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덬 올려치다 후려치다 이런 건 왕에게 할 말은 아닌 듯 싶고 개혁군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영조가 쌓아둔 공적을 보고 정조가 좀 더 다듬고 자기 스스로 여러모로 다듬은 뒤에 탕평론과 함께 펼친 느낌? 정약용 정약전 같은 명신도 등용했고, 서얼의 일부도 문과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건 여러모로 잘한 게 많지 하지만 결국 유교-성리학이라는 덫을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계가 존재하는 왕이라고 생각해
정조 본인도 철저한 유교맨이었던 데다가 정조 치세에도 이미 천주교는 벌을 내리지만 않았지 금지였던 걸 보면 더더욱 그렇거든 정조의 예시로 김은애전이 있는데 실화인 김은애라는 양반 여자에게 많은 은덕을 입었는데도 좀 더 베풀지 않는다는 일로 괴롭혀서 시집 못 가게 하려고 퇴기(나이 들어서 기생 관둔 천민)인 안 노파가 친척인 최정련(남자)이랑 같이 문란한 여자라고 김은애의 정절을 비난했어 그럼에도 결국 좋은 남자와 김은애가 결혼을 했지만 결혼 후에도 무려 2년을 더 문란한 여자라고 소문을 내서 결국 김은애가 안 노파를 찔러 죽였지만 본인의 정절을 무죄방면 됨. 그리고 이걸 본보기 삼는다는 명분으로 소설로 내라고 한 게 김은애전인데, 역피셜에서 최정련은 처벌을 안 받았어. 2년 넘게 김은애를 괴롭힌 거면 안 노파 못지 않은 악질 공범인데 처벌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 정조도 그 시대 유교적인 남자였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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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존나 상세하게 다 해석하고 풀이하고 있네 역피셜 그대로 해석하면 사실 저게 맞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