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부터 올해 3월까지 촬영했고, 잠시 텀을 두고 방영을 시작해서 지난 10월 초에 종영했으니 1년 동안 ‘김지욱’ 캐릭터로 산 셈이다. <손보싫>을 안고 살았는데 방송까지 다 끝나고 나니 12부작이 너무 짧게 느껴지더라. 헤어지려니 너무 아쉬웠다.
- 연상연애 로맨스인데, 김지욱의 첫인상은 어땠나. 어느 면에 끌렸는지.
개인적으로 지욱이가 안쓰러웠고 안타깝게 느껴졌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누구에게든 피해 주지 않으려는 면이 특히 그랬다. 글 자체가 현실적인 설정과 대사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무엇보다 신민아 선배와 함께한다는 점이 제일 좋았다. 지욱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드라마 속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해영이 옆에서 함께 극을 재미있게 끌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욕심났었다.
- 평소 신민아 배우 팬인가 보다. (웃음)
제일 인상 깊고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선배님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였다. 당시 중2로 어리숙한 나이였는데 처음으로 푹 빠졌던 건 같다. 신민아 선배를 너무 좋아했었다. 이번에 뵈니, 학창시절의 몽글몽글하고 낭만적인 감성이 살아나면서 처음에는 너무 설레었다. ‘동종업계 사람’이라는 게 새삼 느껴지면서 마냥 좋았던 것 같다.
- 실제 함께 작업해 보니 어떤 분이든가.
신민아 선배에 대한 기억과 잔상은, 여태껏 경험하고 만났던 분들 중 분위기가 제일 아름답고 차분한 분이시다. 외관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 분위기와 아우라가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사려 깊고 배려심이 많은데, 연기할 때는 완전히 손해영이라 덕분에 몰입하여 지욱이로 있을 수 있었다.
-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연기로, 또 외적으로 신경 쓴 부분은.
지욱은 ‘미모가 예쁘면 팔자가 사납다’라는 말이 주입된 인물이라, 가급적 외모를 드러내지 않는 컨셉트였다. 그래서 덥수룩한 장발 가발에 투박한 안경을 쓰는 등 그간 고착된 내 이미지를 뜯어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점차 익숙해지더라. 연기적으로는, 지욱이는 수동적인 면이 있다고 느껴서 일부러 현장에서도 (내) 의견을 내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던 것 같다. 해영을 대하면서도 지욱이라면, ‘이랬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행동과 감정을 조절해 나갔었다. 그런데 실제 나라면 지욱처럼 그렇게 혼자 다 떠안고 가지는 못할 것 같더라. (웃음)
- 의외로 지욱의 초반 스타일링, 그러니까 ‘너드’ 같은 모습을 좋아한 팬들이 많다. ‘김영대니까 가능한 너드룩’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욱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작품에 합류한 건지, 아니면 중간에 알게 됐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긴 앞머리가 눈을 찌르고 해서 처음에는 불편한 면도 있었는데 주변에서 괜찮다고 하고, 나 역시 점점 적응되더라. 지욱의 서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설정에 대해서는 시작할 때부터 알고 들어갔었다.
- 손해 보기 싫어하는 여자와 피해주기 싫어하는 남자와의 연상연애 로맨스를 보이며, 설렘 가운데 긴장감 있는 텐션을 끝까지 유지했더라. ‘손님’과 ‘손해영’이라고 때에 따라 호칭을 달리하면서 말이다.
대본에 존댓말과 반말이 뒤죽박죽되어 있고, 처음에는 그 의도를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작가님의 큰 그림이었다. (웃음) 호칭에 따라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데다, ‘손님’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지욱의 아이덴티티를 담고 있기도 하다. 늘 눈치보고 피해 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태생적으로 갖고 커온 지욱이라, 관계 유지에 있어 적정한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들은 처음 가짜 결혼식으로 관계성을 맺었기에, 끝까지 미묘한 긴장감과 거리감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진심을 표현할 기회조차 없었고, 또 좋아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가짜 관계가 진짜 관계로 변화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종지부를 찍고 새로 시작하기 위해선, 이별은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 결혼도 결혼식도 거리가 멀게 느껴질 것 같은데 (웃음) ‘가짜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주변에 자문을 좀 구했나.
정말 그렇다, 결혼식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생소했다. 물론 또래들이 장가나 시집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멀게 느껴진다. 특히 가짜 결혼식이라는 건 생소한 느낌을 넘어 어떤 반감마저 들었었다. 평생의 인연과 사랑이라는 결혼에 대한 낭만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해영과 지욱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해영의 처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고 또 지욱은 해영을 위해서 해줄 수 있겠더라. 처음 들었던 조금의 반감이 점차 이해로 바뀌게 됐는데 드라마의 상황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인 것 같다.
- 어느 면에서 현실감을 크게 느꼈을까.
사회생활 하며 결혼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과 불이익 등 현실적인 문제와 현상을 보면서 그 고충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 나는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직장인의 대화 같은 부분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고, 해영의 대사 중 재미있는 말들이 많았다. 특히 냅다 지르는 비속어가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신민아 선배가 그런 욕까지 해서 해영이라는 캐릭터가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졌지 싶다.
- ‘복규현’ 일명 뽁규(이상이)와 티키타카도 너무 좋던데! 특히 뽁규가 지욱이를 ‘루시퍼’라고 부를 때 그 어감이 정말 찰졌다.
너무 재미있는 형이라, 때때로 선배라기보다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분의 능력은 너무 대단해서, 존경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계속 따르고 싶다.(웃음) 툭툭 장난치는 것 같지만, 얼마나 주변을 세심하게 배려하는지! 형과 연기할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 <손보실>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가장 감사한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작품을 연출하신 김정식 감독님, 지욱을 설계해주신 김혜영 작가님, 지욱을 빛나게 해준 신민아 선배님, 무엇보다 TV 너머로 지욱을 봐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너무 감사하다. 처음으로 대중의 사랑이 몸소 와닿는다고 느낀 작품이자 캐릭터라, 아주 따뜻한 드라마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또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 작품이다. 이 캐릭터를 너무 사랑하니까, 너무 잘됐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이든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생각으로 기대를 내려놓고 편하게 마음먹는 게 중요하더라. 그래야 주변과도 잘 융화되어 함께 만들어 가게 된다. 그전에는 욕심이 앞서서 (혼자) 튀는 부분도 있었는데 내려놓으니, <손보실> 같는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촬영하면서 이렇게 많은 분이 사랑해 주실지 생각도 못했었다. (웃음)
- <손보싫>에 관한 팬카페 반응 중 인상적인 내용이 있다면.
<손보싫>하면서 활발히 소통했는데, 한 명의 시청자로서 이야기하기도. (웃음) 내가 잘했다고 (스스로) 흡족해 하는 장면은 팬들도 피드백이 많아서 놀라우면서 신기했다. 기쁨이 배가 되더라. 또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한마디로 행복한 자극제라고 할지!
-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한 장면을 꼽는다면.
내 연기를 보면서 잘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웃음) 그럼에도 이번 10화 엔딩의 키스 전후로 대화하는 씬은 좋았다. 그 분위기와 기류, 고백하는 순간이 너무 흥미로웠고, 마치 서로의 진심을 표현하는 첫 단추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장면을 위해서 ‘가짜 결혼식’과 이에 뒤따른 갈등이 있었구나 싶었다. 또 이 장면은 현장에서 만들어 가는 재미, 보람도 컸던 장면이었다.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연기로 만들어 가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처음 느꼈던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방송 보면서 하루 종일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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