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베풂에 동의한 적 없는 나는 늘 뺏긴 기분이었고, 늘 손해 보는 사람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릴 때 부모를 통한 경험으로 결핍을 가지는데, 해영이가 가진 가장 큰 결핍은 '상실'인 것 같아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전부이고 세상인데 그 세상을 지키는 사랑을 해영이는 늘 누군가와 나눠야만 했음
그 소중한 사랑을 나눠가진 것도 서러운데, 그 사람은 '임시'가족이라 결국 떠나가고 내 곁에 남지 않아
3화 결혼식에서 엄마와 사진을 찍은 그 수많은 위탁아들 중에 지금 해영이 곁에 남아있는 건 희성, 자연, 지욱 셋 뿐임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손해 보기 싫다는 삶의 태도를 만든 건 그런 경험들에 크게 영향을 받았겠지
"희성아, 나 사랑스럽니? 연애할 때도 손해 보기 싫어서 계산하는 내가, 내가 사랑스럽냐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격을 본인도 좋아하지 않음
'계산적'이라는 말의 유의어는 '이기적'이니까
손해영의 곁에 남은 사람도, 떠난 사람도, 떠나보낸 사람도
그들 모두에게 해영이의 '손해 보기 싫어'하는 성격은 쉽게 비난할 수 있는 단점이자 약점이 됨
"손해영 님은 계산적이라 좋았습니다. 자기 인생에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그런 사람이 날 선택했다면 나도 소중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지 않는 사람일 수 있겠다.' 그래서 두렵거나 망설여지지 않았어요. 손님 좋아하는 마음이."
근데 내가 '계산적'이라 좋다잖아
내 그런 면까지 좋아해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겠지 했는데 바로 옆에 있다잖아
"우리 엄마 원래 그랬어. 관심 줄 데, 신경 쓸 데가 많아서 난 늘 기억 안 나는 애, 까먹은 애, 근데 그래도 괜찮은 애. 왜냐? 친딸이니까."
손해영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까먹고 잊어버리는 데에 익숙해지기까지 아주 오래 혼자 아팠을텐데, 김지욱은 모든 걸 기억함
"그냥 기억이 나. 손님이 한 말, 행동, 전부 다."
길게는 해영이가 좋아하는 삼각김밥, 젤리, 담배부터
짦게는 당장 어제 했던 말들까지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네가 회사에서 아침을 먹잖아? 그럼 내가 무능해서야
네가 옷을 거지같이 입지? 내가 무능해서라고
네가 실수하잖아? 누가 무능해? 내가
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야"
->
"나만 다른 부서로 옮기면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회사에서 아침도 안 먹고 실수도 안 하고 옷도 예쁘게 입고 다닐게요.
나 때문에 손해 보지 않게 할게.
그럼 우리 내일은 부부로 만나요."
"가족처럼 살다가, 가족이었다가 그렇게 남이 돼서 멀어지는 거? 나 너무 익숙해"
손해영은 마음을 주고 가족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멀어지는 데에 익숙해질 때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을텐데
김지욱은 매번 손해영한테 돌아옴
"보고싶었어요, 손님"
공항에서 헤어진 후에 사라졌다고 생각했더니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가라고 보냈더니 돌아와서 취객 치우는 거 도와줬지
"갔구나. 보기보다 뒤끝이 기네."
이번엔 진짜 갔나 했더니 사실은 뒤에 서 있었어
"내 몸은 내 마음이 간 곳에 와 있어요"
김지욱 마음이 손해영한테 있는 동안에는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고백
어떻게 해영이가 마음을 주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어
손해영한테 김지욱이 이렇게나 귀여운, 사랑스러운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