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이 가족으로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연기는 연기대로, 서사는 서사대로 모처럼 재미있는 한국 영화 한편이 개봉을 찾아온다.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디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근사한 디너 자리를 함께하는 두 형제 부부를 모티프로 출발, 원작의 큰 골자를 따라가면서도 한국 작품에 맞춤형 각색을 훌륭하게 완수해냈다.
돈 앞에서 냉철하지만 잘 나가는 변호사 ‘재완’(설경구)와 도덕 교과서같은 의사 ‘재규’(장동건)은 형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 형제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닥친다.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과 재규의 아들 ‘시호’(김정철)이 노숙자 구타 사건에 휘말린 것. 화질이 좋지 않은 CCTV에 담긴 폭행 장면은 뉴스까지 타게 된다.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 ‘연경’(김희애)은 저화질 속 흐릿한 형체로 단번에 아들 시호를 알아본다. 연경은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아들을 기어이 믿으려고 한다. 침묵만 지키면 그저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날의 사건은 혜윤에 의해 가족들에게 알려지며 구성원 모두가 딜레마에 빠진다.
‘보통의 가족’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가족간 식사 자리를 블랙코미디처럼 담아내며 시작해 치열한 심리 싸움까지 끌고 나간다. 재완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믿어왔던 재규, 연경 부부는 아들의 문제 앞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반면 미국 유명 대학 입시를 앞둔 딸 혜윤을 우선 구하고 보려던 재완은 사별 후 재혼한 젊은 아내 ‘지수’(수현),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각 캐릭터들의 딜레마는 잘 엮어낸 관계성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조명된다. 특히 가족이지만, 결코 가족에 섞일 수 없는 지수는 제3자의 시선으로 관객의 눈이 되어준다. 대사에 툭툭 실어낸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도 인상적이다. 재완 재규 형제 가족의 기묘한 관계성에 웃음 짓다가도 날선 대사들이 폐부를 찌른다.
영화는 눈 앞을 가려버리는 부모의 자식 사랑, 그리고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가족이라는 연대의 명암 등 여러가지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그렇다고 재미를 놓치지도 않았다. 속도감 있는 전개 속에 인물들의 변곡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
배우들의 열연도 칭찬할만 하다. 장동건, 김희애는 자녀의 위기에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부모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설경구는 줄곧 이성적이고 냉철하지만, 현실감 있게 재완을 구축해냈다. 초반에는 다른 캐릭터들과 동떨어진 그림처럼 느껴졌던 수현은 그래서 가장 ‘보통의 사람’처럼 다가온다.
한편 영화 ‘보통의 가족’은 오는 10월 9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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