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를 동시에 잉태하는 일은 100만분의 1의 확률로 여겨진다. 네 쌍둥이는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10대의 어느 날 헤어진다.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아름(유영재), 다운(손상연), 우리(김민기) 형제가 쌍둥이 나라(김소혜)를 잃고 첫 여름을 나는 이야기다. 상실과 이별, 이후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자기혐오라는 문제를 따뜻한 감성으로 만져낸 최하늘 작가와 정다형 감독. 두 신진 창작자는 “드라마가 삶에 주는 용기”를 믿는다고 말한다.
- 어떤 과정을 거쳐 오펜(O’PEN) 당선작 <아름다운 우리 여름>이 영상화했나.
= 정다형_한해 30편 정도의 당선작 중 영상화는 10편 내외로 이루어진다. 스튜디오드래곤 소속 연출자는 대본 중 1~3순위를 지정하는데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내게 0순위였다. 인물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아름다운 우리 여름’을 보내려면 아름답지 않은 시절도 견뎌야 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가 제목부터 내용까지 관통하도록 쓴 건 작가님이 유일했다. 예산, 세일즈, 흥행 등 현실적인 조건으로 제작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 각본은 기획 포인트 역시 뚜렷했다.
= 최하늘_결말이 포함된 8부작 기획안을 제출해 당선되었고 최종적으로 2부작 제작·방영이 결정되어 지난 6개월간의 다시 쓰기 과정이 있었다. 전년도 오프닝 작품이자 감독님 전작인 <복숭아 누르지 마시오>를 보니 왜 우리 두 사람을 매칭했는지 바로 알겠더라. 나도 한 감수성 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의 감수성과 섬세함은 정말 독보적이다. (웃음) 감독님은 다섯 주인공 각각에 대한 질문지를 써주셨고 나는 내가 창조한 인물들이 되어 답해야 했다. ‘쌍둥이는 서로의 연애를 목격한 적 있을까요?’, ‘나라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어떤 노래가 있었을까요?’ 서로 문답을 주고받으며 인물들을 생각하니 이야기 속 아이들에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 쌍둥이 여동생을 잃은 세 형제(아름, 다운, 우리)가 가정의 붕괴로 고통받는 소녀 여름(장규리)을 만나는 이야기다.
= 최하늘_가까웠던 지인을 자살로 떠나보낸 적이 있다. 그의 마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고루 쓰다듬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별 후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옆집 사는 여름이 역시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자신이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연대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고 보았다.
= 정다형_그래서 고독에 대한 이해나 나름의 철학이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중요했다. 오디션 과정에서 내면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고 그에 진솔하게 부딪혀오는 배우들에 끌렸다. 작가님에게도 비밀로 지키고 있지만 20대 초중반인 그들 또한 삶에서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었다. 대본과 공명하는 개인사에 관해 묻고 찬찬히 대화를 나누며 캐스팅을 결정했다.
- 늘 그렇듯 단막극은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급 배우들에게 소중한 기회다.
= 최하늘_개성이 다른 세 쌍둥이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각본의 착상이었다.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대한, 민국, 만세처럼. (웃음) 학원물인 만큼 여학생들이 한번쯤 짝사랑해본 유형별 이상형의 남자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감독님은 어른스러운 모범생 첫째, 장난기 많고 스포티한 둘째, 아리송하고 비밀스러운 셋째 역에 꼭 맞는 배우들을 찾아와주셨다.
= 정다형_다섯 주연배우가 모두 내 새끼 같고 소중하다. (정 감독의 핸드폰 배경은 다섯 배우를 나란히 두고 찍은 사진이다.) 나라 역의 김소혜는 촬영 시작 전 혼자 로케이션을 돌아다니면서 나라의 마음을 상상하고 편지를 써서 주었다. “나라는 고개를 들어 빛을 마주할 것이다. 자연스럽고 싶던 것에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곳에서 뜨거운 나날을 뜨거운 마음으로 흠뻑 만끽할 것이다”라고.
- 오는 9월14~15일 방영된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 최하늘_세 쌍둥이 앞에서는 티 내본 적 없지만 나라와 이별하고 잠을 자지 못해 수면제로 버티는 엄마 혜진(신은정)의 모습이 나온다. 2부 후반에 모종의 발견을 계기로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드는 그의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 정다형_아름, 다운, 우리, 여름과 세상을 떠난 나라가 다 함께 모이는 장면이다. 물론 리얼리티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다. 그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조금도 드라마 같지 않고 현실의 가족처럼 느껴졌다. 구성원을 먼저 떠나보낸 적 있는 유가족이라면 누구나 느낄 감정,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가장 잘 보이는 이 장면이 시청자에게도 소중하게 다가가길 바란다.
- 작업 시 나의 필수템
= 최하늘_이어폰. 작품을 쓸 때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음악을 들으면 감정에 몰입한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많이 들었다.
= 정다형_연필과 노트.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현장에서 ‘오늘은 날씨가 어땠고 배우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게 귀여웠다’라고 적어놓으면 다음 회차에 슬쩍 비슷한 장면을 넣어본다.
- 나를 자극한 다른 작품
= 최하늘_2005년 드라마 <태릉선수촌>의 대사. 유도 후보 선수였던 민기가 양궁 금메달리스트 수아에게 “저렇게 멀리 있는데 어떻게 10점을 쏜 거냐” 물었을 때 수아가 대답한다. “그냥 판때기잖아”.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프로필 문구로 삼았던 대사다.
= 정다형_“텔레비전은 재즈다”라는 문장. 방송 PD 출신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읽었다. 영상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한계들을 극복하며 즉흥적으로, 동시에 가장 진실되게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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