는 툭툭 끊어 말하는 게 있어요.
GQ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를 고요하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채원빈이라는 신인이 궁금했어요.
WB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중략)
GQ ‘이친자’ 제작 발표회 때는 어째서 울먹였어요?
WB 그런 적 처음이에요, 진짜. 너무 웃겨.(하늘을 올려다보며 부채질을 한다.) 왜 자꾸 울먹거리지. 저 슬프지 않아요. 젤리, 젤리 먹어야겠다.(웃음)
GQ 그때 말을 끝맺지 못했죠. “촬영 초반에 ‘하빈아 지금 감정이 너무 갔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집에 가면 많이···”, 하고. 많이 울었어요? 많이 욕했어요? 많이 욱했어요?
WB 욱하고 울고 그랬어요. 집에 가면 화가 너무 나는 거예요. 왜냐면, 아니 왜 그렇게 못 찾지, 스스로? 모르겠는 것투성이인 거예요. 감사했던 게, 감독님한테 많이 의지했어요. 저한테는 지팡이였어요. 한석규 선배님도 물론이고. “집에 가면 많이···”라는 그 말은 감정을 해소할 것이 필요하다는 게 주였어요. 사람이 슬프면 울어야 되고, 화나면 화내야 되고, 그게 표출이 돼야 안이 비잖아요. 근데 늘 이만큼 느끼고 못 비우고 집에 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차에서도 울고 그랬어요.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은 아닌데 그걸 터뜨리는 방식이나 정도가 남들과 다른 인물이니까. 분명 오늘 하빈으로 느낀 슬픔이나 분노는 막 여기까지 있는데 제가 그거를 어떻게 하고 오질 못 하니까 집에 가면 너무 슬픈 거예요. 그때 그 생각을 하다가 제작 발표회 때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언젠가를 기점으로 더 이상 그렇게까지 고민하지 않게 됐어요. 하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한 고민은 좀 줄고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GQ 예를 들면 “아빠랑 같이 사는 건 너무 힘들어”라는 대사 톤이 연습 영상과 실제 드라마에서 달라요. 그 간극을 좁힌 채원빈의 시간이 있었겠죠.
WB 맞아요. 그 신을 10번 넘게 갔어요. 너무 울어서 목이 메어 목소리가 안 나와서 못 쓴 것도 있고, 잘 시작했다가 과해져서 못 쓴 것도 있고, 또 (감정을) 줄이려다 보니까 무의 상태로 하게 돼서 그건 끝까지 가지도 못 했어요. 제가 진심으로 하는 게 아니면 저도 느껴지니까 밍구스러워서. 그래서 그때 “죄송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하고 구석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석규)선배님이 오셔서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너한테나 남한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나오는 대로 일단 해봐라” 하셔서 그렇게 한 게 OK 됐어요. 감독님께서도 계속 “넌 할 수 있어. 너만이 할 수 있어” 격려해주시고. 함께 계속 얘기 나눠주셨기에 찾아갈 수 있었어요.
GQ 원래 관찰력이 뛰어난 편인가요? 한석규 배우가 “어, 내가 그렇게 하지. 너 들었구나?” 했죠. “선배님은 촬영 전에 항상 혼잣말로 ‘보고, 듣고, 반응하고’를 되뇌어요”라는 원빈 씨 말에.
WB 맞아요. 선배님은 진짜 그렇게 하세요. 순간에 집중하시려는 모습이 되게 멋져 보였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주변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관찰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니까 더 보게 되는 게 있어요.
GQ 원빈 씨 스스로 되뇌는 말은 무엇인가요?
WB 선배님께서 그러시는 걸 보고 제가 그거를 써먹었어요.(웃음) 진짜 도움이 되더라고요. 원래 혼자 되뇌는 말은 없었는데. 무언가···, 10년 뒤에 난 어떤 사람일까? 2 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혼자 있을 때 많이 해요. 그럴 때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선배님이랑 같이 작품을 하면서 ‘아, 나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가 생겼어요.
GQ 원빈 씨의 시선에서는 어떤 어른인데요?
WB 어떤 상황에서든 따뜻한 분이세요. 그 점을 닮고 싶어요. 선배님이랑 함께 일하면서 선배님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궁금하니까,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찾아봤는데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있더라고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 그렇게 되고 싶어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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