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욱은 자신의 몸만한 결혼사진과, 그에 못지않게 큰 짐가방을 들고 옥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방 한쪽에 결혼 사진과 짐가방을 두고, 자신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곱게 차려입은 지욱과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욱의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해영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둘이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결혼을 한 사실 자체는 선명하게 사진으로 남아있어서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게, 싸늘한 방만큼이나 허전했던 지욱의 마음을 채워주기도 했다.
쿵쿵. 누군가가 옥탑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욱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해영이었다.
"손님?”
이 밤중에 갑자기 왜 올라왔지.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해영이 천천히 지욱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눈을 감고 지욱에 입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지욱은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님이 나에게 키스를? 하지만 입술에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에 지욱의 눈도 천천히 감기고, 지욱의 팔이 해영의 허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 순간, 해영이 지욱에게서 떨어졌다.
“다행이다.”
헤영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지욱은 적잖게 당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큰일날 뻔했어 지금."
"네?"
헤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근조근, 상황 설명을 하였다. 방금 전에 자연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알고보니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안우재가 해영의 집 앞에 있었고, 지욱이 짐가방과 결혼사진을 들고 옥탑방으로 가는 것을 모조리 보고 있었단다. 다행히 둘이 키스하는 것을 보고선 혼비백산해서 가긴 했는데, 어찌되었든 간에 해영의 입장에선 십년 감수할만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안우재가 보고 있어서.. 아..안우재 때문에 나한테,”
해영이 자신에게 달려들어 입맞춤한 이유가, 옥탑 올라오기 전에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고작 안우재 때문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지욱은 허탈해졌다. 하지만 해영은 안우재를 욕하느라, 지욱의 상처받은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너무 의심스럽잖아. 아니, 집들이 끝나고 남편이 결혼사진들고 짐가방 들고 나갔다가 안들어오면. 아이씨 안우재 쟤는 간 지가 언젠데, 갔다가 다시 온건가? 야 설마, 눈치챈 거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해?”
서늘한 지욱의 목소리를 들은 해영이 순간 멈칫했고, 올려다본 지욱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손님 지금 나한테 키스했어. 나는..”
나는 손님이..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 마음은 지금 이 곳에 와 있고, 손님이 원하면 손님과 썸도 타고, 연애도 할 수 있다는 그런 내 말을 알아듣고, 나랑 잘 해보려고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처음.. 이었어?”
손님은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고, 그럴 마음도 없었구나.
“아, 어떡해 너무 미안해. 아, 진짜 미안해.”
“하.”
손님은 그저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단순히 첫키스를 도둑 맞아서 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구나. 지욱은 새삼, 해영이 자신과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둘은 평행선처럼 교차점 없이 서로 나란히 달리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같은 방향을 보고 걸을 수는 있어도, 절대 마음이 닿을 리는 없는, 그런 관계.
'나는 몸과 마음이 세트야. 마음없이 그러는 건 절대 안돼.'
나는 분명히 이야기 했는데. 그런거 싫다고. 그런데 손님은,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허락도 없이 거짓으로 나에게 키스했어.
“아니.. 너는 핸드폰도 놓고 가고 씨, 안우재가 보고 있고 나 너무 급해가지고..”
“급하면, 키스도 할 수 있구나? 가짜로.”
“야, 키스라니? 아, 그냥 우리는 뽀뽀지, 뽀뽀. 입만 댔잖아, 입만 그냥 이렇게. ㅇ..”
지욱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헤아리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변명하기 바쁜 해영에게 실망했다. 아니, 오히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해영을 보면서 더 화가 났다. 또한, 자신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는 손해영을 진심으로 좋아해서, 그 가짜 그 입맞춤에 떨렸던 자신이 슬퍼졌다.
그래서 지욱은 홧김에 해영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손님은 몸이 먼저고, 마음이 나중이랬으니까. 가짜로도 충분히 필요하면 키스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럼 나랑도 마음없이 가짜로 키스할 수 있겠지. 그런데 해영이 놀란 얼굴로 지욱을 밀어냈고, 그게 지욱의 화를 더 돋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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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욱은 한쪽 손으론 해영의 턱과 볼을 잡고, 반항의 손짓을 하는 해영의 팔을 뒤로 꺾으며 다시 입을 맞추었다. 깊게 밀착된 해영의 입술을 부드럽게 삼키며 부벼대는 지욱의 입술에 어느새 해영의 눈이 감기고, 해영은 자기도 모르게 잡힌 손으로 지욱의 손을 감아 쥐었다.
어느 새, 해영도 진심으로 지욱과의 키스에 응하고 있었다.
그렇게 길었던 키스가 끝나고, 지욱이 해영에게서 떨어졌다. 조금은 열이 오른 느낌에 부끄러워진 해영이 고개를 땅으로 떨군 채 조심스레 말했다.
“지욱아. 아까는..”
“궁금해서. 가짜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순간 해영은 차가운 지욱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지욱은 빈정거리며 선언했다.
"가짜로, 마음없이,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거면 나도 이제부턴 그냥 즐겨보려고. 손해영이랑.”
둘 사이를 휘감는 바람처럼, 해영의 표정도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