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있는 그런 일들
서지환에겐 꽤나 긴 하루 였다. 따라붙는 흥신소, 점점 은하에게까지 다가오는 고양희, 은하를 노리듯한 댓글. 서지환이 두려움에 차 마중나간 로비에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생각치도 못한 일이 아닌 가끔 있는 뒷산 산책같은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차피 너네 범죄자 아니냐며 피해자가 버젓이 있는 범죄자들이 일상을 살아도 되냐는 외침. 받아들여야하는 가끔 있는 불편한 일들. 범죄자들로 구성된 기업을 운영하는 범죄자 출신의 대표로서 살아온 8년. 자신을 윽박지르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우선 챙기고, 일상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직원들을 지키는 서지환이지만, 이 삶.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거다.
은하는 마음이 지쳤을 지환을 이끌고 늦은 밤,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나무가 우거진 아무도 없는 뒷산 공터로 향한다. 은하는 애써 삭이는 지환이의 마음을 알아보았기에, 허나 마음을 꾹꾹 숨기는데 익숙한 자신의 연인을 위해서 직접 목소리가 되어준다. 회사의 미래 뿐 아니라 직원들의 죄까지 어깨에 지고 사는, 기업 대표 36세 서지환. 이 사람이 어찌보면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가장 외치고 싶었던 그 말을 대신 해준다.
"야! 나도 입도 없는 줄 아냐, 나도 말할 줄 안다!
나도 사는거 만만치 않다. 나도 힘들다 이자식들아!!!"
자기가 관계된 모든 이의 짐을 지고 가는 어린 양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서지환. 하지만 그도 삶은 버겁고 만만찮으며 힘들다. 은하는 이 마음을 자신의 입술로 내뱉어 그의 마음을 풀어준다. 사랑스러운 사람. 언제나 나의 맘을 나보다 먼저 알아주는 나의 연인. 삐쭉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매주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람.
상쾌한 나무 냄새, 풀벌레 소리
내 삶의 무게를 알아주는 존재
손에 만져지는 머리카락
추억이란 자물쇠에 몇 가지 감각들이 맞추어지자
윤현우가 돌아왔다...
이별이 싫어 외로움을 선택한 소년
빈틈없이 꽉 차있는 등본
매우 괴랄맞은 이사 경로
https://theqoo.net/dyb/3348853942
13살의 어린 현우는 11번의 이사를 경험한다. 13년이란 이 짧은 인생동안 아버지에게 쫒기며 산 인생. 이 사람이 엄마와 나를 찾지 않는다면 한 학기가 지나면 다른 학교로 가지않아도 된다. 친구를 사귀면 곧장 헤어질 필요가 없고 학교를 매해, 또는 위기의 시기 때마다 전학가는 일도 없다. 11번의 정 붙임과 정땜이 반복되자 어린 현우는 마음을 닫아버렸다. 헤어짐이 아파 더 이상 누구에게도 정주지 않기로 다짐하곤 홀로 외로움을 삭히며 그렇게 윤현우는 어른 아이가 되어간다. 하지만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한 아이에게 마음을 주었다.
어렸을 때 제가 이사를 자주 다녔거든요
정을 주었다가도 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쉽게 이렇게 마음을 주고 그러지 않았어요, 근데
그 한 사람 한태는 제가 그렇게 안되더라고요
어째서요?
그게 아마 저랑 비슷해 보여 가지고 그랬었던 것 같아요,
혹시 어떤 면이요?
되게 외로워보였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어, 그 사람 옆에 같이 그냥 있어 주고 싶었습니다.
연민. 외로움이란 동질감으로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가 된 두 아이. 수 많은 놀이감들을 담아 타임캡슐을 묻었던 것을 보면, 아마 현우는 곧 헤어짐을 알고 있었을거다. 중학교에 입학한다던가, 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던가, 어떤 이유로든 필연적으로 헤어짐을 알고 있을 어린 현우. 우리는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현우는 헤어질 날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기에 현우가 해바라기를 든 어린 은하에게 언젠가 우린 헤어질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13살의 자신은 숱하게 경험해온 이별. 하지만 아직 어린 7살의 은하는 미숙할 헤어짐. 허나 우리의 은하는 어릴 때도 헤어짐에 낙담하지 않는다. 우리의 멋진 고은하는 어릴 때도 참 맑은 햇살이었다.
나는 현우 오빠가 어딜 가든 찾을 수 있어.
내가 꼭 찾아낼거야
(그러나 이런 은하의 말이 나온 앞뒤 상황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오빠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내뱉은, 과연 이 뜻을 알까싶을정도로 깊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말 한 마디. 오빠가 그렇게 숨어산다고해도 난 찾을 수 있다고. 내가 찾아낼거라고.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끝이 아닐거라며 7살의 어린 은하는 일평생 숨어지낸 13살 윤현우가 살아온 이 고된 인생을 위로한다.
우리의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일테니까. 이대로 헤어지더라도 우리의 인연은 끊기지 않을거라고. 우리가 헤어짐은 미래에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거라고. 내가 꼭 찾겠다는 이 말은 이별이 무서워 외로움을 선택한 13살 현우에겐 일생일대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충격적인 장면
자신을 찾겠다는 은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현우였다
실패하면 안되는 숨바꼭질을 하던 소년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잡히고 싶은 순간
항상 누군가에게 쫒기는 인생을 살았던 소년은, 난생 처음 인생의 숨바꼭질에서 누군가에게 잡히고 싶은 순간을 마주했다. 누군가가 찾아내는, 찾는 행위에 이 골이난 소년이지만 이 소녀의 찾음엔 왠지 웃음이 났다. 당연하다. 현우는 일평생 도망쳐왔으며 이에 따라 항상 끊어지는 관계만을 경험해 온 아이다. 그렇게 일평생 숨으며 이별로 가득한 인생을 살던 정 많고 사랑 많은 현우에게 나를 찾아가면서까지 먼 미래에 만나자는 소녀의 말은 그렇게 뇌리에 박히고 말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타임캡슐에 자신들의 추억을 담고 나이 많은 배롱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한다. 각자의 소중한 기억을 담아 언젠가 성인이 되어,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자라 어른들의 시선을 피해 우리의 손과 발이 자유로지는 어른이 되면, 이곳에 만나 같이 열어보자고. 그렇게 은하와 현우는 각자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담아 언제가의 미래에 반드시 만나 같이 파볼 타임캡슐을 묻는다.
그렇게 현우는 23년전부터 자신을 찾아올 어린 소녀를 기다렸다.
상쾌한 나무 냄새, 풀벌레 소리
홀로 속 앓이하는 나의 사람
흐트러진 머리를 부여잡는 손
조심스레 당겨지는 머리카락
언제나 나를 아껴주는 말
따스한 눈빛
추억이란 자물쇠에 몇 가지 감각들이 맞추어지자
같은 추억 같은 감각을 공유한
은하에게도 떠오른 기억 한 조각
어렴풋한 7살의 기억 속 윤현우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