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범죄 스릴러 소설 한 권을 영상으로 읽은 기분이다. 빨리 달리고픈 조급한 마음에 배속 버튼을 누르고 본다면 이 드라마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드라마의 밀도가 높아 반드시 정상 속도로 감상해야 한다. 15세 관람가 등급임에도 결코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잔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이야기니까. 그럼에도 드라마의 호흡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자극 너머의 의미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마음을 휘젓는다.
아내와 사별하고 깊은 숲속에서 혼자 펜션을 운영하는 전영하(김윤석)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남자아이와 함께 하룻밤을 묵었던 여자 손님 유성아(고민시)는 화장실까지 청소해 놓고 홀연히 가버린다. 여자의 행적을 수상쩍게 여긴 영하는 객실을 확인하다가 살인이 의심되는 증거를 발견하고 경찰 신고를 망설이다가 증거를 은폐하는 쪽을 택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달갑지 않은 손님 성아가 영하의 펜션을 다시 찾아온다.
이 드라마엔 굵직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시골 마을에서 모텔을 운영하다가 연쇄살인범 때문에 삶이 무너진 구상준(윤계상) 가족의 이야기다. 여기에 강력반 출신으로 영하의 펜션이 있는 마을에 새로 부임한 파출소장 윤보민(이정은)의 사연이 더해진다. 드라마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친절한 방식은 아니다. 내레이션을 하는 화자도 계속 바뀌고, 내레이션 대화까지 나오는 등 웬만한 집중력으로는 따라가기가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장치들이 독특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주요 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내레이션으로 반복하는 대사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보는 이들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드라마를 보기 전까진 각인되기 쉽지 않은 제목이 아닌가 싶었는데, 보고 나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제목이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사건에 비유해 볼 수 있고, '쿵 소리'라는 사건의 여파에 반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해 볼 수도 있다.
주인공 영하는 엄청난 범죄 사건을 목격하고도 1년 동안 '눈 감고 귀 막은' 대가를 혹독히 치른다. 사랑하는 딸과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고 만다. 연쇄살인범은 구상준의 아들 기호에게 자신을 못 본 척하라는 뜻에서 "눈 감고 귀 막아"라고 말한다. 성인이 된 기호(박찬열)는 또 다른 상황에서 "눈 감고 귀 막아"라는 말을 내뱉는다. 같은 대사가 중의적으로 쓰이면서 묘미가 발생한다. 매 화마다 붙은 제목도 그 화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대사들이니 유념해서 보길 바란다.
이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지만, 무게를 싣는 쪽은 주인공과 연쇄살인범의 숨 막히는 대결이 아니다. 대신에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 즉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촘촘히 엮는 데 집중한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도 '개구리 Frog'다. '나쁜 일에 휘말렸을 뿐'인데 자책과 고통에 휩싸여 지옥을 경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에 주목한다. 나아가 극 중에서 "죽은 사람들만, 유가족만 피해자인 줄 알죠"라는 기자의 대사는 수많은 범죄 사건의 간접 피해자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자극적인 범죄를 선정적으로 다루기보다 피해자 이야기에 가까워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 드라마의 살인범들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의 범인들을 연상시키는데, 이들 캐릭터의 서사를 최소화해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들인 촬영, 편집, 음악, 미술은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음악의 활약이 크다. '태양의 후예' '부부의 세계' '소년시대' 등 드라마 화제작에서 음악을 책임진 개미 음악감독이 서스펜스 음악의 정수를 들려준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김윤석은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분투하는 펜션 주인 역을 맡아 극한으로 치닫는 감정을 다채롭게 연기했다. 극 중에서 김윤석과 팽팽한 영역 싸움을 벌이는 고민시의 절대악 연기는 보는 사람마저 진저리가 날 정도로 광기를 내뿜는다. 피해자 가족으로 나오는 윤계상과 박찬열은 슬픈 연기를 넘어서 놀라운 연기를 눈앞에서 펼친다. 정의로운 마음이 아니라 본능으로 범인을 잡는 형사로 등장한 이정은의 캐릭터 해석도 흥미롭다. 박지환, 류현경, 장승조, 하윤경, 노윤서 등 조연들의 연기도 최선의 결과를 낸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호흡과 전개는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뉜다. 플롯이 복잡하고 몰아치기의 재미를 안겨주지 않는다고 해서 '노잼' 드라마로 일축한다면 디테일을 놓치는 것이다. 친절과 호의를 베푼 보통 사람들이 어떤 파국을 맞는지, 머릿속의 화가 주먹까지 가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벌이는지, 잘못된 판단을 한 사람의 사과는 어떠한지, 이 드라마의 술래가 되어 눈과 귀를 열고 끝을 보길 바란다. 아마 할 얘기가 아주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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