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환은 완전히 지금
<미스터 플랑크톤>은 제목만큼이나 엉뚱한 로맨틱코미디다. 엉뚱한 ‘씨’로 잘못 태어나 가족 없이 방랑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해조는 결혼 직전 뜻밖의 이유로 절망에 빠진 전 연인 재미와 동행하게 되고 재미의 결혼 상대였던 어흥이 그 뒤를 쫓게 된다. 설명만 들어서는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우도환은 바로 그 문제의 ‘미스터 플랑크톤’ 해조를 연기했다.
<미스터 플랑크톤>에 함께 출연한 오정세는 우도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 봤을 때는 해조처럼 자유분방한 타입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촬영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해조가 돼 있는 거예요. 되게 신기했죠.” 해조는 방랑하는 인물이다. 어느날 종양으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인물이다. 하지만 우도환은 스스로 자기 삶의 규격을 정하고 적절히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편인지라 해조와는 정반대 유형의 삶을 살아왔다. 우도환이 해조를 연기한다는 건 자신과 다른 삶을 이해하는 여정이었다. “해조는 사실 저랑 너무 다른 타입이에요. 완전 정반대죠. 저는 무모하게 막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해조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점점 알게 됐어요. 이 친구는 무모한 게 아니라 방랑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계속 자신만의 선택을 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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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운명은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아요. 어쩌다 우연히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이라면 그게 바로 그 운명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결국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게 중요해요. 그걸 운명이 한다면,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그렇다면 만약 플랑크톤처럼 사람이 아닌 무엇이 돼야 한다면 우도환의 선택은? “수명이 가장 짧은 생물? 최대한 빨리 죽고 싶어요. 그래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겠죠. 가능하면 지금처럼 계속 살고 싶은데요.” 지금 이외의 무엇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듯 단호하게, 우도환이 말했다. 엉뚱함과 실없음조차 끼어들 겨를 없이 완전히 지금.
이유미는 너무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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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배우로 사는 게 좋았어요. 연기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죠. 연기하는 게 저는 정말 재미있거든요.” 연기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유미가 <미스터 플랑크톤>에서 재미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만난 것이 운명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이런 사랑을 했고 이런 삶을 살아온 이 캐릭터는 어떤 감정으로 살아갈까? 재미를 연기하며 세세한 감정이나 습관을 돌아보게 돼요. 힘든 삶을 살았지만 솔직하고 강단있는 친구예요.” 역설적이지만 <미스터 플랑크톤>의 재미는 불운한 여자다.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 갖고 싶었고, 그래서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뜻밖의 불운과 맞닥뜨린다. 대를 잇기 위해 종갓집 며느리라는 삶을 선택하자, 조기 폐경이라는 뜻밖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추구하던 행복의 가능성이 삽시간에 붕괴된 이후로 찾아온 건 뜻밖의 재회와 방황의 여정이다.
“재미가 엄마가 돼서 화목한 가족을 꾸리고 싶었던 건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그 기회가 사라지니까 방황하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거죠.” 삶이란 이렇듯 명확하다고 여긴 목적지에서 이탈한다 하여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젠가 같은 것이 아니다. 갖고 싶은 삶이 아니라 해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죽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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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마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요즘 들어 ‘아, 이거 로코 맞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찍을 때는 ‘웃기긴 하는데 이게 로맨틱코미디가 맞을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죠.” 그러니까 결국 어디든, 무엇이든, 연기는 너무 재미있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이다. 이유미가 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건 이처럼 너무너무.
둘도 없는 단 하나의 오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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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죠. 이름부터 ‘어흥’이잖아요. 이런 이름이 어디 있어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인물들이 땅을 밟고 있더라고요. 연기하다 보니 현실감이 느껴졌어요. 그때 알았죠. 아, 다들 자기가 맡은 인물이 됐구나.” <미스터 플랑크톤>에서 오정세가 연기한 인물은 이름부터 심상찮은 ‘어흥’이다. 유서 깊은 종갓집 가문의 18대 종손 5대 독자다. “어흥이는 다 처음이더라고요. 사랑에 빠진 것도, 엄마의 말을 거역하고 혼자 떠나는 것도 다 처음이에요. 그래서 참 순수하게 느껴졌어요. 처음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어흥이는 ‘순수’와 ‘처음’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인물 같아요.”
퍼뜩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만약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면? “공기나 바람? 주변에 늘 있지만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잖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까.”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마치 세상에 없던 것을 처음 본 기분? “처음으로 같이 작품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니까요. 만약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거예요.” 오정세에 대해 우도환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런 것만 같았다. 둘도 없는 단 하나의 배우이자 사람.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오정세로 다다르게 만든 힘 아닐까,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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