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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개늑시 작가 언더커버로 갤활동 함 ㅈㄴㅈ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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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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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길어 잘라서 가져옴


출처 - 디시 개늑시갤 류작가님(땀지루님)

 

드디어 종방일이 코 앞에 다가왔네요. 15, 16 단 두 회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작가들은 진작 16부를 턴 상태에서 그 동안 정들었던 집필실에서 짐을 챙기던 참이었습니다. 문득, 그냥 이렇게 [개와 늑대의 시간]을 떠나보내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동안 작가들의 집필에 무한에너지를 제공해주었던 [개와 늑대의 시간] 갤러리, 갤러분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까요. 이유야 어쨋건, 다른 작가님들처럼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네요. 조심스럽게 글 남겨 봅니다. 그동안 넘치는 관심으로 작품을 지켜봐주셔서... ’ 운운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갤러들로부터 받아왔기에.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작업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말 꼬치꼬치 깨작깨작 찌끄려보았습니다.

오직 [개늑시] 폐인들만을 위한, 작가들의 대담.

스크롤의 압박을 견디신다면, 끝에 작은 반전 또한 준비되어 있습니다.

ps. 대담은 드라마 속 명대사를 통해 주제를 끌어내고, 거기에 대해 두 작가가 썰을 푸는 방식으로 엮어 봤습니다. 영감을 주신 이동진 평론가님께 심심한 감사 드립니다.

그럼... 출발~


1. “소풍 갈 시간입니다.” -기획에서 방송까지


한작가: 2005년 여름, 사과나무 픽처스의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이번에 작품을 하나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부탁한 것은 딱 두가지였습니다.

류작가: 해외 로케 장소로서 ‘마카오’와 ‘두 남자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나머진 뭘 어떻게 풀어내든 작가 마음대로 해도 좋다. 이거였죠. 전 한작가님이 같이 드라마를 써보지 않겠냐기에 무슨 내용인데요? 물었더니... ‘마카오’ ‘두 남자’ 라기에 바로 오케이했죠. 맘대로 써도 된다 이거지!! 이러면서... 바로 그 직후 ‘복수를 위해 언더커버가 된 주인공이 기억을 잃고 복수해야할 대상의 오른팔이 된다.’는 기본 컨셉을 떠올리곤 그때부터 70페이지 정도 되는 20회짜리 풀시놉을 완성하는데 두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필 받아서 달린거죠.

한작가: 그랬죠^^. 처음엔 이럭저럭 1년만 구르면 방송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제 착각이었죠. 본방까지 딱 두 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류작가: 우선 4회정도 분량의 초기 대본이 나온 후 이준기, 정경호, 남상미... 이 세 주연배우분들이 캐스팅 되고도 편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뭐, 예산 문제도 있겠고, 방송사들의 라인업 문제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개와 늑대의 시간’만을 위해 1년 남짓 스케줄을 비운채 작품 준비에만 몰두하며 기다려준 우리 주연배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작가: 암튼 대본 작업 초기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한편, 로케 예정지인 마카오에 취재를 갔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의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유럽풍의 도시, 밤이 되면 카지노와 유흥업소의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 꽤 인상적인 공간이었지만 장소가 좁다는 게 아쉽더군요. 홍콩이란 도시도 좁은 느낌인데 마카오는 거기 딸린 위성도시같은 분위기를 풍겼어요.

류작가: 제 개인적으론 마카오란 도시의 느낌이 괜찮았어요. 두기봉 감독님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흑사회나 방축 등에 나오는 마카오의 실제 공간들을 보는 게 쏠쏠했거든요. 근데 말씀하신대로 워낙 스팟이 한정되어 있어 로케의 장점(이국성)을 살리긴 어려웠을 거예요. 대신 특유의 정서가 있는 곳이죠.

한작가: 그런데 나중에 편성이 결정되고 감독님이 합류하고 구체적인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글쎄 마카오 당국에서 자기네 동네가 범죄의 배경이 되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군요. 현지 당국의 협조 없이 해외 로케는 불가능하죠. 눈물을 머금고 마카오를 날린 뒤 여러 나라가 물망에 올랐습니다. 일본을 무대로 야쿠자를 다루자, 말레이지아가 괜찮다더라, 해외로케가 다 뭐냐, 그냥 부산항에서 찍자... 갑론을박 끝에 태국 관광청의 러브콜이 들어왔습니다. 막상 가서 보니까 머리 속으로 생각하던 태국과 많이 달랐습니다. 불교국가풍의 엄격함이 있는 한편, 향락의 극단을 치닫는 자유분방함, 뙤약볕 아래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류작가: 마카오가 미드나 헐리웃 영화에서 봐온 라스베가스의 느낌이라면, 태국은 마이애미였죠. ^^ 다국적의 사람들, 거리에 넘실대는 사람들의 열기, 수상가옥이 주는  독특한 느낌들... 막 영감이 떠올랐어요.

한작가: 결국 로케장소가 태국으로 결정되고 대본이 수정됐습니다. 마카오보다 훨씬 다양하고 아름다운 배경이 나왔으니 태국의 폭염 속에 고생한 스탭들한테는 죄송하지만 결과적으로 잘됐다 싶습니다.

류작가: 태국 촬영이 실질적으론 한 20일 정도였던 걸로 알아요. 그 기간 동안 그 정도 분량의 촬영을 소화한 걸 보면, 우리 감독님 이하 연출팀의 능력은 가히 대단한 거죠.


2.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해질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아님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 - 제목에 얽힌 이야기


한작가: 애당초 가제는 ‘마카오 프로젝트’였습니다. 정말 저걸 제목으로 쓰려고 정한 건 아니구요, 뭐라고 이름은 붙여놓고 작업해야 하니까 그냥 정한 제목이었죠. 나중에 정식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는 저는 ‘허수아비’란 제목을 밀었습니다. 추수가 끝난 들녘에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 비극적인 운명에 휘둘려지는 주인공의 삶을 생각하면 뭔가 그럴 듯하게 와닿는 걸... 이라고 좋아했는데 호응이 별로더군요. 감각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허수아비’란 제목으로 작품을 쓰고 말리라!!!

류작가: 음화화화화!! 뭐 제가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잘 한일은 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지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쓱으쓱) 박완서님 글에선지... 어느 영화에선지... 맘에 새겨두었던 글귀가 이 아이템으로 글을 쓰면서 머리에 맴돌았어요. 제목의 뜻도 뜻이거니와 어감이 주는 뉘앙스까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에 제안했는데, 첨엔 반응들이 그닥 신통찮았죠. ‘개와 고양이이의 뭐?’ ‘줄이면 개늑시? 그게 뭐야...’ ‘너무 어렵다’ ‘제목이 구리구리해.’ ‘아줌마들이 싫어하겠다.’ 등등등... 그치만 굴하지 않고 ‘제목 죽이지 않아요??’ 외치고 다니던 터에 오다가다 이야기를 들으신 이재규 감독님이 걸리신 거죠. 첨엔 듣고 뭔가 싶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계속 생각나더라고... 그러고 나니까 사과나무 윤대표님도 슬슬 반응이 오시더군요. 거기에 필 받아 제가 거봐요, 거봐!! 마구 우기다보니 가제가 본제가 되어버린 거죠. 나중에 제목 좋다는 말 듣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3. “오랜 만이야 이수현” - 이수현이라는 이름의 의미, 익숙하지만 잊혀진 것의 귀환

 

혹은 ‘우리는 어떻게 두려움을 멈추고 클리쉐를 사랑하게 되었나?’


한작가: 주인공 이름은 이수현입니다. 한자로는 李修賢이 될 거에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K사 경성스캔들에서 류진씨가 맡았던 배역이름도 이수현이더군요. 이런 우연의 일치가... ^^; 기획단계에서 등장인물 작명을 할 때 주인공의 이름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 우리 입에서 맴돌게 될 인물이니까 더욱 신중하게 정해야 했지요. 눈치가 빠른 분들은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이수현은 홍콩 영화배우 이름에서 빌려 왔습니다. [첩혈쌍웅] [벽력선봉]등의 영화에서 사명감 넘치는 경찰역으로 유명한 배우입니다. 홍콩 느와르물의 전성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이수현이란 배우는 주윤발, 장국영 못지 않은 향수어린 존재였어요. (물론 이준기씨 외모를 상상하고 이수현을 보면 실망하실 거에요. 크크크.) [개늑시]가 한국형 느와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홍콩 느와르물에 예의를 차린다는 의미의 작명이었습니다.

류작가: 참고로 한작가님 외모가 약간 이수현을 닮으셨어요. 본인은 말랐을 때 정보석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들으셨다던데, 저로선 대략난감;;; 이수현 감지덕지...

한작가: 음음!! 덧붙이자면, [개늑시]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무간도] [본아이덴티티] [롱키스 굿나잇]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적담정]... 가까이로는 [겨울연가]에 [모래시계]까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활]이나 [마왕]은 보지 못했습니다) 크게는 이야기 구조에서부터 작게는 장면의 디테일에 대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류작가: [차이나타운]을 쓴 로버트타운의 감독작인 수작 범죄물 [테킬라 선라이즈] (국내 제목: 불타는 태양)도 빼놓을 수 없죠. 그 외에도 영감을 받은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아요. 따지고 보면 [무간도]도 그 이전부터 홍콩 느와르에서 한 지류를 형성해온 언더커버 스토리의 변형이었고... (이전에 [첩혈속집]이나 [용재변연] 외에 많은 작품들이 있었죠.) [본아이덴터티]도 로버트러들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리지날이 80년대에 이미 나왔었구요. (‘저격자’라는 이름으로 국내 출시되었었는데, 어릴 때 보고 엄청 충격 먹었던 기억이...) [개늑시]가 컨셉을 쉽게 요약하자면 ‘무간도X본아이덴터티’지만... 실은 동서양의 수많은 해당 장르물들에게서 다방면으로 자양분을 끌어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언더커버라든지... 기억상실 같은 극적 장치들은 이야기 속에서 그것이 갖는 힘을 과대평가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을 딛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훌륭한 도구가 되니까요. 마찬가지로 클리쉬한 설정들도,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철저히 이용할 계산만 서있다면 얼마든지 끌어다가 쓰고 빨리 버려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한작가: 설정만 놓고 본다면 동서양의 짬뽕에 독창성은 부재하건만 구체적인 내용 전개에 들어가면 일찌기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남다른 작품이 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고 기대가 컸습니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들이 해주셨어요. 고맙습니다.


4. “실망시켜 드려서 기쁜데요?” - 상플금지


한작가: 드라마가 탄력을 받아 진행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홈과 개늑시갤에는 온갖 종류의 상플이 난무하더군요. 그러다 본방이 끝나면 모두들 작가가 상플을 배반했다, 뒤통수 맞았다, 이런 반응이 대세였는데요...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겠다, 이런 분연한 각오로 얘기를 뒤튼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류작가: 되려 우직하다 싶을 정도의 정공법으로 밀어 붙인 결과죠. 시청자들이 워낙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뒤틀기와 배배꼬기, 감추기를 학습한 탓일 겁니다. 변화구가 올 거라고 배트를 단단히 쥔 타자에게 직구의 위력은 상당하거든요.

한작가: 기억상실에 걸린 주인공이 내가 누굴까 고민하며 최종회까지 우왕좌왕? 그럴 필요 없죠. 허위라고 해도 빨리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드라마 진도 나갑니다. 케이가 지우와 마주치는 장면. 거기서 둘이 엇갈리게 할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지우가 충격받고 슬프다 해도 수현에겐 기억이 없으니 더 많은 이야기가 유도될 수 있는데 뭐하러 엇갈리게 하겠어요? 기억이 돌아온 뒤에 절친한 친구인 민기는 그걸 모른 척하며 수현을 궁지로 몬다? 왜요? 수현이 믿고 의지할 사람은 정부장도 마오도 아닌 민기 뿐인데요. (지우는 알면 상처 받으니까 일단 제외 ^^;) 상황만 만들어지면 바로 민기에게 털어 놔야죠.

류작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작가들의 원칙은 그거였습니다. 괜히 비비 꼬고 애둘러가지 말자. 만날 사람은 만나게 하고, 할 말 있으면 하고, 터질 사건은 터진다. 엄청 쉽지요? 최종회를 앞두고 결말에 대한 상플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 중엔 진짜 결말을 알고 있다는 누군가 스포일러라고 뿌린 것도 있고요. 내용을 다 확인해 봤는데 하나도 맞는 거 없던데요? 크...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캐릭터와 이야기가 흘러온 대로, 해결할 문제는 해결하고 끝나는 최종회가 될 겁니다.


5. “우리 일은 팀플레이 깨지면 끝이야.” - 공동작업


한작가: 저는 데뷔 이후로 죽 공동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창작과정의 장단점에 대해 나름대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영화가 아닌, 16부라는 긴 이야기를 밀도 있게 끌고 가기 위해서 파트너의 존재가 절실했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만나 알게 됐던 재기 발랄한 류작가와 언제 한번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차, [개늑시] 기획이 주어졌고 주저없이 함께 일하자고 부탁했습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을 함께 버티어 준 동반자로서 류작가에게도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류작가: 한작가님과는 모 영화잡지에서 주최한 장르영화 시나리오워크샵에서 담임강사와 반장으로 만났어요. ^^ 원래는 애니메이션으로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었는데, 투자문제로 제작이 지연되고... 이참에 시나리오나 써두자 열공하던 차에 한작가님과 인연이 닿은 거죠.

전 뭐든 재밌으면 한다는 주의라... 마냥 신나서 작업했던 것 같아요. 제게 개늑시라는 좋은 작품으로 작가 크레딧을 달 게 해주신 한작가님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이거 뭐 수상소감인가요?;;)

한작가: 혹시 작가를 꿈꾸거나 지금 공동작업을 하고 계실 여러분들을 위해 저희의 대본 작업 과정을 소개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 주세요) 아시다시피 우리 얘기는 기획 초기에 70쪽 분량의 풀시놉시스로 완성되었습니다. 지금과 여러 가지 설정들이 바뀌긴 했지만 ‘언더커버’와 ‘기억상실’이라는 장치는 언제나 유효했지요. 그 시놉을 기준으로 수많은 버전의 대본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쓰고, 엎고, 다시 고치고...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지요.

류작가: 6회까지 대본이 대충 6고 정도까지 나왔으니까요. (이때 버전 중에는 수현, 지우, 민기가 고등학생일 때 재회하는 장면도 있답니다. 고등학교 축제, 벚꽃 날리는 학교 담장 아래서 마주치는 수현과 지우. 흐흐흐... 수현이 언더커버로 잠입하기 전 훈련소에 입소해 아군과 적군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며 바른생활 수현에서 비열 케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이 약 2회분에 걸쳐 담긴 버전도 있었지요. )

한작가: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면서 주연급 캐스팅이 확정되고 방송사가 결정되고 감독님이 합류했습니다. 그게 벌써 올해 초의 일이군요. 그때부터 대본 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초반에 감독님과 조감독, 제작사 피디등이 함께 한 합숙 회의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다시 큰 줄기를 조정했습니다. 마오와 지우를 친부녀 사이로 결정한 것도 이때랍니다. 연출과 제작팀이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갈 때, 작가들은 드디어 촬영용 대본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류작가: 그때부터 선릉역 인근에 오피스텔을 잡고 거의 숙식을 하며 작업을 했어요. 우선 대충 이 회에 들어가야 될 내용에 대해 회의를 해서 방향을 잡은 다음, 씬갈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장면장면들의 구성을 짜죠. 이 작업이 제일 머리털 빠지는 일이에요. 오히려 막상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 쉽습니다. 나중에 탄력 붙었을 땐 (대략 7,8부 넘어가면서) 씬갈이 빼고 대본은 대충 이틀, 사흘 만에 털게 됐으니까요.

한작가: 대본 작업에서 가장 힘든 것은 씬갈이입니다. 이번 회에 해야 되는 중요한 이야기 덩어리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인물들의 반응과 되반응을 고려하고 혹시 구멍난 부분이 없나, 살핀 뒤에 구체적으로 1씬부터 마지막 씬(짧으면 50씬, 길면 60씬)까지 대강의 내용을 정리해 넣는 과정이죠. 해야 할 얘기가 확실하고 인물의 감정선도 뚜렷한 회차의 경우, 비교적 쉽게 마무리되는 반면, 뭔가 다들 감정을 숨기거나 의도를 감출 경우, 캐릭터의 속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무지 고생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략의 씬정리가 끝나면 7부 능선은 넘은 셈입니다. 정작 대본 작업 자체는 씬정리된 내용을 구체화하는 대사와 상세 지문을 적어넣는 물리적 과정이었어요.

류작가: 대략 한 회에 50씬 남짓, 30페이지 미만으로 분량이 정해집니다. 그러면 25씬 전 후로 분량을 나눠서 대본을 쓰기 시작해요. 워낙 이 이야기로 같이 오래 고민하고 말을  섞어 와서, 나중에 방송 보면서 좀 후진 대사가 나왔다 싶으면 서로 ‘이거 자기가 쓴 거죠?’ ‘아니에요! 한작가님이 쓰셨잖아요!!’ 이랬다는....

한작가: 두 명의 작가가 분량을 나눠 대본작업을 마친 뒤 한데 모아서 다시 크로스체크를 합니다. 쓸데없이 되풀이되는 대사나 모호한 감정선, 불필요한 에피소드를 다시 쳐내고 원래 의도에 맞게 다듬어 나가는 거죠. 시간 여유가 있던 초기엔 한 회분 대본을 쓰는데 한달도 걸리고, 보름도 걸렸는데 본방이 시작되고 난 뒤엔 스케줄에 쫓기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거의 열흘에 두 편을 뽑아내야 했죠.

류작가: 일각에선 20부 대본이 미리 뽑혀져 있다... 작가들이 일부러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 촬영 분량에 맞춰서 그때그때 하나씩 던져준다... 뭐 이렇게 잘못 알려져 있던데, 절대 그렇진 않았구요. (그랬으면 좋았게요?) 70쪽짜리 초기 시놉시스는 말 그대로 이야기의 큰 틀일 뿐, 말씀드린 과정처럼 지난한 대본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2년여 오랜 고민의 시간이 있었기에, 나중에 스케줄에 쫓기게 되었을 때도 무엇이 가장 이야기를 위해 적합한 선택인지 취사선택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한작가: 어쨌든 이런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쳐 열 여섯 편의 대본이 완성됐습니다. 막방을 앞둔 지금까지도 최종회를 넘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만... ㅠ . ㅠ


6. “면도기 있어요?” - 대본 작업의 궁상스러움, 그리고 육체적 괴로움


한작가: 작업실은 선릉역 근처의 원룸 오피스텔입니다. 밖에서 작업하다보면 주로 사먹는 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데 이 근처가 먹자 골목이라 처음에 입주하고 눈물겹게 기뻐했지요. 뭐 그것도 몇 달 먹다 보니 나중엔 메뉴 고르기가 괴롭더라는... 불규칙한 식사와 간식, 부어라 마셔라 일하면서 계속 퍼먹는 콜라와 캔커피, 두유. 배는 볼록 나오고, 수염은 까칠해지고 머리는 떡지고... 인간의 몰골을 유지하기 어려운 작업 환경이었기에 하루 한번 샤워하겠다는 나름의 룰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누군지 밝히긴 어렵지만 류모작가는 어쩌다 생각나면 씻더군요. 흐흐흐)

류작가: 한작가님은요... 러닝셔츠에 사각팬티만 입고 작업을 하시는데, 가끔 보면 초큼 민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손이 말이죠... 간혹... (읍읍!!)

한작가: 처음엔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거의 집에 못들어가고 작업실에서 뭉개야 했습니다. 일단 대본 작업을 하게 되면 먹어도 먹는 거 같지 않고 자고 일어나도 영 개운하지 않고 늘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거든요.

류작가: 날 더운데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배우분들, 스텝분들에 비할 바야 못되겠지만. 다들 대본만 기다리느라 눈 빠지는 상황에서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 싸매고 있는 게... 이게 또 글이 안 나오면 이보다 곤혹스러운 상황이 없거든요. 나중엔 정말 뼛골을 빼서 쓴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질 않았어요. 전 얼마 전에 15부 털고 한 보름 만에 집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탈수 증상이 와서 그대로 쓰러져버렸어요. 그때 잠시 유체이탈을 해 제 머리 꼭지를 내려다보게 됐어요. 불현듯 들려온 영혼의 소리. ‘무슨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고... 에라이... 씻고 자라!’


7. “시합보다 실전에 강한 친구구만.” - 강적 김진민 PD님


한작가: 김진민 감독님의 첫인상은... 뭐야, 무술감독이신가? 그만큼 강렬한 카리스마 작렬이었어요. 신돈에서 뚝심있는 연출로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첫미팅부터 작품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내놓는 모습에 신뢰가 갔습니다. 제가 좀 여우과에 잔머리 능통한 캐릭이라 제 앞에서 여우짓하는 사람들을 내심 우습게 보는데 감독님은 그런 꼼수없이 솔직하고 화끈한 타입이었거든요.

류작가: 의뭉스러운 타입이시죠. 한작가님은.

한작가: (째려보는)

류작가: 전 우선 감독님께서 첨 합류하실 때부터 우리 이야기에 꽂혀 계신 점이 굉장히 좋았어요. 이야기에 몰입한 상태에서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주셨어요. 우린 또 처음 딱보면 적인지 아군인지 간부터 보잖아요? ^^ 감독님은 철저한 아군이 돼주셨어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한작가: 계속되는 회의 속에서 이건 알겠다, 저건 모르겠다라는 입장이 명확해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수월했습니다. 현장의 정확한 느낌을 포착해서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대본이 놓치고 가는 부분을 보충할 수 있었구요. 작가로서 글이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연출해내는 감독을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

류작가: 엄훠, 이 분이 선수를... ;;; 그럼 전 전생에... 아... 생각 안난다. ㅠ_ㅠ


8. “족치면 다 나온다니까.” - 촉박한 일정, 엄청난 퀄러티


한작가: 감독님에 이어서 우리 제작진에 대한 칭찬도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감독님을 보좌하는 막강 조연출을 비롯해 촬영, 조명, 음악, 편집, 미술, 기타 등등... 한국 드라마 제작 여건상 후반으로 갈 수록 생방송 티를 내며 완성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준 제작진 여러분, 완전 소중합니다. (1회부터 시작해 6회까지 등장한 태국 로케이션 장면이 단 3주만에 촬영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아, 갑자기 안구에 폭포가 흐르는 군요. 모쪼록 마지막 촬영까지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종방연 때 뵈면 한분 한분 업어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네요. 아무래도 저는 전생에 나라를 두 번 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류작가: 사과나무 픽쳐스의 뚝심있는 기획력과 제작관리 능력도 인정받아야겠죠. 한국 드라마계의 사과나무로 우뚝 서실 겁니다. 네... (이거 자꾸 하다 보니 수상소감이네;;)

제가 감독님과 연출팀에 놀란 건, 그 살인적인 스케줄에서도 일주일에 하루씩은 꼭 쉬는 날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물론 안 그랬으면 다들 병원에 실려갔겠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감독님은 종편보러 방송국에 나오시더군요. 제가 초반엔 편집실에 몇 번 들락거렸는데, 그때도 감독님이 잠을 거의 못 주무신 게 보기에 안쓰러웠어요. 나중에 현장 사진에 살 빠진 거 보곤 뜨악했죠. 그 와중에도 거의 눈빛은 개와 늑대 사이를 오가고 게시더군요. 배우들은 또 오죽했습니까? 준기씨는 거의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보여줬다고 하더군요. 모두의 살신성인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거겠지만, 열악한 환경을 배우와 스텝들의 희생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작금의 제작현실은 확실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9. “자기가 스파이라는 사실 조차 모르는 자. 그게 최고의 스파이지.” - 완소주연배우들


한작가: 전에 어느 분이 개늑시 팀을 드림팀이라고 하시더군요. 백번 공감했습니다. 제작 스탭은 물론이고 우리 배우들은 주조연, 단역 가리지 않고 어느 한분, 모자란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들린 듯한 연기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 이준기, 정경호, 남상미.... 젊은 연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관록있는 연기로 극을 받쳐주신 김감수, 최재성, 성지루, 이기영, 정경순, 이미영. 학학... 숨차네요. 게다가 한회에 몇씬 등장하지 않아도 존재감을 풍겨주던 박혁권, 이태성등의 조연진들. 활자로 된 캐릭터에 그 이상의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모든 연기자들에게 진심어린 배꼽인사 드리고 싶네요.

류작가: 전 이 대사를 이렇게 바꿔보고 싶어요.

‘자기가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자. 그게 최고의 배우지.’

전 이제 우리 배우들이 이준기, 정경호, 남상미로 안 보이고 이수현, 강민기, 서지우로 보입니다. 진심으로 우리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매회 감탄해왔어요.

애초에 이 주요배역들에 나이대가 좀 있는 배우들이 거론되었었어요. 옛날이야기죠. 아무튼 그때 한작가님과 제가 생각했던 건, 이건 어찌되었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부모 대에서부터 이어져온 악연으로 인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뿌리채 흔들릴 수도 있고, 그 악연을 종식시키고자 자기 모든 걸 내던질 수도 있는... 완전한 어른이 되기 직전의 소년, 소녀의 얼굴이 남아있는 배우들의 몫이라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 이준기, 정경호, 남상미가 아닌 수현, 민기, 상미는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정말 밤을 새가면서라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회별로, 명장면, 명연기... 짚어가면서.

한작가: 종방일 오후에 모 드라마 잡지와 인터뷰가 있다죠? 그때 마저 풀어보세요.

류작가: 아무튼 이런 배우들과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전... 전생에 왕의 남자였을까요? (퍽퍽!!!)

 

10. “그 놈의 마오마오마오” - 뛰어난 배우들의 앙상블


한작가: 김갑수, 최재성, 성지루, 이기영, 정성모, 이미영, 김정란 님을 비롯한 중견 배우분들의 내공을 건 연기대결도 굉장했습니다.

류작가: 말하면 입 아프죠. 하지만 말 해보겠습니다.

김갑수님은 한마디로 다크계의 거성이시죠. 대본을 직접 쓴 저희도 매회 보면서 ‘무서워...무서워... 정부장 무서워...’ 이랬으니까요. 근데 나중에 ‘칼잡이 오수정’과 촬영이 겹치셨는데, 변씨를 안테나를 쿡 찌르는 장면에서 슬쩍 다른 캐릭터가 보이는 거예요. 한작가님과 둘이  쿡쿡 웃었습니다. ^^

성지루님은 대사를 항상 특유의 톤으로 소화해내세요. 방송을 보다 문득 대사를 쓸 땐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하이톤으로 탁 대사를 치시는데, 그게 또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변씨 캐릭터는 성지루님이 만들어가신 부분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 되요. 특히 후반부 기억이 돌아온 수현을 붙잡아 줄 땐... 저도 눈물 촘 닦았어요. 땀지루님, 애정합니다~.

마오 역은 캐스팅 단계에서 여러 배우 분들이 물망에 오르셨는데요. 캐스팅 회의 도중에 제가 슬쩍 말을 꺼내봤어요. 최재성님은 어떠시냐고. 실은 당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노동석 감독님의 독립장편에 출연하신 최재성님의 모습에서 마오를 봤었거든요. 의외로 반응이 바로 오더라구요. 와, 좋다! 나중에 캐스팅 확정되고, 마오라는 보스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굉장히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일각에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 때문에 무간도의 증지위 캐릭터를 따라간 게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 애초에 작가들이 생각한 마오 캐릭터는 앞서 언급한 [테킬라 선라이즈]에서 명배우 고 라울 줄리아가 연기한 보스와 가까웠어요. 지금보다 좀더 느물느물하고 친근한 캐릭터 였죠. 근데 최재성님이 캐릭터를 잡아가시면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그러나 자식 앞에선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지금의 마오가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역시 작가들, 굉장히 만족합니다.

이기영님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갑상선으로 고생하시는 와중에도 정말 열연을 펼쳐 주셔서 방송 보면서 늘 감사하고, 또 힘내시라고 응원 드리곤 했습니다. 마지막 극장 장면에서도 그렇고, 나중에 수현이 훈련받는 상황에서도... 보기에 중호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섬세하게 접근해서 작가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캐치해 내주신 것 같아요.

이제 방송 끝났으니 푹 쉬시고, 완쾌하셔서 앞으로 좋은 작품에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작가: 정성모님의 경우, 역할 자체가 극을 주도하는 캐릭터가 아님에도, 안정적으로 무게 중심을 잘 잡아 주셨어요. 이미영님은 초반부 어머니가 부재한 수현이 유일하게 안길 수 있는 존재여야 했는데, 짧은 장면들에서도 깊은 감정을 잘 소화해 주셔서... 나중에 기억이 돌아온 수현이 잠시 뒷골목에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볼 때도 짠한 감정이 오게 만드셨죠.

류작가: 김정란님은 1회에 특별출연을 하시고, 원래는 그 뒤로 출연분량이 없었어요. 그때 너무 잘해주셨지만, 대본상 더 나올 부분이 없어 아쉬웠던 셈인데... 나중에 수현이 기억을 되찾고 은신처에 머무를 때. 분명히 다시 자살을 시도할 거라 여겼어요. 그때 수현일 잡아 줄 수 있는 게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일단 대본을 썼는데, 김정란씨 개인 사정으로 출연이 힘들 뻔 했어요.

한작가: 다행히 작가들의 강력 요청과 연출팀의 삼고초려(?)에 출연을 하게 되셨고, 결과적으로 기댈 데 없는 수현일 엄마의 환영이 붙잡아 주는 좋은 장면이 탄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류작가: [개늑시]는 중견 연기자분들 외에도 조연진들 또한 후덜덜했지요.

(이왕지사 시작한 자화자찬... ;;; 아니꼬우면 패스하셔요~^^)

한작가: 저는 조연배우들 중 극중 정보분석팀 팀장으로 등장한 박혁권씨를 내심 애정했습니다.

류작가: 100% 동감합니다. 하얀거탑의 홍샤인으로 이미 유명하신 분이죠. ㅋㅋ

한작가: 등장하는 씬이 많지 않음에도, 국정원 상황에 나올 때마다 장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줬어요. 제가 작업했던 [야수]에서도 권상우의 동료 형사 역으로 출연했는데 그 짧은 분량 안에서 진짜 형사같은 생활연기를 보여주셨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비중있는 역할로 꼭 다시 한번 모셨으면 하는 연기자입니다.

류작가: 첩자 에피소드에서도 포스를 작렬시켜 주셨죠. 전 이태성이란 배우를 [개늑시]를 통해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사랑니]도 있었고 [폭력서클]을 통해 와, 좋은 배우다 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구회말 투아웃]과 동시에 진행이 되면서 정주라는 캐릭터와, 배상식이라는... 거의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캐릭터를 연기했는데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도 참 맛있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식이만 해도 비호감되기 정말 쉬운 캐릭터거든요. 근데 거기에 사소한 자기만의 설정, 디테일 같은 걸 심어 놓은 게 보이고. 해서 결과적으로 악역은 악역이지만, 또 미워할 수만은 없는 배상무를 만들어냈죠. 14회 나가고는 배상무가 네이O검색순위 2위를 달리더라는...ㅋㅋ 사석에서 만났을 때도 굉장히 소탈하고, 짧은 몇 마디 말에서도 열정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배우를 해줘서 감사해요. ^^

한작가: 침묵의 보디가드, 지라프 또한 빼놓을 수 없죠.

류작가: 지라프는 도대체 왜!!! 말을 안하는 거냐. 정말 말들이 많았죠. 최지호님, 배우 본인도 참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무슨 묵언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 처음 지라프라는 캐릭터는 [도신]이나 [크라일프리맨]에 등장했던 말 수 적고 싸움에 능한 보디가드였어요. 그런데 이왕 말이 적은 거 아예 안하는 게 더 캐릭터를 부여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일 수도 있구요. 지라프의 대사에 관해선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11화 방영을 앞두고, 개늑시 갤러리에 홍보사 모 분이 사진과 함께 글을 남기셨습니다.

‘드디어, 지라프가 말을 합니다.’ 사진은 지라프가 전화기를 마오에게 건네는 장면이었구요.

작가들, 화들짝 놀랐습니다. 우린 대사를 쓴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궁금하면 우린 또 바로 전화합니다. 아마도 연출팀과 지라프역 최지호님이 밋밋하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 작은 재미를 주고자 즉석에서 대사를 짜신 듯 했어요. 알흠다운 광경이지요. 하지만!!! 우리 악마같은 작가들은 그런 것 원치 않아! 지라프는 끝까지 닥묵이어야만 한다! 우겼습니다. 결국, 지라프의 ‘네...’ 하는 대사는 편집에서 잘리고, 홍보사 분은 졸지에 없는 이야기를 하신 게 되어버렸죠.

왜 그랬냐구요? 왜 몸매 착하고 기럭지 훈훈한 우리의 지라프에게서 마지막 대사 한마디 마저 빼앗아 갔냐구요? 알고보면 최지호군 목소리도 완소라구요? (압니다. 우리 와이프 막돼먹은 영애씨보다가 지라프 목소리 췩오라고 대사 넣으라고 협박하더군요.) 당연히, 지라프를 위해 준비한 작가들 비장의 대사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 한 마디를 위해, 지라프는 15회 내내 굳게 입을 다문 것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살짝살짝 한 두마디 하긴 했어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기대하세요.

한작가: 아니, 이 사람이 스포일러를!!!

류작가: (모른척) 개인적으로 전 배상식의 부하1로 나오신 박재웅씨도 좋더군요. 네이버 프로필엔 상식 부하 꽃다발 역이라고 나와있네요. ㅎㅎ~

한작가: 2화에 마오를 마중 나온 상식 옆에서 졸업식 때 이후로 꽃다발 들어본 거 처음이지 말입니다... 이러다가 고등학교는 나왔냐고 쿠사리를 먹죠.

류작가: 원래는 배역 이름이 없었어요. 근데 2화에 재웅씨가 나오자마자, 앗! 저분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장기밀매단으로 나왔던 분이네? 하고 눈여겨봤었죠. 3화에서 요정에 웨이터로 가장한 수현을 막아서다 들어가라고 등 쳐주는 거 보고 그 뒤로 대사를 드렸어요. 근데, 역시 소화를 잘 하시더라구요. 짧은 장면에서도 어떻게 재미를 줄까 고민하시는 게 보이고. 그래서 아예 배역 이름을 ‘태곤’이라고 드렸는데, 조감독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혹시 부하1이 빠지고 새로 배역이 들어오는 거냐고... 실은 배우분이 대본보고 놀래서 전화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웃으며 자초지종을 설명 드렸죠. 근데 또 문제가, 이미 과학수사로 유명한 갤러들이 거미파 서열표에서 이 분 배역의 이름을 찾아내서 캡쳐까지 해 올린 거예요. ‘재훈’인가? 아마 미술팀이 급히 만든 이름인 듯 했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뒤엔 이름을 재훈으로 바꿨어요. 나중엔 아화랑 개띠네 뭐네 실랑이까지 벌이고... 배우분이 캐릭터를 만들어간 경우라고 볼 수 있어요.


11. “상대가 적이 아니라 같은 편이라도, 내 약점은 감춰야 해.”

- 작가들이 생각하는 개늑시의 장점과 약점


한작가: 처음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제일 많이들은 이야기가 ‘드라마는 온 가족이 저녁시간에 모여 밥 먹다 보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고... 해서 보다 말다 해도 내용이 죄다 이해가 되어야 한다.’ ‘고로 드라마는 떠먹여주는 거다.’ 등등의 대한민국 드라마 일반론이었어요.

류작가: 하지만 반대로 일각에선, 24, 프리즌 브레이크, 위기의 주부들, 그레이 아나토미, 하우스, 히어로스, 덱스터 등등등 제목만 나열해도 끝이 없을 명작 미드들이 한국 드라마팬들을 사로잡기 시작한 시기였죠. 그렇다고 미드를 따라잡자! 가 목표가 될 순 없고, 그저 우리 브라운관에서도 다양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 특히 ‘장르물’이 심히 고프다.... 는 작가들의 굶주림이 개늑시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한작가: 당연히 초반엔 굉장히 다방면으로 태클이 들어왔죠. 이야기가 너무 어둡다... 중간에 보면 이해가 안 간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나간다... 설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언더커버는 무간도 짝퉁이냐.... 또 기억상실이냐....

류작가: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닥 틀린 말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한작가: 기획 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될 만한 이유보다 안 될 만한 이유를 찾기가 훨씬 쉬운 이야기였으니까요.

류작가: 어쨌든 예상되는 단점이 분명한 만큼, 다수의 시청자들을 티비 앞에 앉히긴 힘들지라도 일단 보기 시작한 시청자들만큼은 정말 담 주가 궁금해서 밥도 안 넘어가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고문이 되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초기에 블로그에 글을 남겼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방송이 시작되고 나서 즐거운 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글 남겨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한작가: 일주일 고문에서 피국물 발언까지... 류작가의 어록을 따로 정리해야 할 듯.

류작가: 개인적으로 우리 드라마의 진정성을 찾자면, ‘장르의 우주 안에서 정말 마음껏 놀아봤다.’ 이 정도 일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진정으로.


12. “블랙요원이 연락두절 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요. 조직의 감시가 심해졌거나, 아예 저쪽에 넘어 갔거나... 이수현이 후자일 리는 없잖소.” - 시청률


류작가: 요 대사는 또 요렇게 바꿔보고 싶네요.

“시청률이 안 나오는 건 두 가지 이유에요. 운이 따라주지 않거나, 아예 재미가 없거나...

개늑시가 후자일 리는 없잖소.“ ㅋㅋ

한작가: 의외로 기존 홍콩 느와르나 범죄/ 첩보 장르물의 팬층이랄 수 있는 30대 전후의 남성분들은 초반에 거의 반응이 없었어요. 애초에 관심이 없었거나, 간혹 보더라도 ‘어디 어떻게 찍었나 보자’하는... 팔짱 낀 채 고개를 약 45도 기울이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셨더랬죠.

류작가: 첨엔 그런 점들이 좀 서운했지만, 반대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준 개늑 폐인들 (고삼서부터 두 아이의 어머니까지^^) 덕에 나중엔 시청률 따위 멍멍이나 줘 버려~ 하게 됐지요.

한작가: 시청률... 솔직히 말아면 아쉽죠.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11회 결방이 특히 컸던 것 같아요. 그때 떨어진 시청률이 다시 회복이 안됐으니까.

류작가: 하지만 15% 정도의 (장르 드라마를 갈구하는) 고정 팬층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른 드라마를 쓰게 되더라도, 이 15%를 믿고 쓰게 될 것 같습니다.


13. “보통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넘어와요?” “뭐 열에 일곱은.” - 낚시 예고편


류작가: 매회 예고편에 낚였다는 시청자들이 많았었죠. 김재홍 조감독님의 작품이었습니다. 본방보던 작가들도, 끝날 때 나온 예고편을 보곤 낄낄대곤 했어요.

‘아유, 저걸로 또 저렇게 낚으시다니...’

한작가: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예고용 촬영 소스를 찍어내는 제작진, 그걸 입수하자마자 정말 씽크빅한 편집능력을 보여주신 김재홍 조감독님... 감독 연출작을 기대합니다.


14. “생각만 해도 따뜻해지는 추억이 누구나 하나쯤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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