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 두는 게 나은 추억도 있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누군가에겐 과거를 대면하는 게 힘들고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사정이 다 다른 거니까요. 대답이 됐습니까"
10년 전 서지환은 아버지를 구속시키고 2년 후 거대한 궁전같은 아버지의 자택을 나와 굳이 어린 시절 은하와 놀던 그 곳으로 돌아왔다.
그 돈 많은 서지환이 거대한 저택을 피해 온 곳이 은하와의 추억이 있던 집이다. 정말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라면 되돌아오지 않았을 옛 집. 옛 공간. 어디든 갈 돈이 있던 재력의 서지환이라면 은하와 함께한 과거가 대면하기 힘들었다면 굳이 이 공간으로 이사오지 않았을 터.
서지환에게 지금의 집은 기억해야될 공간이며 지켜야 할 공간이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곳이다. 이 집에 오자마자 구매도 전에 타임캡슐을 확인하고 어린 시절 살던 공간을 그대로 닫아둘 만큼.
즉 우리는 어린 은하와의 추억이 서지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 있다. 더불어 만먁 은하와의 추억이 끔찍하고 불편했다면 서지환은 미니씨가 그 어린 은하임을 알아차린 이후 그렇게까지 더 깊은 애정과 관심과 도움까지는 주지 않았을거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심적 여유도 없었을테고.
그렇다면 타입캡슐 속 과거를 대면하기 어려운 힘들고 불편한 사람은 누구일까. 과거를 묻어 두는게 나을 만큼 고통 받는 사람. 서지환이 그 가능성을 예측하며 과거를 묻어두라 조언한 그 당사자.
고은하
은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쫒아오는 조폭인줄 알고 습관처럼 현우에게 찾아갔다. 알고보니 현우를 잡아가려는 조폭이었고, 이를 나중에 안 은하는 23년동안 현우오빠를 찾는다. 생존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우라는 이름 하나로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는다.
서지환은 애써 현우를 피한다. 자기에게 더 이상 현우가 없어서도 피하지만, 검사를 꿈꾸던 어린 시절에 비해 심각하게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실망할 은하를 걱정한다. 충격 받을 은하를 걱정한다. 자신에겐 이미 감당가능한 과거이자 오히려 심신에 안정을 주는 과거지만 이제서야 진실을 마주하는 고은하에겐 그럴리가 없단걸 이미 알고 있다.
서지환이 그랬듯, 은하의 사연을 들은 장현우마저 직감한다. 그 모든 죄책감을 끌어안고 23년을 살아온 은하에게 구체적 진실을 잠시 묵음 처리한채 최선의 답변을 더한다. 잘 살고 있다고. 그리고 당사자 현우오빠의 말을 빌어 그렇게 죄책감 들 필요는 없을거라까지. 은하에게 누구인지 알 권리와 권한을 내어주기까지 한다.
두 현우들은 온전한 진실이 고은하를 해치지 않을까를 걱정하며 각자의 방법으로 진실을 잠시 상자 안에 가둔다. 곧 열릴 수 밖에 없는 온갖 고통이 가득했던 그리스 여인의 상자처럼 불안하지만 지금은 그게 최선임을 두 현우들은 알고있다.
어린 내가 자신이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는 비극. 항상 적극적이었고 나를 보듬어주던 한 존재가, 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를 옥죄고 수많은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끼며 마음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그로 인해 힘들어했다면
고은하는 23년동안 불안해하면서도 찾아다니던 이 비극을 어찌 감당할 까. 부디 각자의 사정이 다를 수 있다는 윤현우의 말을 되새겨주길 바랄 뿐
서지환을 무너뜨릴 약점이 되어버린 은하이기에 분명히 건들려질수 없는 상황. 이런 은하를 지탱해줄 그 사람이 더 굳건해지길 바란다. 반드시 겪으며 나아가야하는 이 비극이 부디 이 두 사람의 앞 길에 내리는 큰 비가 되어 더 굳건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