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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탈주 씨네21 이거 한번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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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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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단순히 무자비한 추격자로 요약되지 않는 캐릭터다. 현상과 규남의 대비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기제지만 자신과 대비되는 규남을 쫓는 현상조차 두 속성으로 분열된 캐릭터다. 현상의 추격에 물음표를 몇개 달고 싶은 이유는 그가 규남을 쫓다가도 구하고, 구하다가도 쫓는 모순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상은 규남을 처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규남을 빼돌린다. 이후 현상은 총정치국장의 연회에 규남을 데려간 후 그를 반동분자를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규남에게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알선한다. 현상의 시혜에 굴하지 않고 규남이 탈출을 일삼자 현상은 그때서야 자신이 지닌 권력을 규남과 동혁을 해하기 위해 사용한다. 현상은 추격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규남과 있을 때와 달리 현상은 동혁이나 후임을 대하는 모습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의 냉혹함을 드러낸다.


정작 <탈주>는 규남의 탈주와 현상의 추격에 명확한 사유를 부여하지 않는다. 관객이 두 캐릭터의 도주 경로를 함께 추적하도록 만드는 힘은 사건간의 연관관계인 속칭 개연성일 텐데, 영화는 두 인물이 왜 쫓고 쫓기는지를 설명하길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규남의 탈주는 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추격은 규남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규남의 탈주엔 사연이 없다. 이는 먼저 탈북한 어머니와 동생이 잘 사는지 궁금해하는 동혁과 상반된다. 규남을 구성하는 키워드는 그의 계급이다. 규남은 후임 병사들로부터 대놓고 “규남이 형은 출신성분이 3등급이라 제대하면 농장 아니면 탄광으로 가야 해 미래가 캄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단장 직속 보좌로 군 복무를 이어갈 위기에 처한 규남은 왜 자신의 앞길을 마음대로 정하냐고 현상에게 묻는다. 이어 현상은 규남을 조소한다. “그럼 네 앞길을 네가 정하니?” 탐험가가 되길 꿈꿨던 규남은 유년기부터 위인전 <집념의 아문센>을 끼고 살며 제 앞길을 개척하려 하지만 북한 사회에서 그가 자신의 능력만으로 지위 상승을 이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반면 규남이 믿는 남한은 능력만 있다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남한에서도 규남의 희망이 금방 좌절될 걸 아는 남녘 관객의 공연한 염려는 나중이다.) 규남에게 현상은 단순히 자신을 쫓는 숙적이라기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끝내 넘어서고 도망쳐야 할 장벽이다. 복귀하면 처벌만은 최소화해주겠다는 현상의 마지막 자비에 규남은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한다. “내 앞길 내가 정했습니다.”

현상이 규남을 맹렬히 뒤쫓는 건 그가 직업 윤리에 충실한 군인이기 때문일까? 탈주범 한명 사살하거나 규남 한 사람쯤 눈감아주는 건 현상에게 일도 아니다. 그런데 현상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 또한 많은 남자다. 현상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삶을 지키기 위해 포기를 거듭해왔다. 현상은 러시아 체류 시절 국제 콩쿠르를 모두 휘어잡던 피아니스트였고 확신컨대 민(송강)과 무척 내밀한 관계였을 것이다. 지금 현상은 규율과 통제 속에 살아가는 군 간부다. 자신의 장인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회에서 현상은 피아노 그리고 민과 재회한다. 와중에 잃을 것이 없어 마구 달음질하는 규남은 “그래도 실패는 해볼 수 있지 않”냐며 목숨을 걸고 집념을 불사른다. 이종필 감독은 “규남의 활개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혹은 ‘내가 놓친 것은 없나’ 번뇌해온 현상에게 역린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념을 꺾지 않는 규남을 본 후 현상 역시 더이상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을 ‘생포’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요컨대 규남과 현상은 서로에게 칡과 등나무처럼 서로 얽혀 있는 존재다. 현상의 계급적 우월함이 규남의 탈주에 불씨를 지피고, 규남의 거칠 것 없는 계급의식의 전복이 현상의 추격에 박차를 가한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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