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때를 지나는 인간은 모른다.
수 십년 때론 수백년의 기간을 산 고목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
벚나무는 알고 있다.
소년 소녀로 돌아간 맑은 영혼들을
공원의 가로수들은 알고있다
가까스로 용기 낸 남자의 후회를 남자의 눈망울을 거절 할 수 없던 여자의 선택도
우거진 산세, 오솔길에 자리잡던 고목들은 알고있다.
고라니처럼 뛰어다니며 산세를 뒤 흔들던 한 남자의 걱정어림 소리침을, 그 소리침에 비해 보잘것 없은 사랑고백은 한동안 숲의 이야기거리였음에
오솔길 옆 숲속 고목들은 알고있다.
그 볼품 없는 사랑마저 사랑하겠다는 한 여인의 고백을
보육원의 우거진 버드나무는 알고있다.
매년 자신을 찾아온 수상쩍은 사람들의 친절한 발걸음을. 멀고 먼 인연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위로하고 함께 힘이 되겠다는 여자도.이 연인들의 증인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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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오래 된 배롱나무는 한 소년과 소녀를 만났다.
어린 시절 두 소년 소녀가 자신의 그늘에서 노는 걸 보며 아이들의 유일한 증인이 되었다. 나무에게 꽤 많은 나이테가 생긴 후 무언가 변해버린 남자가 이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 남자가 데리고 온 소녀를 다시 만났다. 23년이란 시간을 지났으나 언제나 두 아이의 마음 속에 있던 배롱나무는 스스로 이 아이들의 표지석이 되었다.
덕분에 엉망진창 첫 입맞춤도 보았고,
서로의 마음을 애써 밀어내는 바보같은 대화도 보았으며
나를 바라보며 같은 추억을 되내이는 두 아이의 시선도 보았다.
고요히 그 자리에 서있던 나무는 서로에게 진심을 다한 입맞춤의 증인을 자처했다. 그렇게 배롱나무는 나이테에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갔다.
뿌리 깊은 고목들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돌본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자 나무들은 자신의 뿌리를 내어 추억의 공간을 내주고 가지를 뻗어 친히 그늘을 내어준다. 세상이 갈라논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다시 세상을 보듬어갈 어른이 되어감을 축복한다. 자신들의 뿌리처럼 넓고 깊게 단단하게 서로를 보듬을 것임을 고목들은 자신들의 나이테에 아이들의 추억을 담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