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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아없숲 [인터뷰] 감정이 옮아가는 서스펜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연출, 손호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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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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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는 두 남자 전영하(김윤석), 구상준(윤계상)의 삶에 살인사건이 무심코 내던져진다. 사건의 주변부에 있던 두 남자는 살인사건이 남긴 파장에 우연히 빨려 들어가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비극을 마주한다. <미스티> <부부의 세계> 등을 흥행시킨 모완일 드라마 PD는 2021년 ‘JTBC X SLL 신인작가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대본을 읽고 “재밌으나 시리즈로 만들기엔 위험한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이 작품에 매료된 자신을 발견했다. 작품을 쓴 신인 손호영 작가 또한 모완일 PD와의 첫 미팅 자리에서 “영상화가 용이하지 않은 대본이라 제작은 어려울 것 같다”라고 답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영상매체로 구현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라 단정했던 두 창작자는, 어느새 의기투합해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함께 지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도식적 구조의 작품이다. 두 시간대에 사는 두 남자(전영하, 구상준), 두 시간대 모두에 걸친 한 여자(윤보민) 그리고 두 남자의 삶을 각각 뒤흔드는 두명의 살인범(유성아, 지향철)이 있다. 작품의 얼개는 어떻게 세웠나.

 

손호영 시작은 영하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펜션을 운영하는 한 남자에게 우연히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에 간접적으로 얽힌 남자의 선택이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휘말리게 만드는 이야기를 쓰며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수많은 삶의 선택지에서 영하와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때 상준의 이야기를 더했다. 유사한 사건을 겪고 두 갈래 길을 걸은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병렬한 것이다.

 

- 두 시점에 놓인 이야기가 모두 흡인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 이야기의 함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서사의 밀도를 고려하며 작품을 쓰고 연출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모완일 영하와 상준 사이엔 20년의 시차가 있지만 영하와 상준이 동시에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채 작품을 만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영하의 이야기를 상준의 감정이 받아주고, 상준의 이야기를 영하의 감정이 받아내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편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가 다른 쪽으로 옮아갈 때 컷 전환이 느껴지지 않도록 공을 많이 들였다. 시청자들이 작품 속 시점(時點)이 무작위로 바뀌는 게 아니라 감정의 흐름에 따라 넘나든다는 걸 편하게 받아들이면, 작품 속 쏟아지는 정보량을 숙제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손호영 현재 시점인 영하의 서사가 과거 시점인 상준의 이야기보다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준의 내러티브를 1화부터 3화까지 드라마틱하게 압축해 전하고, 과거와 현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말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맞춰갔다.

 

- 양 시간대를 절묘하게 오가는 매치컷이 인상적이다. 이때 연결고리로 다양한 시·청각적 요소를 활용했다.

 

모완일 체감하는 만큼 매치컷을 자주 활용하진 않았지만 매치컷이 많다고 느끼게 연출하고 싶었다. 긴밀한 편집을 구상할 수 있는 요소가 대본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고민의 흔적이 많은 대본이었다.

 

누구든 개구리가 될 수 있다

- 홈인베이전 장르의 맥락 아래 있는 작품이다. 그 장소가 가족 공동체가 거주하는 집이 아닌 두 남자가 자기 집처럼 여기며 자영업하는 숙박업소일 뿐이다.

 

손호영 숙박업소가 지닌 공간적 특성에 집중했다. 불특정 다수의 투숙객이 방문하는 공간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면, 그 익명의 투숙객이 평화를 깨뜨리는 침입자라면 어떨지 상상했다. 영하와 상준이 마주한 사건은 두 남자와 큰 연관이 없는 일에서 출발한다. 주변인처럼 존재하는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야기, 누구든 작품에서 언급하는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착점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개구리가 지칭하는 대상이 캐릭터에 따라 작품 내내 변주되기도 한다. 어떻게 이 속담을 이야기와 연결지었나.

 

손호영 처음엔 상준의 대사로 떠올렸던 속담이다. 큰 비극의 당사자가 되면 왜 내가 그랬을까, 왜 하필 나였을까 하며 자문할 수밖에 없다. 상준이 이 말을 누군가에게 건넬 땐 조언 내지 당부의 뉘앙스라면, 이 대사가 여러 인물 사이에 오갈 땐 위로의 정서가 그 안에서 순환하길 바랐다.

 

- 작품의 제목과 관련이 깊은 내레이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를 오프닝마다 반복 배치했다. 어떤 경위로 내레이션을 구상했나. 문어체로 쓰인 내레이션을 배우들이 녹음할 때 까다로워하진 않았나.

 

손호영 위 내레이션 다음에 이어지는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라는 문장이 철학적이라, 이를 범죄 사건에 빗대면 어떻게 해석될지 거듭 생각했다. 암수범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처음 범죄의 정황을 살피고도 외면하길 택했던 영하의 방관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맥락은 ‘만약 내가 범죄 피해의 당사자가 되어 나무처럼 쓰러진다면 누가 이 소리를 들어줄까?’라는 질문을 건네는 일이었다. 피해자 입장에선 이 질문이 가장 유효하지 않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전부 돌에 맞은 개구리고, 어쩌면 각자의 텅 빈 숲속에서 홀로 쓰러지는 나무들이라고 상정하며 골자를 세워갔다. 이들이 쓰러져갈 때 소리가 났을까?

 

모완일 크랭크업 이후 몇달이 지난 후 내레이션 녹음이 이루어졌는데도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건넬 필요가 없었다. 이미 배우들이 내레이션을 어떤 감정으로 읽을지 욕망하는 게 느껴졌다. 김윤석 배우도 윤계상 배우도 본인들이 오케이라 수긍할 때까지 내레이션을 녹음했다. 그렇게 각 배우가 수락한 오케이 버전이 깔렸다.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여러 정보를 가타부타 설명하기보단 대뜸 미지의 정보를 던지는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택한다. 이후 여러 정보의 조각을 시청자가 능동적으로 조합하게끔 만드는 일이 작품의 고유성을 더한다. 심지어 상준이 사는 시대가 현재로부터 20년 전 과거라는 단서도 시청자가 알아서 발견해야 한다.

 

모완일 대본의 고유함이다. 이미 대본부터 다짜고짜 정보를 툭 던지는 스타일의 글이었다. 문제는 내가 소심한 편이라(웃음) 이런 불친절한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을지, 더 나아가 좋은 트릭이라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손호영 감독님과의 대화 후 강화된 점도 있지만, 그냥 애초에 그렇게 쓰게 됐다. 영상화 과정에서 극대화되는 미스터리함이 있다고 본다. 상준이 011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를 쓰고, 구권 1만원 지폐가 나오는 장면은 영상일 때 좀더 재밌어지니까.

 

- 5화를 기점으로 작품이 반으로 접히는 인상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미스터리 장르가 이야기를 견인한다면 5화에선 블랙코미디적 소동극이 두드러진다. 그러다 6화에선 스파이 장르물 같은 액션이 두드러지고, 7화와 8화는 형사 보민(이정은)이 본격적으로 등판하는 수사물이 된다. 다양한 장르를 한데 섞을수록 작품의 일관성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손호영 영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장르적인 변곡점이 있어도 결국 하나의 종착점으로 귀결될 것 같았다.

 

모완일 후반부뿐만 아니라 작품의 전반부도 에피소드별로 성격이 전혀 다르다. 어떤 에피소드는 대사가 극단적으로 없어서 하루 종일 대사 한마디만 녹화한 적도 있을 정도다. 매번 지향점을 달리 설정하는 일이 재밌었다. 전부 별도의 장르라 해도 이를 최선을 다해 밀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면, 시청자들은 장르가 봉합된 시침선을 인식하기 이전에 캐릭터의 내부로 이입할 수 있다. 일견 블랙코미디처럼 즐기다가도 그 속에 담긴 영하의 감정을 읽고, 액션을 따라가다가도 총으로 저격할 수밖에 없는 기호(박찬열)의 마음을 본다.

 

- 미스터리 구조는 PD님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부부의 세계>의 1화에선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군지, <미스티>에선 누가 케빈 리(고준)를 살해했는지를 찾는 게 작품의 서브플롯이었으니까. 이번 작품을 연출할 때 전작의 연출 경험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나.

 

모완일 나 스스로도 가장 흥미를 느끼는 구조다. 처음 작품을 접할 때부터 성아가 궁금했다. 육하원칙에 의거한 모든 질문을 성아에게 던지고 싶었다. 내가 성아에게 느끼는 궁금증의 크기를 시청자가 마지막 8화까지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일념이었다. 그리고 결말까지 함께 달리면 결국 캐릭터들이 저지른 행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감정이 남는다. 그 순간에 이르면 캐릭터의 동기를 추적하기보다는 캐릭터의 여생을 응원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 배우들의 호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유성아로 분한 고민시 배우의 경우 작품 안에서 전압 자체가 전과 다르다. 김윤석, 이정은 등 선배 배우와 대치하는 장면들에서도 동일한 카리스마로 맞붙다 못해 대사의 리듬이나 에너지의 완급을 능란하게 주도하는 여유도 보인다.

 

모완일 솔직한 심정으로 그간의 연출작에 대해 운이 좋다고 생각하기보단 내가 투입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런데 고민시 배우를 만난 건 정말 천운이다. 이 친구는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면 경쟁자들이 어떻게 쫓아오나 싶을 정도로,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성실하다. 연기뿐 아니라 매사에 근면하다. 초반엔 돌봐야 할 배우라 속단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이 친구로부터 오히려 보살핌을 받는다는 감각마저 들었다. 언제나 예상치를 벗어나는 연기를 선보여 고민시 배우에게 의지하는 상황이 점점 늘었다.

 

- 고민시 배우와는 작품 합류 전 두 차례 미팅을 했다고.

 

모완일 고민시 배우의 전작을 보고 내가 짐작한 이 친구의 캐파가 있었다. 그런데 고민시 배우에겐 그 캐파를 초과하는 매력이 있고 무엇보다 그 매력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나는 그런 배우들을 정말 사랑한다. 자기 안의 능력이 출중해도 그걸 끌어안고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 전소해내는 배우가 있다. 고민시 배우는 후자다. 나만 잘하면 지금 눈앞에서 보는 그의 매력을 잘 담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잘 담는다면 사람들도 정말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팅할 때만 해도 꽤 오래전이라 이 매력을 나만 봤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작품 공개 전 개봉한 영화나 <서진이네2> 등을 보니 그건 아니었더라.

 

- 보민은 이전에 쉽게 볼 수 없었던 형사 캐릭터다. 본능적으로 범죄에 이끌리지만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고, 전사가 있지만 그 전사가 본인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지 않는다. 경력을 착실히 쌓아 지금에 이른 직업인으로서의 묘사도 무척 섬세하다. 사람 냄새 나는 형사가 아닌 진짜 ‘사람’ 같달까. 보민이 이렇게 육화된 데엔 2인1역을 연기한 두 배우(이정은, 하윤경)의 힘이 커 보인다.

 

손호영 감독님과 보민에 관해 많은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감독님이 보민에겐 생활감이 더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고, 이 점이 이정은 배우를 만나 더욱 강화됐다. 작품 속에서 이정은 배우가 정복도 생활복도 입는데 어떤 옷을 입든 카리스마와 생활감이 동시에 느껴져 좋았다.

 

모완일 나의 최애 캐릭터다. 한데 나는 아직도 보민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보민을 좋아할 이유가 없는데도 작중 보민에겐 언제나 극단적인 호감과 신뢰가 샘솟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사가 대개 도구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거나 정의의 사도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클리셰를 한 꺼풀 걷어내고 보면 그 안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잘 그린 후에 형사의 설정을 얹으면 보다 살아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다. 보민이 자신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정은 배우에게 계속 미안해하며 디렉션을 건넸다. “선배님, 이 장면에선 이런 정서를 표현해주세요. 선배님이 표현할 그 정서를 작품 내에서 따로 설명하진 않을 거예요. 선배님의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이 보민에게 의문을 품지 않게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이정은 배우가 나를 참 대책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좌중 웃음) 이정은 배우와 즐겁게 고민하며 보민을 만들어갔다.

 

이야기가 비극 안에 멈춰 서지 않도록

- 성아의 직업이 화가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작품의 섬세한 프로덕션디자인이 눈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영하가 들르는 세탁소마저 화려하다.

 

모완일 이 작품은 빌런에게 맞서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의 주변부에서 피해를 본 이들이 소중한 자기만의 공간을 잃고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다. 이걸 포인트로 잡은 후 영하의 펜션, 상준의 모텔 등을 구상해갔다. 상준이 모텔을 처음 운영할 때의 마음은 우리 모두 겪는 일 아닌가. 가령 내가 새 차를 뽑았다고 치자. 남들은 그저 “네 수준에 맞는 차를 샀구나”라고 넘길 테지만, 그 차를 산 나는 구매를 확정하기까지 천번을 고심한 후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을 터다. 영하에겐 펜션이, 상준에겐 모텔이 새 차와 같은 공간이다. 그들이 모텔을 인수하고 펜션을 지은 지역조차 얼마나 고심해 골랐겠나. 이들이 느낄 법한 소중함을 미술로 표현하고 싶었다. 제3자의 시각에서 다큐멘터리처럼 공간을 그리는 시리즈가 아니라, 자기 돈으로 직접 지은 자신의 공간을 소유한 사람의 눈에 비친 공간을 그리길 바랐다. 세탁소도 공들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멋들어진 공간에서 세탁도 하지만 사장님이 맛있는 커피도 한잔 공짜로 내려주고 동네 이웃들과 모여 농담도 나눌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 있다면 다들 자신이 누리는 일상도 소중히 느끼지 않을까. 이런 점을 종합하며 미술감독님과 현실 세계를 어느 정도 가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종두(박지환)가 운영하는 슈퍼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상준과 종두의 관계가 정말 막역한데, 사실 이 둘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데 살다보면 뒤늦게 알게 된 소중한 인연이 있지 않나. 그 관계의 소중함이 종두의 슈퍼에 표현되길 바랐다. 슈퍼에서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의 분위기를 통해 시청자가 무의식적으로 그 공간에 함께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으면 한다.

 

손호영 펜션의 수영장의 경우 처음부터 대본에 적어둔 공간이다. 그게 정말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처음 대본을 쓸 때부터 물의 이미지는 가져가려 했다. 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상을 원했고, 여유로운 숲속 펜션에서 유유자적하며 수영하는 그림이 담기면 좋을 것 같았다.

 

- 상준과 기호는 한평생 회한에 함몰돼 살아간다. 작품 초반엔 이렇게까지 일가족에게 혹독한 슬픔이 몰아칠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이들의 비극이 시간이 지나 영하에게 가닿는다는 점에서, 영하로 인해 두 남자의 슬픔이 해소된다는 점에서는 꼭 필요한 설정이다. 상준과 기호가 겪는 고통의 당위성에 관해 어떤 논의를 거쳤나.

 

손호영 은경(류현경)의 결말을 포함해 상준의 가족 이야기가 과도한 비극이 아닐지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젊은 상준과 어린 기호, 은경이 살던 20세기 말 21세기 초를 떠올리면 트라우마라는 용어조차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던 시대였다. 결국 이들이 느낀 아픔은 뭇사람들의 통념보다 크고 깊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비극을 선택했다. 다만 현재 시점의 영하가 두 남자의 슬픔을 찾아내고 이에 따라 상준과 기호가 서로를 찾아냄으로써 이야기가 비극 안에 멈춰 서지 않도록 배치했다. 이 점이 작품 전체의 주제와도 맞는다.

 

모완일 상준 가족의 이야기를 찍는 내내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도 현장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연출자의 입장에선 이야기에 관한 신뢰를 견지하고 작업했다. ‘너무 심한 비극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구성이 무너질 수 있다. 큰 나무가 쓰러질 때 그 소리를 주변 사람들이 듣지 않아서 그렇지, 큰 나무가 쓰러진 이후 그 나무에 다가가 사연을 살피면 모두 상준과 같은 정도의 슬픔 안에서 삶을 이어간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또 듣고자 할 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상준의 서사와 하등 다르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 작품의 결말에 이르면 영하도 보민도 모든 비밀을 함구한 채 살아가길 선택하는데.

 

손호영 나의 이상이고 판타지 같은 결말이다. 두 사람이 각자가 서 있던 첫 자리를 그대로 지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내린 결정이다. 영하의 경우 작품 초반 선택한 침묵과 결말에 선택한 침묵의 양상이 다르다. 영하의 첫 침묵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마지막 침묵은 그가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한 선택이다. 오히려 자신을 지킬 때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비밀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의 결말이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1. 다음 장면을 위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손호영 모완일 감독님에게 전화를 건다.

 

모완일 더는 미룰 수 없을 때까지 생각을 미룬다. 지옥 속에 살다 촬영 당일이 닥쳐 현장에 출근하면 오히려 현장에서 고민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날의 공기, 스태프들의 역량, 배우의 역량 등의 도움이 작용하거든. 하윤경 배우와 김종태 배우가 ‘술래’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찍기 전까지 나도 배우도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촬영지인 진부쉼터의 풍경과 당일 내린 습한 눈이 묘한 분위기를 형성해주었다.

 

2. 차기작에서 다루고 싶은 소재

모완일 성숙한 20대가 나오는 이야기. 왜 우리나라 드라마는 어떤 나이든 실제 그 연령이 보이는 성숙함보다 어리게 캐릭터를 묘사할까. 특히 20대를 묘사하는 방식이 그렇다. 20대가 오히려 가장 성숙하다고 본다. 좀더 나이가 들면 현실을 알아 비겁한 선택을 내릴 때가 많은데 20대는 그렇지 않으니까. 가장 성숙한 결정을 짓고, 가장 멋진 인생을 사는 한철이다. 부모의 그늘이나 사회 시스템의 굴레가 아닌 자기 앞의 생을 사는 20대를 그리고 싶다. 말하고 보니 꼰대 같다.

 

손호영 있지만 차기작을 통해 공개하겠다. (웃음)

 

http://cine21.com/news/view/?mag_id=10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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