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 인물들이 현실감 있는듯아닌듯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점이 있어.
사람들이 왜곡이 없어.
의뭉스럽게 뱃속에 온갖 공작을 품으면서 배배 꼬아서 말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하거나 렌즈를 끼우고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들어.
지환은 은하에게 사과하면서 '고양희는 나랑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이라 걱정되서 그랬다'고 말해.
고양희란 사람을 타인에게 설명할 때 가치판단을 넣지 않아.
지환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간 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이기에 누구탓도 아니고
다만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해.
과거 자신의 행동과 상황을 이해시키려 덧붙이는게 없어.
지환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과거를 최대한 말해주지만 포장도 없고 숨김도 없어.
자신의 과오를 말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행동에 옮기지. 언행불일치 그런건 없어.
은하는 지환이 말하지 않은 무엇이 있는 것을 짐작하는 눈치지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하거나 평가하지 않아.
주변인들과 대화하면서 자기가 들은 대답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행간? 숨은 뜻? 그런건 염두에도 없어.
어쩌면 그런 캐릭터라서 지환이 현우오빠인 것을 조금 천천히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미호가 이웃집 사람이 혼자 애기를 낳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은하는 설마 네 얘기 아니지...라고 말하고 말지 곱씹으며 친구를 의심하지 않아.
일영이 서태평에 대해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 모습이 따로 있는 사람'이라고만 말하는데
난 그 대사가 서태평을 최대치로 순화한 것이어서 놀랐거든.
그런 점에서 예나도 참신한 조연이었어.
싫어하면서 앞에선 착한척 하는 흔한 악녀 캐릭터가 아니라서 좋더라고.
자신이 왜 은하를 싫어하는지 또렷하게 표현하고
자기혼자 날뛰고 음모와 공작을 펴는 짝사랑녀 포지션 아니고
일과 사랑 모두에서 명확하게 표현하고 타인의 반응도 또 깨끗하게 받아들이지.
고양희는 고양희대로 너무 투명해서 과연 조폭인가 싶고
서태평도 누구를 대하든지 말이나 행동이 서로 어긋남이 없어.
고양희를 아끼는 척 하지 않고 상대를 도구로 여기는 것을 숨기지 않아.
인물들이 하나같이 마음을 마음 그대로 말하고
말한 그대로 행동하잖아.
너의 마음은 알바 아니고 내 마음이 최우선이고 내 마음만 옳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평범하지 않은 과거사까지 있는데도?
너무 현실감이 없잖아라고 한다면
모든 등장인물이 음모와 공작을 꿈꾸는 여느 드라마는 현실감이 있나 하고 되묻고 싶어.
누가 매일 매순간 음모와 공작을 꾸미겠어.
이처럼 판타지같기도 한 투명한 인물들은 너무 동화같아서
자칫 밋밋할 수도 있고 유치할 수도 있는데
드라마는 각종 장르를 솜씨좋게 다 비벼넣고
인물들의 서사를 매끄럽게 이어붙이는 덕에
그럴싸하다고, 현실 인물인것 같다고 수긍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볼 수 있었어.
극작에 대해선 완전한 문외한이지만
보여주지 않은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내가 상상하면서 채워넣고
스트레스 찌든 일상에서 잠깐씩 빠져 나올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라면
그것으로도 잘 만든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덬들은 어땠어?
지환은하의 힘든 어린시절, 성인 이후의 사랑 이야기,
죄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 이야기
그것 말고도 무엇이 있었는지 덬들 이야기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