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자감고 수영장
선재가 출발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심란한 한숨을 내쉬던 선재가 50미터 길이의 레일을 본다.
선재는 고요한 수영장을 둘러보다가 수영장 물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본다.
수영장 한쪽에 쌓여있던 플라스틱 의자들이 우당탕 쓰러진다.
선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나는 쪽을 본다.
선재는 의아한 얼굴로 조심조심 다가가 본다.
어둠 속에 얼굴이 가려져 있던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고 앉는다.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솔이다.
선재가 내심 반가운지 피식 웃다가 얼른 표정을 숨긴다.
💙또 너야?
💛또 나야. 미안, 방해할 생각 없었는데
솔이 비틀대며 일어난다.
💙너 술 마셨어?
💛아니
선재가 솔에게 바짝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술 냄새나는 것 같은데?
💛아이, 무슨 소리야?
💙얼굴도 벌겋고
💛너희 아버지가 주신 오미자청 마셨거든. 아, 그래서 열이 좀 오르나?
💙우리 아빠가 준 오미자?
💛응
소주가 잔뜩 들어가 있다.
💙야, 그거 술이야!
💛헉, 뭐? 아, 술맛 하나도 안 나던데
💙야, 거기 들어간 술이 몇 병인데! 괜찮아?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
💙어휴
💛괜찮아, 나는
💙어휴
솔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선재가 붙잡는다.
💙취했구먼. 이리 와
선재가 솔을 끌어다가 한쪽에 앉힌다.
솔은 눈도 못 뜬 채 헤실헤실 웃고 있다.
선재가 곁으로 와서 앉자, 솔이 진지한 눈빛으로 선재를 바라본다.
💛선재야
💙응?
💛너 갑자기 다운돼 있으니까, 좀...벽이 느껴진다?
💙뭐?
💛완벽
💙이건 무슨 술주정이지?
💛네 능력 솔직히 거품이거든?
💙하지 마
💛언빌리버블
💙야, 하지 말랬지?
💛뭘 그렇게 싫어하냐? 징하다, 징해
💙아, 그건 진짜
💛어메이징!
💙아, 재미없다. 그만해
💛치, 이거 예전에 완전 선재 웃음 버튼이었는데 안 통하네
솔이 MP3를 꺼낸다.
💛그럼 음악이라도 들을래?
선재가 MP3를 받아 들고 돌돌 말린 이어폰 줄을 풀어 솔에게 한쪽을 건넨다.
💙자
솔과 선재가 이어폰을 하나씩 귀에 꽂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다.
💛(팬들한테 자주 불러줬던 노래네)
솔이 스르르 눈을 감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솔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선재가 솔의 얼굴을 감싸 잡고 제 어깨에 기대게 한다.
솔은 편안한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다.
💙다행이네. 한쪽은 멀쩡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솔은 여전히 선재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다.
선재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고는 솔의 이어폰도 빼준다.
솔이 잠결에 선재의 품으로 파고들자, 선재가 당황해 벌떡 일어난다.
MP3가 떨어지는 소리에 솔이 깬다.
솔의 눈에 선재가 등신대로 보인다.
💛(이거 내 보물 1호인데?)
솔이 선재에게 가다가 MP3를 밟는다.
💙가자, 늦었어
💛어? 말도 하네? 우와, 광고를 찢고 나왔나? 막 살아 움직이네?
💙재밌다, 재밌어 그래
솔이 휘청거리자, 선재가 한 손으로 솔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솔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가까워져 있는 선재의 얼굴을 바라본다.
솔은 가만히 손을 들어 선재의 뺨을 감싼다.
솔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자, 선재가 멈칫한다.
솔은 슬픈 눈빛으로 선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흔들리던 선재의 시선이 솔에게 닿는다.
선재는 결심이 선 표정으로 솔을 응시한다.
💙좋아해
솔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가 너 좋아한다고.
💛계속 이렇게 웃어주라. 내가 옆에 있어 줄게. 힘들 때 외롭지 않게 무서운 생각 안 나게. 그렇게 평생 있어 줄 테니까. 오래오래 살아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재가 솔에게 입을 맞춘다.
선재는 솔의 등을 감싸고 솔은 스르르 눈을 감으며 선재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솔의 얼굴이 술기운으로 발그레 달아올라 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두 사람은 달콤한 입맞춤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