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 남자 코미디’를 둘러싼 걱정과 불안을 안고 이륙한 프로젝트 <파일럿>은 한국의 사회적 난기류 따위는 무섭지 않다는 듯 환상적인 줄타기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 여장 남자 파일럿이 모는 비행기 객석에 편안하게 탑승하기 위해서는 여성 상위 상태로 구현된 업계 판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수칙이 있다. ‘여자가 되어 이득을 취한다’는 상상조차 불가한 한국에서 영화는 항공판 이갈리아의 딸들이라 불릴 법한 설정을 트로이의 목마처럼 심어둔다. “여자라는 이유로 저가항공사를 물려받은” 여성 유력자와 모든 면에서 훌륭한 먼치킨 여성 파일럿. 그리고 한정미. 남자 없는 세상에서 세 여자는 자신의 권력, 실력, 기지를 얼마든지 발휘하며 여성-능력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한다. 희롱과 추태를 일삼는 남성들은 신속하게 몰락하거나 행위에 제지를 당하며 서사의 한구석으로 물러나 있다. 이러한 성차별에 근거한 단죄가 가능하다는 것 역시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이다.
이렇듯 과감하게 세팅된 영화적 영공을 비행하는 <파일럿>은 관객의 웃음보를 정확하게 타격하며 맑고, 상쾌하고, 윤리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상상 속의 여성성을 인위적으로 추구한 시스젠더의 기만도,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현실에 침투하여 이득만 보고 떠나는 남성도 영화에는 없다. 생활밀착형 성차별은 지정성별 여성이 아니기에 가능한 남성적인 뻔뻔함,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낯 두꺼운 안하무인적 기개로 돌파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여성은 현실에는 어떤 희망도 없기에 영적 세계로 탈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였던 것과는 달리 <파일럿>은 더욱 교묘해진 성차별에는 되레 알량하게 반격하라는 전략을 도입해 여자가 된 남자를 기어코 생존시킨다. ‘외모평가’라는 가장 명료한 도덕마저 첨예한 문제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파일럿>은 강단 있게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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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동의! 영화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