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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도는 그야말로 비호감에 얄밉다 못해 때려주고 싶은 인물입니다. 고정우와 이런저런 연고가 없기에, 그것은 다시 말해 고정우를 미워할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자기 확신과 부실 수사 속에 이제 피어나지도 못한 청춘을 살인마로 만들어 감옥으로 보내는 주범입니다. 치켜뜨는 눈썹과 백안시하는 눈동자, 입술을 까뒤집으며 내뱉는 막말과 귀에 거슬리는 금속성 목소리. 등장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외롭디외로운 고정우가 자신의 무죄 입증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 시청자에게 고정우의 무죄에 대한 확신을 주는 캐릭터구나! 김희도(장원영 분)에게 부정적 감정이 실릴수록 우리는 고정우(변요한 분)의 유죄를 의심했고, 배우에 대한 일말의 호감도를 일체 포기하고 작품을 위해 열연한 장원영 덕에 변요한을 향한 응원과 호감의 마음이 커졌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김희도 역은 ‘기능적으로’ 충분했을 텐데, 연출을 맡은 감독 변영주와 극본을 쓴 서주연 작가는 한 발 나아갔습니다. 김희도조차 현구탁의 용의주도한 사건 은폐와 조작의 큰 그림에 쓰인 ‘말(馬)’일 뿐이고, 10년 전엔 몰랐으나 지금은 김희도 스스로 현구탁 실험실의 ‘성실한 실험쥐’였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성실한 실험쥐, 김희도에게 자신 혹은 자녀의 잘못을 은폐할 의도가 없고 굳이 범인이 고정우여야 할 시기와 질투도 없기에 ‘도리어 순수하게’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는 착각 속에 ‘매우 요긴하게’ 현구탁의 손발이 되어 열정적으로 고정우를 살인마로 만들었습니다.
원본 이미지 보기나는 현구탁의 ‘성실한 실험쥐’였어! ⓒ그리고 이제, 자신이 얼마나 바보처럼 또 쉽사리 이용당한 줄 알게 된 김희도의 현구탁을 향한 표정은 거칠게 바뀝니다. 김희도를 기능적으로 쓰고 버리지 않은 선택, 배우 장원영의 호연이 일궈낸 결과입니다.
사실 악역을 한다는 건 쉬울 수도 너무나 어려울 수도 있는 연기입니다. 평면적 악역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고 동기를 지닌 다층적 악역은 표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 장원영은 두 극단의 어디에도 서지 않았습니다. 평면적 악역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가스라이팅 당한, 누구보다 ‘성실한’ 실험쥐 상태였고 뒤늦게 자신의 포지션을 깨달은 뒤에는 눈빛이 또렷해졌습니다. 각각의 상태와 상황을 넘치지 않게 표현함과 동시에 향후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게 연기했고, 욕을 제대로 먹어야 할 때는 욕받이로 명확히 역할 했습니다.
다른 어떤 캐릭터보다 돋보이지 않을 수 있고, 합리적 변명이 주어지지 않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내는 일. 작품을 살리고 배우 장원영을 살리는 길입니다. 덕분에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