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08년 교실 안
현주:야, 임솔. 아, 일어나
솔이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상체를 세우고 주변을 돌려본다.
혼란스러운 얼굴의 솔은 뭔가 생각난 듯 눈썹을 씰룩인다.
솔이 창문 너머로 자감남고 건물을 발견하고는 애써 웃으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 다음 책상에 걸려있는 노란 우산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손목에 채워져 있던 전자시계가 사라지고 없다.
비 오는 날 낮.
선재의 집 앞.
선재: '34-1'. 잘못 온 것 같은데
선재가 택배 상자를 들고 솔의 집으로 간다.
그 사이 솔이 노란 우산을 쓴 채 골목길로 온다.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은 상황에서 솔이 선재를 보고 웃다가 우산을 꽉 쥐며 얼른 자리를 뜬다.
선재는 솔을 보지 못하고 솔의 집 마당으로 들어간다.
모퉁이 너머에서 솔이 우산을 떨어뜨린다.
솔은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토해낸다.
금 비디오 가게 앞.
선재가 택배 상자를 내려놓은 뒤 건너편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선재는 미처 솔을 보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모퉁이 너머에서 솔이 혼자 쪼그려 앉은 채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다른 날 밤.
이삿짐 트럭이 세워져 있는 골목길에서 솔이 불 꺼진 집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던 솔은 돌아서서 선재의 집을 응시한다.
솔이 생각에 잠긴다.
과거.
처음 만나던 날 솔이 선재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솔:선재야, 내 말 좀 들어봐 나, 진짜 귀신 본다? 너 물 조심해야 되는 거 맞아!
선재:내가 언제 위로 같은 거 해 달래? 챙겨달란 적 있어? 솔직히 너 보면 내 좌절, 절망 다 들킨 거 같아서 쪽팔리고 껄끄러워
선재:자
솔:이까짓 게 뭐라고 그 사람 많은 데서 노래를 불러? 너야말로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해?
선재:왜? 난 너 걱정하면 안 돼?
솔:어, 하지 마
선재: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네가 살아온 모든 시간 속에서 나를 좋아했던 넌 없어?
솔:응, 없어
2009년
선재:솔아, 이제 도망치지 말고 그냥 나 좋아해라. 너 구하고 죽는 거면 난 괜찮아. 상관없어
현재.
2008년
복순:아, 임솔, 뭐 해? 빨리 타
솔:어
솔이 이삿짐 트럭 조수석에 올라탄다.
대문 밖으로 선재가 나오는 그때 솔을 태운 트럭이 떠난다.
선재가 빈 솔이네 집을 본다.
선재:이사 가나 보네
선재는 대수롭지 않게 트럭을 등지고 걸어간다.
2009년 5월 선재의 방.
달력에 적혀있던 솔이 생일 글자가 사라지고 솔이 줬던 태엽 시계와 타임캡슐, 박하사탕이 들어있던 작은 병이 없어진다.
솔과 함께 찍은 즉석 사진과 소나기 악보까지 솔과의 기억들이 전부 지워지는 모습에서 화면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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