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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 '리볼버'의 과도한 경직이 감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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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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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는 여자의 손에는 리볼버가 들려 있다. 이 리볼버는 2년 전 하수영(전도연)이 연인을 대신해 비리를 덮어쓸 때 7억원의 보상을 약속하는 구두계약이 녹음되어 있던 핸드폰과 맞바꾼 것이다(두 사물이 직접 교환된 건 아니지만 리볼버는 여자가 데이터 복구에 실패한 핸드폰을 버리고 빈손이 되었을 때 찾아온다. 리볼버는 과거를 냉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만이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일을 쉽게 해결해줄 힌트 대신 일을 더 어렵게만 만들게 될 무기다. 앞으로 그녀와 대면하게 되는 모두가 그녀를 골치 아파할 것이다. 수영은 스치는 인연마다 사사롭게 얽혀 있고, 정윤선(임지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적대감을 비친다. 실연, 원망, 동경, 동질감 그게 무엇이든 총구 앞에서는 평등해지는 것처럼. 그러나 이들이 사나워지는 것은 반대로 수영의 반응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영은 자신의 요구를 순진하게 관철하면서 탑을 오르는 사람이다. 전 연인의 죽음에 얽힌 의혹이나 배신에 대한 분노를 내비칠 만도 한데 수영은 그런 충동에 쉽사리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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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볼버의 관능


수영은 리볼버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제목이 ‘리볼버’인 것이 의문스러울 정도로 이 무기를 소극적으로 대한다. 중요한 것은 리볼버가 수영의 편에 있다는 긴장감이다. 단순하게는 총기를 손에 쥐는 것만으로 해소되는 살의가 있다. 한번의 총성으로 무엇이든 날려버릴 수 있다면 그것을 이미 해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리볼버는 범죄에 유용한 도구이지만 난잡하게 발사될 수 있는 종류의 무기는 아니다. 단 몇발만을 장전할 수 있다는 룰렛의 구조로 인해 리볼버는 총을 든 자를 망설이게 하고 결단을 둔하게 만든다. 약간의 비약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리볼버가 가진 관능은 질주하는 폭력이 아닌, 폭력의 절제를 추동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리볼버는 전적으로 수영이 싸우는 방식에 어울리는 무기다. 말하자면 <리볼버>의 액션은 총기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총기를 쥔 손에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처럼 불가해한 긴장 속에서 일어난다.


오승욱 감독이 수영을 두고 “증오와 복수의 감정이 넘쳐흐르지만 그것을 서둘러 표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듯 그녀는 시종일관 품위를 지키고자 한다(<씨네21> 1468호). 수영의 매력이 리볼버의 관능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리볼버>라는 영화 전체를 경직되게 만든다. 이 경직은 하드보일드 장르의 영향일 수도 있고, 감독의 말처럼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가진 본연의 품위를 화면에 기입하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도도함일 수도 있다. 심지어 이 영화는 많은 필자들이 지적하듯이 대다수의 갈등을 액션보다는 대화로 풀어나가며 이들의 대화는 말의 단위에서조차 뻣뻣한 긴장을 유지한다. 정 마담과 신 형사(김준한), 그레이스(전혜진)의 심복이 서로를 감시하고 보고하는 관계는 비밀과 배신이라는 누아르의 테마를 암시하지만 클라이맥스의 액션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절차가 말의 충돌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는 복수하는 여자, 하드보일드, 부패한 형사의 범죄라는 요소들을 묘사하면서도 묘하게 소극적이다. 장르는 활극으로 펼쳐지기보다 장르적 재현으로 코드화된다. 그리고 나는 이런 반칙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쪽이다. 이건 장르와의 작별이 아니라 장르를 너무도 충실하게 위시한 결과물이며 한없이 진심에 가까운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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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여자의 이미지를 재구성하기


수영이 리볼버를 꺼내는 순간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다. 영화는 수영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터져나오는 무대를 화종사로 가는 길목에 마련한다. <무뢰한>에서 재곤(김남길)과 형사 일당이 준길(박성웅)을 검거하던 장소가 기찻길과 도로 사이에 놓인 정차구역이었던 것처럼, 서로를 뒤에서 불법적으로 쫓던 인물들이 발각되고 충돌하기 위해서 오승욱의 영화는 흐름을 통제하거나 흐름에 속하지 않는 공터로 향한다(<리볼버>에서는 도로 옆길에 난 숲이라는 장소로 이탈한다). <리볼버>에서 액션은 언뜻 보기에 드라마적인 선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인위적인 무대에서만 성립하고 있다. 액션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영화의 장악력이 극단에 다다랐을 때, 영화는 숨겨둔 총알을 장전하듯 리볼버를 출현시킨다. 그러나 수영의 리볼버는 누구도 살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기 위한 정당한 협상의 도구로 쓰인다. 리볼버는 총알이 장전된 룰렛의 위협과 긴장이라는 기능만 활용하고 물러난다. 다시 말해 그녀의 쟁취는 실질적인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라는 긴장을 자아내는 코드를 통해 성립된다.


적을 향해 리볼버를 겨누는 여자의 몸짓은 어떤 표상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이 이미지의 계보를 단순하게 거슬러 올라가자면 <친절한 금자씨>를 빼놓을 수 없겠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오히려 <리볼버>가 이 표상을 다루는 방식은 <친절한 금자씨>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백현주 작가의 <친절한 영자씨>라는 영상작업에 좀더 유사하다. <친절한 영자씨>는 금자(이영애)가 자신을 납치하려다 실패한 납치범을 향해 리볼버를 겨누는 장면을 촬영하는 현장을 반복해서 재연한다. 김새벽 배우가 금자 역할을 맡고, 겨울이었던 원작의 배경을 재연하기 위해 마을의 할머니와 소녀들이 배우가 걸어가는 길에 눈처럼 흰 소금을 뿌려준다. 복수심이 끓어오르는 런웨이는 축복을 내리는 버진로드처럼 변모하고 촬영 현장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일상적인 해프닝이자 축제에 가까워진다. 이 작업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촬영지였던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촬영 현장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친절한 영자씨>가 흥미로운 것은 영화를 서사로부터 떼어내는 유희에 동참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쾌락은 재현 자체가 주는 쾌락”(<영화, 물질적 유령>, 질베르토 페레스 지음)이라는 사실을 누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리볼버>의 쾌감은 촬영 현장을 재연하거나 누아르의 문법을 대놓고 비트는 방식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오승욱의 누아르에서 경직이라는 상태는 액션의 부재가 아니라 장르와 그것을 과대표하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절차에 수반되는 부자연스러움이며 장르가 노출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는 영화가 열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무뢰한>의 마지막 장면에서 재곤이 혜경(전도연)에게 찔린 상처를 붙잡고 내리막길을 위태롭게 걸을 때, <리볼버>에서 돌무더기가 깔린 울퉁불퉁한 바닥에 놓인 앤디(지창욱)의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그레이스가 꼼짝 못할 때, 영화는 맨끝에 이르러 경직을 넘어 액션이 소진된 신체의 상태를 제시하며 분명 어떤 정서와 조응한다. 이 과도한 경직이 실은 넘치는 충동과 절절함에 대한 위장이라는 사실을 최후에 가서야 드러낸다. 수영이 리볼버를 겨눈 채 전진하는 여자인 동시에 사랑에 투신하는 여자, 배신당한 여자, 실연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여자인 것처럼. 이 영화가 재현하는 누아르가 실은 불발된 멜로의 변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모르게 납득시키고야 만다. 왜 모든 사랑은 잘못 장전된 총알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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