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멎어버릴 듯해
시간이 얼어버린 듯해
내 눈 앞에 천국이 펼쳐져 있는 듯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마도
죽었나보다
천사가 보인다
미련 따위 없었는데
죽는 것 따위 내게 두려울 것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긴 순간부터.....
눈이 떠지면 눈을 뜨고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밥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잤다
의지라는 것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분명 나는 동물인데
동물의 본능은 모두 잃어버린 채
식물의 습성만으로
바람이 흔드는 대로 비가 덮치는 대로 눈에 눌리는 대로 살았다
겉은 화려하지만
내 집안은 나와 같았다
하얗다 못해 서슬퍼런 살기까지 느껴지는 푸른 빛이 나의 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색이 싫었다
흰색도 푸른색도 모두.....
빛을 흡수하는 검은빛으로 날 감추었다
유일하게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노란색은 영원히 품지 못한
검은색마저도 절름발이였다
단 한번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운명이 또다시 나를 흔들었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없애버렸다고 생각한
세상이
다채로워졌다
색이, 빛이 어울려 오묘한 빛을 내비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 손을
잡은
가장 아름다운
햇빛이
쏟아졌다
"좀 진정 되면 다시 할까요?"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시간을 좀 주세요"
솔이 날 안아준다
안아주면서 조용히 속삭인다
"남들이 보면 너 도살장 끌려가는 소인줄 알어 이제 그만 울지? "
"정말 행복해서.... 살아서 천사를 만나게 될 줄 몰랐어"
"퉤!"
백인혁 이자식 여기까지 와서 시비야
"턱시도 하루 이틀 입어? 수억원짜리 정장을 입어도 별 감응 없었던 자식이 왜 저래? 드레스 처음 봐? 지겹도록 시상식, 드라마에서 봐 놓고 "
"이 자식아 그거랑 이거랑 같냐!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를 놀리는 인혁이 자식....그래 실컷 놀려라 오늘은 내가 참는다
천사가 내 앞에 있다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 불가능한 .
눈물이 폭포수처럼 내리고 분수처럼 솟아올라 주체할 수 없다
결혼은 당연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사는 것도 싫었는데 결혼은 무슨....
그런 내가 ....역시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솔아. 선재 잘 부탁한다 부족한 자식이지만 딱 하나, 널 향한 마음 그거 하나는 완벽하다 내가 보증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인혁의 목소리가 떨린다
"우냐?"
"너만큼 울보겠냐 흥"
말은 그렇게 하면서 뜨거운 포옹 그리고 눈물.
같이 울었다
우리 인생 가장 아름다웠고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이겨낸 형제와의 마지막 포옹
후....떨린다.....
"아들~~ 행복하게 살아 지금까지 힘들었던 거 다 잊고 "
"아부지 고마워요"
"신랑 입장도 하기 전에 쓰러지겠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입장 안 한다. "
솔이 아버지께 부탁했다
신랑 입장 때 아들 손 잡고 같이 들어와달라고.
오랜시간 사랑으로 키운 자녀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은 모두 같을텐데 왜 신부만 부모와 같이 들어가냐고
아버지는 그동안 신랑 입장 방식이 서운하셨었는지 반가운 기색으로 단번에 수락하셨다
너무 떨려서 아버지를 잡은 손까지 마구 흔들린다
아버지의 손을 세게 잡았다
문이 열린다
새로운 길이 내 앞에 펼쳐진다
이 첫걸음은
새로운 류선재 삶의 시작이다
신부 입장
천사가 들어온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사의 날개를 내가 꺾었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야 할 운명을 땅바닥으로 내던져버린 나를 원망했다
그러나
아니란다
날개를 꺾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날개였다고
내가 튼튼하고 아름다운 날개가 될 때까지
성장통을 겪은 것 뿐이라고
이제 솔의 양 어깨에 달려 날아가게 하는 것만 남았다며
웃어주던
내 천사가
날아 온다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인혁이 자식이 까먹었다
폭죽 터트리지 말라고 했는데 신나게 마구 터트렸다
본능적으로 솔이의 배를 감쌌고.........
기사가 났다
혼인신고는 내가 졸라서 같이 살기 시작하자마자 했고
일이 바빠서 식을 늦게 올린 것 뿐이지
오래전부터 우린 부부였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것이 있나 싶긴하지만
보여지는 것이 조금 껄쩍지근하다
"눈치 없는 백인혁 때문에 소문났어 이씨 "
"이미 다 알아 네가 하도 난리 피워서"
솔의 타박에 입도 떼지 못했다
왜냐구?
결혼식 2부 행사때 음식 냄새를 맡고
다시 입덧이 도져버렸다 ㅠㅠ
신혼여행도 못가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상황이 입이 백개라도 할 말 없다
"네가 고생하...는 건.... 못.... 보겠어서... 내가.... 해....서 다행이다.... 이러다 딱 죽겠다싶....어... 장모님께 효도하자"
"고맙네 내 대신 고생해서. 미르들이 고맙대"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하루종일 물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을 솔이 느끼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정말 딱 죽기 직전까지 몰아가는 것 같다
입덧할 때 못 해준건 평생 간다는데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겠다
솔은 무심코 한 말이겠지만 참 서럽다
고마워 고맙다도 아니고 고맙네? 고맙대? 남 얘기하듯 .
내가 누구때문에 이고생인데...는 아니지 내탓이지.....만 뭔가 서러워지기까지 한다
특실에 두 개의 침대가 나란히 붙어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놓여있다
등돌리고 누워서 눈 감고 자는 척 했다
솔이 먼저 사과하기 전엔 절대 말 안할거야
나도 골질하면 한 골질 한다고
힐끔
힐끔
답답해
세상에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솔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에 모든 빛이 사그라졌다
솔의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항복"
꼬리 내리고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솔이 자신의 팔을 탁탁 친다
팔베개를 받쳐주면서 안아주는 솔이 품으로 파고 들었다
"너 미워"
"미워? 정말? 류선재가 나를 미워할 수 있어?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못 할 걸 알고 해볼테면 해봐라 당당한 솔의 목소리
나를 혼내는 목소리 놀리는 목소리지만...좋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거라 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했다
더 사랑하는 내가 이긴거다
그래도
입덧은
못이기겠다
축구단 야구단 만드는 게 꿈이였는데
솔아 셋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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