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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 '딸에 대하여' 오민애X임세미X하윤경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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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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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서사를 탐구하는 작가들이 채택하는 주요 관계가 바로 모녀다. 엄마와 딸 이야기를 익숙한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이유다. 그러나 이 영화, <딸에 대하여>는 서로를 낯선 소우주로 여기는 엄마와 딸 사이에 그들만큼 복잡한 새로운 항성들을 데려다놓는다. 집을 잃고 엄마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 딸 곁에는 레즈비언 연인이,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 곁에는 혼자 된 노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김혜진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의 1인칭 시점을 확장해 여러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바라본 <딸에 대하여>는 ‘생활동반자’가 된 혈연·비혈연 공동체의 유대를 찬찬히 가늠해가는 영화다. 동성 반려자가 있는 삶, 청년 주거와 노인복지 문제 등이 조밀하게 얽힌 이 세계의 여자들은 어떻게 서로를 위해 생존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 전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영화 속 관계처럼, 엄마(오민애)와 딸 그린(임세미), 그린의 연인 레인(하윤경)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점점 애틋한 사이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어느덧 극 중 배역과 닮은 성질로 서로에게 가까워진 세 배우가 전하는 <딸에 대하여>, 그리고 엄마에 대하여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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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제를 빼곡히 채운 단편영화들로 진즉 존재감을 각인했고, 독립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초록밤> <첫번째 아이> 등으로 부지런히 활동해온 오민애를 만났다. <딸에 대하여>에 이어 <파일럿> <한국이 싫어서>,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등으로 요즘 우리를 분주하게 노크하고 있는 그다. 오민애가 연기한 <딸에 대하여> 속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노인들의 삶에 자기 미래를 겹쳐둘 때 불안한 한편, 주거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딸 그린(임세미)을 통해 청년세대의 고충도 피부로 느낀다. 게다가 당장 그의 삶에서 더 시급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슈는 따로 있는데 바로 동성 연인인 딸 커플과의 동거다. 배우 이전에 인간으로서, 생활에 밀착한 다양한 경험을 내재한 배우 오민애가 연기한 엄마의 행로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한 사람의 호흡과 무표정 안에 그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믿는 배우는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의 완고한 입매와 지친 눈동자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랑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 얼마 전 열린 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이하 정동진영화제)에서 <딸에 대하여>가 관객 투표상인 땡그랑동전상을 받았다. 한여름의 정동진을 잘 즐기고 돌아왔겠다.
= 밤 11시 다 돼서 상영이 끝났는데 사람들이 빠지질 않더라. 그 열기와 다정함에 얼마나 놀랐는지! 정동진영화제는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둘째 날엔 <딸에 대하여> 팀원들과 밤의 해변에 놀러갔고 나 혼자 밤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아무도 없는 바닷물에 몸을 담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잊지 못할 것 같다.



- 영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실제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딸에 대하여> 속 엄마의 심리에 밀착하기까지 이 여성이 처한 현실의 사정을 어떻게 해석했나.
= 처음엔 내 경험을 대입할 생각은 못했다.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중년 여성의 초상을 그렸다. 우리 나이의 많은 여성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할 기회가 없다. 사회의 평판에 아주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딸 그린이 그저 보통 사람처럼 살아주면 좋겠다고 바랐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망, 부끄러움 같은 감정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젊은 세대와 괴리감을 느끼는 상황에 처한 게 엄마의 현실이다. 게다가 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자녀도 다 컸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삶에 대한 열망도 있는데 정작 몸은 여기저기 아파오면서 늙음에 대한 두려움도 굉장히 커져 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스스로 경제권도 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서 몸과 마음 모두 불안한 상태가 이 캐릭터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선이라고 봤다.



- 타인을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가족관계 내에서 실천해보는 영화라고 봤다. 장년의 나이대에는 영영 묘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딸에 대하여>의 엄마는 그것을 해낸다.
= 말 그대로 스며들듯 벌어지는 일이다. 처음엔 엄마도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종착지에 다다르면, 건널목의 맞은편에서 자기 딸 커플과 비슷한 모습을 한 연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마음속에 사랑을 품는 건 그 자체로 너무 귀한 일이라고. 사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품고 살아가길 원한다. 연예인을, 강아지를, 식물을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데 정작 가족과는 그걸 잘 못 이룬다. 영화 말미에 엄마가 깨달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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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에 대하여>를 비롯해 <파일럿> <한국이 싫어서>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도 얼마 전 공개되었는데, 요즘을 오민애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이 정도로? (웃음) 전성기는 이후로 따로 남겨두자! 찍어둔 작품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긴 한데 사실 요즘 내 생활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올해 1월을 기점으로 5~6년 만에 처음 한동안 일이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한번 제대로 도전해보자고 결심한 것이 2018년이다. 그때 필름메이커스에 내 프로필을 올려 독립 단편영화부터 찍기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정말 쉼 없이 달렸다. 그러다보니 일정이 조금 잠잠해진 최근에 불안감이나 조바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제야 <딸에 대하여> 속 엄마 마음이 이랬겠구나 하고 뒤늦게 더 깊이 체감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최근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계절의 이치와 비슷한 것 아닐까 싶어서. 지금 나에게 자연스럽게 겨울이 왔나보다, 하고 말이다. 동면하듯 잘 충전해서 또 찾아올 풍요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모처럼 주어진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한동안 SNS에 열심히 춤을 배우는 모습을 공개해 인상적이었는데.
= 아침에 영어학원에 간다. 지금이야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정도지만 하다보면 콩나물 자라듯 언젠가 나도 자라지 않을까? 낮에는 골프를 치러 나간다. 한동안은 주짓수를 열심히 배웠는데 회복력이 따라주질 않더라. (웃음)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사람을 보기 위해 간다. 나는 배우가 자신의 작품에만 의지해 인생의 경험을 추구하면 진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다. 평소에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무대에 스스로를 노출시켜서 나를 확장하려 한다. 골프를 배우러 나오는 중년 여성들, 자기 몸 관리에 투철한 주짓수 학생들,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려고 영어학원을 찾아오는 사람들 등 저마다의 문화와 세계관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언어를 내 세포에 저장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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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미 배우가 연기한 그린은 불의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 올곧은 에너지를 지녔다. 그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임된 동료 교수를 위해 가장 앞장서 목소리를 낸다. 전세보증금 문제로 그린은 엄마(오민애)의 집으로 들어온다. 엄마와 그린 사이에 마찰이 생긴 건, 그린의 동성 애인 레인(하윤경)이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다. <딸에 대하여>를 통해 독립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인 임세미는 인터뷰의 첫 대답부터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삶에 대해 지금 우리 나이대가 지닌 고민과 나이든 미래에 맞닥뜨릴 고민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라며 “소수자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눈빛에선 그린만큼이나 단단한 심지가 비쳤다.



- 부산국제영화제에 배우로 참석한 것은 <딸에 대하여>가 처음이라고.
= 새로운 곳에 놀러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떨렸다.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 선배님들,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저길 갈 수 있는 때가 올까 싶었는데 출연작과 함께 가게 돼 의미가 컸다.



- 장편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 소속사를 옮길 정도로 독립영화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처음 참여한 작품이 <딸에 대하여>다.
= 성현수 눈컴퍼니 대표님이 “세미씨랑 너무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는데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배우로서의 삶보다는 인간 임세미로서 걸어온 행보를 보고 그린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제안을 주셨다더라.



- 본인도 그린과 겹치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나.
= 물론이다. 사실 내겐 레인과 비슷한 지점도 있다. 자기 자리를 굳건히 잘 지킨다는 면에서 그렇고, 일상에선 환경보호와 같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보니 그린과 맞닿은 지점이 많다. 그래서 감독님이 내가 그린 역에 잘 어울린다고 하신 이유와 어떤 모습이 그린에게 담기기를 바라셨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그린을 보면서 ‘사람들도 나를 저렇게 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 단순히 배우의 입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건 아닌가보다. 관객의 눈으로 본 그린은 어떻던가.
= 아무래도 엄마의 시선을 따라 그린을 바라보게 돼서인지 답답할 때가 많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도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럼 타인은 얼마나 이해할까 싶었다. 그런 감상과 별개로 그린의 행동은 지지해주고 싶다. 그의 선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그런 면에선 레인이 그린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항상 굳게 믿고 옆을 지켜주는 존재다.
= 그린은 강한 에너지를 지녔다. ‘나 몰라? 나 믿어!’라는 태도로 직진한다. 그 에너지가 피곤하기보다 응원해주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레인이라는 든든한 파트너와 좋은 동료들이 주변에 있고, 덕분에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촬영할 때는 “엄마가 알려줬잖아”라는 그린의 대사에 꽂혀 있었다. 그린이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던 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엄마가 알려준 덕분인데 그래서인지 그걸 부정당하는 순간이 크게 다가왔다. 결국 그 모든 행동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레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요양원의 할머니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 혹은 자신의 딸이 혼자 남게 되는 게 두려워서였으니까. 그린이 엄마 앞에선 울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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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엄마와의 관계를 대입해보기도 했나.

= 그렇다. 엄마와 신랄하게 싸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촬영하면서 종종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지 대입해보기도 했다. 엄마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는데, 보신다면 “꼭 너 같은 걸 찍었네” 하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 (웃음)



- 이미랑 감독이 무척 섬세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그린에겐 어떤 것을 요구했었나.
= 그린이 엄마와 통화하는 신이 많은데, 전화해선 엄마에게 돈을 빌리는 신을 다시 녹음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감독님은 아마 영화를 몇천번은 보셨을 거다. 그런데 그린의 숨소리, 말소리가 아쉬워서 다시 새 버전으로 녹음하고 싶으셨던 거다. 그래서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20개가량의 재녹음본을 보내드렸다. 그만큼 집요하시다. (웃음) 촬영 현장에서도 꼼꼼하게 디렉팅을 주셨다. 배우로서 그에 부응하고 싶다보니 다양한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 지난 8월19일 <고물상 미란이>가 공개됐다. 오랜만에 단막극을 촬영한 소감은. 그 밖에 또 임세미 배우를 만날 수 있는 차기작이 있을까.
= 단막극을 워낙 좋아해서 즐겁게 촬영했다. 강아지를 고물처럼 버린 사람을 찾으러 다니면서 자기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현장이 정말 귀여웠다. (웃음) 시청자에게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현재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라는 드라마를 촬영 중인데 한국 스포츠 드라마에서 사격과 럭비를 다룬 적이 없던 것으로 안다. 극 중 사격선수라 열심히 사격을 배우고 있다. 너무 재밌다. 운동선수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깨닫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촬영 중인 <그놈은 흑염룡>도 무척 밝은 드라마로 최현욱, 문가영, 곽시양 배우와 재밌게 현장에 임하고 있다.



- 연기 활동 외의 모습도 개인 유튜브 채널 <세미의 절기>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채식, 환경보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 원래 나를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채식을 지향하면서 모든 걸 드러내기 시작했다. 채식이 까다롭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일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유튜브도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서 한국의 절기가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에 시작했다. 유튜브를 하게 된 이후로 팬들, 관객들이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거나 삶에서 환경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고 공유해준다. 회사 사람들도 내가 있을 땐 배달 음식을 안 시켜 드신다. (웃음) 그런 걸 보며 나도 역으로 마음을 다잡고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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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과 어둠의 온유한 공존. 배우 하윤경에게 내적으로 성숙한 배역이 곧잘 주어지는 건, 그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자신다움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일 터다. “캐릭터의 주축은 지키되 그 반대편의 면모를 불쑥 내보일 때 인물이 비로소 재미있어진다”고 말하는 이 배우도 스스로의 장점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딸에 대하여>에서 동성 연인 그린(임세미)과의 사랑을 7년간 지켜온 여성 레인은 퀴어 커플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차별과 압력을, 그와 무관하지 않은 주거난의 불안을 온전히 마주하는 인물이다. 타인에게 밝은 빛을 나누어줄 때는 물론 숨겨지지 않는 그림자를 끌어안고 있을 때도 하윤경의 에너지는 맑게 뻗어나간다. 배우의 시선에 힘입어 <딸에 대하여>는 한결 더 진실한 촉감을 입는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딸에 대하여>를 촬영했다. 커리어의 전환점이라 할 만한 시기에 작품 선택을 할 때 고민한 부분이 있었을까.
= 드라마 출연 후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는데 나로서는 모든 게 똑같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의 결실이 조금 나타나 기쁘다는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꾸준히 독립영화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도 확고했는데, 오히려 드라마로 유명세를 타면서 내게 독립영화 캐스팅 제안이 덜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괜한 노파심이 잠시 들 정도였다.



- 독립영화 프로덕션 경험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 우리끼리 복작복작하는 작업 과정, 세상의 소외된 지대를 보는 작가적 시선이 살아 있다는 점이 좋다. 아무래도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더 짙고 배우로서도 시도의 폭이 좀더 넓어진다. 독립영화 현장에 있을 때마다 ‘아, 내가 이래서 연기를 좋아하게 된 거지’ 하고 새삼 자각하게 된다.



- <딸에 대하여>는 이미랑 감독, 제정주 프로듀서, 그리고 주연배우들까지 여성배우들이 함께 만들어간 영화라 현장의 온기와 정감이 더욱 돈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 말하지 않아도 공감대의 폭이 넓은 분위기였다. 덕분에 결속감, 안정감을 느꼈다. 배우가 느낀 이런 편안함이 작품에서도 어떤 에너지로 흘러나오리라 생각한다.



- 이미랑 감독이 레인 역에 하윤경이 필요한 이유를 배우에게 직접 말해준 적 있나. 인물이 지닌 선함과 의지적인 면모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맥을 나란히 하지만, 레인에게는 현실과 부딪치면서 생긴 그림자 혹은 상처가 더 감각된다.
= 감독님은 차분한데 마냥 어둡지만은 않고, 밝은데 마냥 들뜨지만은 않는 내 모습이 레인 같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제법 비슷한 묘사여서 감독님이 마치 나를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밝은 사람도, 어두운 사람도 아니라는 게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편 늘 조곤조곤 말씀하시면서 차분하고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미랑 감독님이 내게는 레인의 모델이기도 했다.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때 감독님으로부터도 힌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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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은 <딸에 대하여>에서 작품 주제와 맞닿은 태도를 이미 품고 있는 인물 같기도 하다. 자칫 이상적으로 비칠 수 있는 면모를 현실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 레인은 마냥 살갑지 않은데 그렇다고 사회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직설적으로 할 말을 다 하는 것 같지만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표현을 하지는 않는다. 솔직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 말한다는 느낌에서 그의 성숙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린의 엄마를 대할 때도 상황 자체는 불편하지만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함부로 적대하지 않는다. 정작 현실의 나는 불편한 상황에서 주접을 떨고 말실수를 하고 마는데…. (웃음) 달리 말하면 레인이 이렇게 자기 중심을 단단히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유를 했을지, 자기 삶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얼마나 깊은 고민과 배려를 거쳤을지 생각해보게 됐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자신과 타인을 깊이 고찰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그린의 엄마를 대하는 레인의 태도는 배우의 해석에 따라 그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졌을 법하다. 의식적으로 더 살가울 수도, 혹은 더 불편한 기류를 형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톤을 조절해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 원작 소설의 도움을 받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건조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오히려 레인이 누구인지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미랑 감독님은 절대 캐릭터를 정의해서 디렉팅하지 않는다. 큰 코멘트를 주기보다 “이 장면에선 조금만 더 서로를 바라보면서 연기해볼까요?” 하는 식으로 가능성들을 던져준다. 작품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매번 꼼꼼히 체크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시나리오나 원작을 볼 때 나의 초안에 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인상을 배제하고 너무 많은 생각을 더하면 해석이 산으로 갈 때가 많더라. 물론 이 태도가 자칫 독선이나 자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예민하게 가늠하려 한다. 배우에게 자기 확신과 독선은 항상 한끗 차이인 것 같다.



- 레인은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맑고 직선적인 대사로 진심을 투영하는 캐릭터다. 이럴 때는 연기에 어떻게 접근하나.
= 기교로 표현할 수 없는 연기다. 무언가 하지 않고 절제할 때의 연기가 내게는 훨씬 더 어렵다. 표출하고 발산하는 연기가 오히려 편하다. <딸에 대하여>에선 호흡 하나하나를 눌러가면서 연기하는 과정이었다. 메소드연기를 지향하는 배우는 아니고 오히려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번 현장에서는 캐릭터에 맞는 무드는 가져가려고 했다. 오민애 선배님도 아주 밝고 쾌활한 분인데 이번 현장에선 서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느낌으로 담담히 계셨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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