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다. 오히려 친숙하다.
tvN이 23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토일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극본 임예진, 연출 박준화)는 연혁 오래된 남녀간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는 로맨스물이다.
최근만 해도 JTBC ‘웰컴투 삼달리’(2023.12.02.~2024.01.21), tvN ‘엄마친구아들’(2024.08.17.~10.06)을 통해 이미 친숙해진 설정이다.
상세보기로 들어가면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웰컴투 삼달리’와 가깝다. ‘삼달리’의 조용필(지창욱 분)과 조삼달(신혜선 분)은 한 날, 한 시 이웃에서 태어났다. ‘외나무다리’의 석지원(주지훈 분)과 윤지원(정유미 분)도 마찬가지다. ‘삼달리’에선 성이 같았고 ‘외나무다리’에선 이름이 같다. 대신 ‘삼달리’에선 조용필 모가 ‘부미자(정유미 분)’, 조삼달 모가 ‘고미자(김미경 분)’로 엄마 이름이 같았다.
친하게 지내다 원수가 되고 만 가족 에피소드도 닮아있다. 동네 절친였던 ‘삼달리’의 두 가족은 해루질 나선 고미자를 구하려다 부미자가 죽은 후 갈라선다. 용필 부 조상태(유오성 분)는 고미자를 원수로 여겼다. ‘외나무다리’에서 석지원 부 석경태(이병준 분)는 윤지원 조부 윤재호(김갑수 분)로 인해 사업을 망친 전력 때문에 원한이 깊다. 그 전까진 후배 아버지로, 동네 어른으로 윤재호를 섬겼었다.
어린 날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일찌감치 서로에 대한 서로의 마음이 우정 아닌 연정임을 깨닫는다. 늦도록 제 감정을 몰랐던 ‘엄마친구아들’의 주인공들과는 차별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몬테규와 캐플릿처럼 앙숙이 된 집안문제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삼달리’에선 조삼달이 떠났고, ‘외나무다리’에선 석지원이 떠났다. 조용필과 윤지원은 각각 기상청 예보관과 모교 체육교사로 고향을 지킨다.
달라진 점은 이후다. 세계적인 포토그래퍼로 성장한 조삼달은 ‘갑질 논란’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진 채 도피귀향을 하고, 석반건설을 배경으로 건설·레저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석지원은 모교부지를 골프장으로 만들기 위해 재단을 차지, 점령군처럼 이사장으로 금의환향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18년 만의 귀향이다.
남녀주인공의 심리적 스탠스도 다르다. ‘삼달리’의 조용필과 조삼달은 서로가 서로를 떠났다고 오해했다. 2화까지 방영된 현재 ‘외나무다리’의 석지원과 윤지원도 그런듯하다. 하지만 조용필은 조삼달의 의지처가 되길 자처했고 윤지원은 석지원을 극혐한다.
2회까지 방영된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의 줄거리를 간추려보면 독목고 체육 교사 윤지원은 할아버지이자 독목고의 이사장인 윤재호가 과거부터 원한 관계인 석반건설 석경태에게 재단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석경태의 아들이자 자신의 첫사랑 석지원과 마주칠 것을 걱정한다.
석지원 역시 윤지원이란 이름은 거북하다. 그 와중에 동창으로부터 윤지원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나를 잊었을 수가..”싶은 오기로 한사코 거부하던 이사장직을 수락한다.
감기 기운으로 신열에 들떠 있던 윤지원은 새 이사장을 소개받는 자리에서 오래된 웬수 석지원의 모습을 발견하고 볼꼬집으로 상견례를 대신한다. “그럼 그렇지. 지가 나를 잊을 리가 있나!” 볼은 꼬집혔지만 석지원은 흐뭇하다.
윤지원이 참석한다길래 끼어든 창의체험부 회식날 담배 피러 나왔던 석지원은 윤지원이 보건교사 홍태오(김재철 분)에게 고백을 거절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제가 차인양 울분에 찬다. 윤지원이 민망할까 몰래 빠져나오려던 석지원은 들통에 엉덩이가 빠지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하는 불상사를 당하고 윤지원에게 기어이 들켜버린다.
윤지원으로선 자신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다른 누구도 아닌 석지원에게 들킨 것이 못내 자존심 상한다. 그 판에 회식자리의 동료선생들은 옛 인연을 들먹이며 석지원과의 교제를 종용하고 윤지원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사장님이랑은 안 사귑니다. 이 지구에 둘만 남아도 혼자 늙어 죽을 겁니다.”고 단언한다.
들통에서 겨우 빠져 나와 들어서던 석지원은 윤지원의 그 단언에 호승심이 불타오른다. 마침 대화는 4년째 피지 않고 있는 독목고의 전설 ‘미친 라일락’으로 옮겨갔고 석지원은 이사장직을 내걸고 윤지원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나랑 연애합시다. 라일락 꽃피면!”
‘선호영역이론’이란 게 있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하고 익숙한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에 마케팅 분야에서도 ‘익숙함’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고 한다.
1년 남짓의 시간에 세 편의 드라마가 비슷한 설정을 차용한 것도 여기서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또한 그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익숙한 사랑찾기에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막 시작한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가 그 익숙한 설정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갈 지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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