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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졸업 고단한 ‘대치동 노동자’의 낭만(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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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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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톱니바퀴가 좀 어긋난 사람 아닌가?” 대학생 시절, 친구들은 엠티 가고 공부하고 연애하느라 바쁠 때 가정 사정 때문에 휴학한 서혜진(정려원)은 아침에는 전단지 돌리고 낮에는 청소하고 밤에는 학원 수업하느라 바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쫓아오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동생 학비 대느라 숨 쉴 틈 없이 “주어진 숙제를 성실하게 해치우며” 살다보니 대치동 학원가에서 알아주는 ‘스타 강사’가 됐다. “대학입시라는 아이와 학부모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계급의 분기점에서” 빛나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톱니바퀴가 좀 어긋난 삶에 끼어든 변수


남들 보기에 성공한 인생인 것 같지만, 고단한 노동자에 더 가까웠다. ‘입시 학원 강사’를 향한 동경과 멸시 사이에서 냉정하게 주제 파악을 하고,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신뢰가 배신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도 프로답게 처신하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깔끔한 인간관계와 일상을 유지하며 얻은 영광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또래들이 비슷한 시기에 해결한 ‘당면 과제’인 연애, 결혼, 출산과는 거리가 먼 “톱니바퀴가 좀 어긋난” 30대 중반이 되었다. <졸업>(tvN)은 이렇게 케이(K)-장녀이자 경쟁과 욕망을 동력으로 돌아가는 세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노동자이자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혜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혜진은 안판석 감독의 전작 속 여성들과 닮았다.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빛나 보이지만 계급화된 가부장 세계에서 신분이 불안정한 ‘우아한 노비’에 가깝다는 면에서 <아내의 자격>(JTBC)의 윤서래(김희애)나 <밀회>(JTBC)의 오혜원(김희애)과 닮았다. ‘30대 여성 직장인’의 고단함을 품고 사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JTBC)의 윤진아(손예진)나 <봄밤>(MBC)의 이정인(한지민)의 얼굴도 보인다. 그리고 그 여성들처럼 혜진도 ‘사랑’을 통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균열을 경험한다.

변수라곤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혜진의 일상을 흔든 건 이준호(위하준)다. 혜진의 자랑이자 “어머니가 낳고 서혜진이 기른 기적의 꼴통” 준호. ‘8등급’이던 준호는 3년에 걸친 혜진의 집중적인 관리 덕분에 고려대 정경대학에 진학하고, 무사히 졸업한 후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런 준호가 혜진이 다니는 학원 ‘대치 체이스’ 강사 임용 시험에 응시한 것이다. “시대를 잘 타고나서 대치동 원주민으로 살 수 있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회사원으로는 밀려나는 삶밖에 없”음을 간파한 준호는 안정 대신 도전을 선택한다. “매달 수천만원이 꽂히는 통장과 신축 아파트 계약서”라는, 아버지는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져다주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며 학원 강사가 된다.


드라마는 ‘스승과 제자’에서 ‘동료 교사’가 된 혜진과 준호를 중심으로 “학원 강사들의 삶과 사랑을 조명”하는 “미드나이트 로맨스”를 표방한다. 그러나 안판석 감독의 특기(?)인 사회적 통념과 가부장적 세계관의 모순, 계급사회의 욕망과 위선 등이 복잡하게 얽힌 미묘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놓치지 않고 담았다.



왜 하필 수학도, 영어도 아닌 국어일까


<졸업>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은 혜진과 준호의 달달하고도 조마조마한 ‘로맨스’ 장면이 아니다. 입시학원 ‘국어’ 강사인 혜진의 일상을 다큐처럼 보여줄 때다. 주력하던 찬영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교사 표상섭(김송일)의 출제 문항에 복수정답 논란이 생기자 학교로 찾아간 혜진은 상섭에게 “애들 시켜 점수 앵벌이나 하고 등급을 교란하는 짓”을 하는 “기생충”이라는 막말을 듣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각한 바를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한 뒤 교무실을 나왔지만, 혜진은 몸이 떨릴 정도로 내상을 입는다. 그러나 수업에 들어가야 하기에 차분하게 정신을 가다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강의실로 들어간다. 그날 혜진은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야 학원에 홀로 남아 맥주 한 캔을 딴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자신을 “영전으로 포장된 좌천”을 시키려 한 원장 김현탁(김종태)과 식당에서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원장에게 해야 할 말을 하고 나온 혜진은 곧 있을 수업을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쓰린 속을 달랜다. 집안 형편 때문에 너무 일찍부터 어른으로 살아야 했던 혜진은 그렇게 홀로 견뎌오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준호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을 처음으로 절친에게 고백할 때도 드라마는 별다른 기교 없이 혜진과 소영이 대화하는 장면을 마치 혜진의 인생을 존중하며 위로하듯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드라마의 이런 방식은 혜진의 수업 방식과 닮았다. ‘백발 마녀’로 불리는 ‘최선 국어’ 원장 최형선(서정연)의 계략에 휘말려 단 한 명의 학생을 앞에 두고 수업하게 됐을 때, 혜진은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선생의 생애를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선생의 어떤 작품이 덤벼와도 무섭지가 않게 되겠지. 설사 처음 보는 작품이어도.” 중간고사 국어 문제의 다른 해석 가능성에 관해 상섭이 “이건 개념어 문제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막을 때도 이렇게 응답한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화자의 내면 정서를 추론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혜진은 ‘정답’ 그 자체보다 ‘롱테이크’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혜진에게서 배운 준호도 비슷한 말을 한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면 결국은 읽을 수 있게 되고 단어 하나하나, 행간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게 국어의 매력이야. 읽을 줄 알게 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 궁금해지고 궁금해지면 결국 너희는 알아서 공부하게 될 거야.”

혜진과 준호의 이런 생각은 모든 게 점수로 환원되고, 경쟁이 일상이 된 ‘개념어의 세계’ 혹은 ‘정답의 세계’에서는 불필요한 일이거나 오답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 어디 공부뿐일까? 우리는 어느새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간과 사회를 애써 탐구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잃어가는지도 모른다. 희원고등학교 전교 1등인 이시우(차강윤)가 국어를 어려워하며 암기 과목으로 여기는 것처럼.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 사랑


특히 ‘사랑’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 중 높은 수준의 이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우선 당사자 간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러하다. 행간을 읽는 능력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닿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을” 정성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사랑은 ‘정답’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계의 가치관과 충돌하기도 한다. 특히 ‘스승과 학생’ ‘연상·연하’로 구분된 관계는 ‘축복’이 아닌 흉흉한 ‘추문’이 될 게 뻔하다. 당사자들만 망하는 게 아니라, 학원의 존폐가 걸린 일이다. 그 충돌로 생긴 균열의 틈새로 온갖 통념과 모순, 그리고 모략이 사랑을 훼손시키려 들 것이고 포기하도록 종용할 것이다. 어쩌면 ‘대치동’으로 표상된 오늘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란, 가장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행위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걸 알기에 혜진은 다가오는 준호를 밀어낸다. 하지만 “준호를 안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 결국 사랑을 선택한다.

나는 이 드라마가 ‘리얼’의 세계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도 ‘낭만’을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좋다. 의학계에 ‘낭만닥터 김사부’가 있다면, 대치동 학원가에는 ‘낭만티처 서혜진’이 있다고나 할까. 경쟁이 일상이 된 계급사회에서 혜진은 바보처럼 한 인간의 성장에 지극히 관심을 갖고 헌신한다. 또한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방법과 시대적 배경과 화자의 내면 정서를 추론하는 능력을 가르치려 애쓴다.

<졸업>은 이미 정답이 정해진 것처럼 인간과 사회를 규정하는 세계에서 “세상은 못 바꾸니 정답이라도 바꿔야죠”라며 맞서는 혜진을 통해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혜진의 방식이 모든 낡은 것에 균열을 내길 바란다. 권위를 앞세워 정답을 강요하고 ‘꿈’을 ‘내신 등급’으로 정하는 낡은 교육 방식, 실리를 챙기기 위해 진정성을 모욕하는 낡은 생존 방식으로는 넓은 “지문 바깥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또한 <졸업>은 인간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혜진은 준호를 통해, 준호와 닮은 시우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준호 또한 마찬가지다. “매달 수천만원이 꽂히는 통장과 신축 아파트 계약서”를 목표 삼았던 준호는 점점 ‘스승’이 되어갈 것이다. 혜진과 준호의 성장과 더불어 ‘준호들’의 탄생을 보고 싶기도 하다. 준호가 ‘아버지의 세계’를 나와 개인으로 성장해가듯, ‘권위와 낡음’을 상징하는 ‘백발 마녀’의 세계를 나온 시우가 ‘인간답게 사는’ 길을 발견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안판석의 ‘낭만적리얼리즘’


보통 안판석 감독의 작품을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러한가? 물론 한 편의 드라마가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을 ‘리얼’하게 담아낼 수는 없다. 다만 드라마(혹은 문학과 영화 등)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넌지시 발견하게 할 뿐이다. <졸업>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는가? 나는 이 드라마가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으로서의 혜진, 자신의 삶과 준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혜진은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결국 인간다움은 사랑을 통해 발현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낭만적리얼리즘’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6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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