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포스터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진 김상만 감독이 오랜만에 영화 연출로 돌아왔다. <전,란>은 그가 미술감독을 맡은 <공동경비구역 JSA>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한 영화다. 많은 매체에서 수없이 다뤄진 조선시대 배경 사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개하기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가 <전,란>의 시나리오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임진왜란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대규모의 전투 장면이 아닌 전쟁 전후의 대비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각자 갖고 있던 가치관이 어떻게 예민하게 표면화되고 충돌하는지 시나리오에 잘 그려져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전, 란>은 ‘조선 아포칼립스’ 영화라는 얘기도 나왔다. (웃음) 임진왜란 직후 폐허가 된 조선의 모습은 아마 낯선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조선 최고의 무관 집안에서 태어난 종려(박정민)과 추락한 노비 천영(강동원)의 대립이 중요했다. 액션의 쾌감이 아닌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연출이 관건이었다. “한국 검술을 어떻게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한’ 스타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종려는 선조를 호위하며 국경까지 갔을 것이고 명나라 쪽 장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종려는 양날검을 쓰지만 천영은 외날검을 쓰는 식으로 차이를 줬다. 범동(김신록)은 실제 임진왜란 때 농민들이 무기로 썼던 도리깨를 든다.”
결국 <전,란>은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조선 시대의 강력한 신분 시스템에 의해 생각과 행동이 결정된다. 찬영은 자신이 노비라는 인식이 없다. 언젠가 평민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열망하고 있다. 김자령(진선규)은 오랫동안 유교를 공부하면서 아마 공자가 주장한 대동사상에 가슴 깊이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의병을 이끌며 공자의 사상을 실천하 려고 했지만 결국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기에 한계가 있다. 범동은 자신의 천민 계급을 잘 알고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깨우친 사람이다.” 그리고 계급은 ‘금수저, 흙수저’ 같은 표현에서 알수 있듯 지금 사회에도 잔재한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신분을 회복하고자 했던 천영 같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계급 상승 의지가 좌절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사다리 올라타기를 체념하고 있는 것 같다.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전,란>이 자본주의로 인한 새로운 계급 사회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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