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보면 대도시 영화는 전체로 볼때 퀴어 보다는 우정과 성장 서사에 중심을 둔거라고 하더라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작가가 쓴 퀴어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홍보 단계에서 퀴어 요소는 쏙 빠진 채 두 주인공의 '사랑법'이라는 오묘한 표현으로 소개됐다. 잘 모르는 관객들은 얼핏 이 작품을 재희와 흥수의 러브스토리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재희와 흥수의 우정,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보여주는 사랑법에 관한 이야기다.
때문에 유명 퀴어 원작을 가지고 '퀴어 지우기'에 나선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존중을 충분히 무게감 있게 담아낸 이야기다. 다만 작품 전체를 볼 때 동성애보다는 비밀을 나눈 두 친구의 우정과 성장 서사에 중심을 둔 이야기로 펼쳐놓는 쪽이 자연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는 흥수의 연애사와 커밍아웃 고충, 흥수의 비밀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재희와 벌어지는 갈등, 재희가 수많은 남자들과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따라간다. 두 사람은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20살부터 33살까지, 13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돌아서고, 화해하고, 의지하면서 더욱 견고해진다. 그렇게 재희와 흥수가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 현실감있게 그려진다.
자칫하면 다소 작위적으로 '그런 척', '즐기는 척', '방탕한 척', '자유로운 척' 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김고은의 재희가 있을 법한 인물로 땅에 '착' 붙여놓는다. 노상현은 청춘의 불안함과 무거운 비밀까지 간직한 흥수의 모습으로 '파친코'와는 다른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두 시간 가까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두 사람의 성장 서사에 몰입하다보면 나도 이들과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재희의 결혼식에 축가로 나선 흥수의 춤사위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뻣뻣한 노상현의 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올 것도 같지만, 생각과는 달리 왠지 모를 뭉클함이 울컥 차오른다. 마치 이 노래가 영화의 모티프가 아닌가 싶을 만큼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배드 걸 굿 걸' 가사마저 심금을 울린다. 재희와 흥수 그리고 나까지,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지내던 자취방이 그리워지는 기억조작 드라마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특히 조금만 삐끗해도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어려운 소재를 너무 멀지도, 지나치게 노골적이지도 않게 담아낸 감독의 세심한 안배도 돋보인다. 곱씹을 수록 숨겨둔 메시지가 포장지에 예고한 것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지나치게 캠페인스러운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애썼다는 인상이다. 대중 상업 영화로서 용기있는 시도에 나선 '대도시의 사랑법'에 관객들이 어떤 응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