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지 몇분이 지났을까. 허남준이 지닌 독특한 호흡과 말의 리듬을 따라 ‘제2의 지문’이라는 성문, 음성의 무늬를 그려보고 싶어졌다. 드라마 <유어 아너>의 캐스팅 카드를 손에 쥔 유종선 감독이 다른 마음을 품었을 리 없다. “호흡을 자기 마음대로 쓴다. 좋은 쪽으로 이상하다”는 평가와 함께 역할을 제안받은 허남준은 “벌벌 떨면서” 피 칠갑의 범죄극을 첫 주연작으로 만나게 됐다. 보고 자란 것이 아버지(김명민)의 폭력 성향인 데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부재로 고통받은 한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인 김상혁은 그간 치외법권적 삶을 살아온 대가로 인간 허남준을 만나 철저하게 해부됐다. “상혁이는 공허했고 고립되어 있었지만 죽고 싶거나 살아갈 의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살아서 할 게 너무 많았을 것이다. 순간순간 필요한 자극을 좇고 그것이 채워지면 삶은 그냥 살아졌던 것. 생각 없음에서 오는 악, 그것이 김상혁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꾼이 창조한 가상의 발명품 악인의 옷을 입어보기. 커리어 도약에 앞선 무자비한 도전이었다.
2019년 영화 <첫잔처럼>으로 데뷔해 <스위트홈> 시리즈의 강석찬과 <혼례대첩>의 정순구로 대중의 시야각 안에 진입하기까지 “5~6년이 금방 지나갔다”고 말하는 허남준은 연기라는 유속에 몸을 맡겨 자유롭게 흘러온 배우다. “실용음악 입시를 준비하다 너무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연기로 방향을 틀어 재수까지 했음”을 고백하는 건 그에게 여전히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20대엔 생애 첫 오디션(영화 <인질>) 일정이 잡히자 “친구와 함께 축제부터 즐겼다”던 근거 빈약한 낙천성도, “안 해도 되는 일을 벌이다가 내가 나를 가난하게 만든 경험들”에서 오는 슬픔도 다 있었다. 허남준은 지금 이 시기를 “운때가 맞았다”고 표현하며 존재의 주변에서 작용하는 미지의 힘에 공을 돌렸다. 보는 사람은 알고 있다. 그 힘은 결코 자연발생할 수 없었다는 것을. 모험적인 영혼이 발굴해낸 길이자 제 주인을 찾은 재능이 다다른 곳이라는 것을.
FILMOGRAPHY
영화
2024 <HELLPER>
2022 <테이크오프: 파도위에 서다>
2021 <인질> <더블패티>
2019 <낙원의 밤> <첫잔처럼>
드라마
2024 <유어 아너> <스위트홈 시즌3> <로얄로더>
2023 <스위트홈 시즌2> <혼례대첩>
2021 <설강화: snowdrop>
2020 <미씽: 그들이 있었다> <엑스엑스>
https://naver.me/GCvvlmQ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