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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삼식이 [씨네21] '삼식이 삼촌' 송강호X변요한X이규형X진기주X서현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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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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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의 데뷔 34년 만에 나온 첫 드라마. <삼식이 삼촌>은 그것만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하지만, 뜯어볼수록 내실이 알차다. <프랑스 영화처럼> <카시오페아> <1승>(개봉예정)의 신연식 감독이 쓰고 연출한 <삼식이 삼촌>은 한국전쟁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 전인 1960년대 국가 중흥에 관여하려는 야심가들의 군상극이다. 가난에서 벗어나 원 없이 피자와 단팥빵을 먹는 나라를 꿈꿨던 사업가 박두칠(송강호)을 필두로, 육사 출신의 엘리트 경제 전문가 김산(변요한), 차기 대권을 노리는 보수 정치인 강성민(이규형), 혁신당 당수의 딸이자 최측근 참모이며 김산의 연인인 주여진(진기주), 군 개혁을 꿈꾸는 엘리트 군인 정한민(서현우)이 당대의 열망과 개인의 욕망을 맞부딪친다. 많은 시대극이 실화를 재현하거나 혹은 과거를 픽션적 무대 삼아 판타지를 창조하는 데 반해, <삼식이 삼촌>은 가공된 인물들로부터 한국 근현대사에 응집된 빛과 그림자를 이끌어낸다. 16부작 호흡으로 긴 몰입의 시간을 허락하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에서 확고한 구심력을 발휘하는 5명의 주역들을 만났다. 작품은 5월15일, 디즈니+에서 1~5화가 첫 공개된다.





밥과 삼촌. 전후 한국에서 두 낱말은 상징적이다. 배고픔, 울분, 연대, 가족애, 생존 본능과 뗄수 없는 이 정신적 표어들을 이름으로 얻은 남자가 있다. 주변인들의 하루 세끼를 챙겨주는 수완 좋은 사업가라 해서 ‘삼식이 삼촌’이라 불리는 박두칠(송강호)로, 그는 드라마 <삼식이 삼촌>의 걸어다니는 은유이자 오래전부터 “밥은 먹고 다니냐?”(<살인의 추억>)를 물었던 우리의 송강호 그자체다. 지난해 내내 창작의 고통이 급습한 촬영 세트장에 갇혀 있던 영화의 우두머리(<거미집> 김열)는, 특유의 인상적인 줄행랑 실력으로 1970년대를 빠져나와 1960년대 저잣거리의 왕으로 등극했다. 위로는 정치판, 아래로는 뒷골목까지 배짱 좋게 접수한 박두칠의 신화는 막 경제개발의 깃발을 꽂은 근현대사의 등락 앞에서 요동친다. 두둑한 배포와 소탈한 인간미, 순수함과 비밀스러움을 동시에 갖춘 이 남자. 박두칠을 그려가다보면 문득 그 종잡을 수 없음이 지극히 배우 송강호다운 것이라 납득하게 된다.



- <삼식이 삼촌>은 ‘송강호의 첫 드라마’라는 점만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 약간 수식어처럼 쓰이는 것 같기도 해서 민망하다. 뭐, 어쨌든 첫 드라마인 게 사실이지만. 왜 갑자기 드라마냐고 이유를 많이들 물으시는데 답은 간단하다. 콘텐츠가 다양한 형태,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시대인 만큼 내 관점도 자유로워질 필요를 느꼈다. 관객과 소통하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던 차에 <삼식이 삼촌>을 만났다. 드라마라고 해서 딱히 낯설거나 힘들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심적 부담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 첫 드라마 출연작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었을까.
= 영화야 쭉 해오던 작업이니 흥행이 잘될 때도, 또 마음만큼 따라오지 않을 때에도 단련되어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어떤 느낌일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물론 작품의 진정한 성공이란 숫자로 대변되지 않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디즈니+의 경우 구체적인 흥행 집계를 내부적으로만 한다고 해서 좋다, 하하하! 영화는 개봉 직후부터 매일 관객수, 예매량이 집계되고 공중파 드라마는 방영 다음날 아침마다 시청률이 나오니까 아무래도 애가 타거든.



- 송강호의 시대극 드라마가 디즈니+에 안착한 그림이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웃음) <거미집> <1승>에 이은 신연식 감독과의 세 번째 협업이 만든 결과다.
= 나는 일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서로 스케줄이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거다. 한 시절에 배우 송강호의 감성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데 정반대의 작품이 들어오면 아무리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해도 선뜻 다가가게 되질 않는다. 산업적인 성공이 예측되는 요소가 빤히 보여도 그보다는 나 자신의 목마름을 축여줄 작품을 찾게 되는 것이 배우의 본능이니까. 신연식 감독과 연달아 작품을 함께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각본을 쓴 <동주>를 본 뒤부터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적 면모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을지 몰라도 그동안 중점적으로 보지 못했던 인간적 면모를 바라보는 시선에 놀랐다. 젊은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도 하니까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지. <기생충>의 아카데미 레이스까지 마무리짓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가 먼저 내게 연락을 해왔고, 그러잖아도 호기심이 있던 상태라 그랬는지 그날 당장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제안했다. 그렇게 <거미집>(각본 신연식)과 자그마한 독립영화 <1승>을 찍었고 <삼식이 삼촌> 대본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전까진 드라마 작업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 <씨네21> 신작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감독이 밝히길, 그렇게 성사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삼식이 삼촌>의 한 장면에 영감을 줬다고. 배우 송강호가 단번에 신연식 감독에게 만남을 청한 것처럼, 킹메이커 박두칠도 정치인 김산(변요한)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빵집으로 불러낸다.
= 그래도 굳이 따지면 현실에선 신연식 감독이 박두칠 쪽이지! 자신의 야망과 꿈을 실현시켜줄 인재를 캐스팅하려는 거니까. 신연식 감독도 내게 그날이 인상 깊었다는 얘기를 하긴 했다. 일반적인 절차라는 게 보통은 이메일로 대본을 보내주면 ‘읽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는 거잖나.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에 놀랐을 것 같다. 살다보면 이런 인연도 있는 것 아닐까.



-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법서 중에는 캐릭터가 위장, 심장, 머리 중 무엇에 가장 크게 지배되느냐에 따라 인물형을 분류하는 관점도 있다. 박두칠은 소화기관의 본능과 맞닿은 캐릭터인가 싶다가도 전략가적인 면모를 보여줄 땐 머리로 움직이는 캐릭터이고, 불쑥 뜨거운 마음을 드러낼 땐 심장의 인간이다.
= 죽 한 그릇 먹기 힘든 시대에 밀가루로 만든 빵, 피자를 이야기하는 게 박두칠 아닌가. 빵도 그냥 빵이 아니라 단팥빵을 먹는다. 그가 지닌 경제적, 사회적 풍요를 향한 높은 이상을 말해주는 메타포들이다. <삼식이 삼촌>은 분명히 위장에서 시작해, 중후반부에 뇌로 갔다가 마지막에 가슴으로 간다. 지금으로선 딱 이 정도까지 말할 수 있다. 화살표를 그리자면 위->뇌->심장 순서로 흐르는 드라마다. (먼저 퇴근하게 된 배우 변요한이 인사하러 다가온다) 다 끝났구나? 얼른 들어가~. 수고 많았어. 우린 한창 내장 이야기 중이었어. (일동 웃음)



- 마침 김산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려 했다. 박두칠은 젊은 엘리트 김산과 어떤 감정으로 연결되나.
= 박두칠에게 김산과의 만남은 자기 인생의 로망이 실현된 것에 가깝다. 그러니 자신을 걸 수밖에. 둘의 관계는 역동적이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관계 구도 안에 우리의 삶이 압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서로 경계하다가 가치관을 공유하는 끈끈한 사이가 되고, 그러다 갈등이 생기고, 질투하고, 각자가 이기심을 부릴 때도 있다. 관심이 떨어졌다가 다시 불붙거나 무감해졌다가 서로의 진심을 새삼 깨닫는 식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깊이 엮인다는 게 그런 과정 아니겠나.



- 신연식의 시대극 속 송강호는 원대한 이상에 몰두한 나머지 집념과 집착을 오가는 캐릭터다. 전쟁 이후에 배불리 먹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삼식이 삼촌>의 박두칠, 검열의 시대에 일생일대의 영화를 만들려는 <거미집>의 김열 모두 그렇다.
= 나도 바로 그 점, 완벽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좋다. 박두칠과 김열, 두 사람 모두 어떻게 보면 비뚤어진 욕망과 야망의 소유자들이다. 어딘가 약간 왜곡된 면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이들이 가진 지나친 열정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대에 작가가 이 두 캐릭터를 불러낸 건 두 캐릭터를 불러낸 건 그들의 거친 순수성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순수성이란 게 너무나 빛나는 것인 동시에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탈색되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박두칠과 김열은 내 삶의 순수성을 지금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질문하게 만드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 특히 박두칠은 시대상과 결부된 캐릭터고 해석에 따라 명암이 갈릴 법하다. 그때그때의 주어진 상황과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 작업과 보다 분석적인 캐릭터 연구를 요하는 작업으로 나눠본다면, <삼식이 삼촌>은 어느 쪽인가.
= 순간적인 감정이 중요할 때와 관조적인 포지션에서 분석적인 시선을 갖고 접근해야 할 때가 각각 있는 건 맞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섞여 있다. 복잡한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현장성 50, 해석력 50 이런 식의 산출은 불가능하다. 준비 단계가 끝난 뒤 카메라 앞에 선 순간부터는 본능적으로 톱니바퀴를 굴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거엔 배우가 자기 결과물에 대해 말할 때 ‘본능’을 언급하면 약간 건방지게 보는 시선도 있더라고. 조심스럽지만, 내 말은 계산적인 연기법이란 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제목에서부터 캐릭터를 지칭하는 이 작품의 컨셉을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 상징성, 흡인력과 별개로 보긴 힘들 것 같다. 이 지점이 의식되진 않았나.
= 배우 송강호의 모습이 작품 속 캐릭터에 어떤 식으로든 투영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런 바람을 갖고 시도한다고 해서 되지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부질없는 욕심은 놓아야 한다. 그 대신 바라는 경지가 있다면, 캐릭터를 충실히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마치 매직아이(스테레오그램)를 볼 때처럼 스윽 인간 송강호가 나타나는 것이다.



- 16부작 정극 드라마라 많은 대사를 소화해야 했다. 목소리 표현, 음절과 운율 처리 같은 디테일에 어떻게 접근했나.
= 하!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대사가 많더라고. 궁극적으로는 시대극 연기를 할 때 흔히 빠질 수 있는 유혹을 경계했다. 1960년대 초반은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시대다. 그러다보니 캐릭터가 쓰는 언어와 그 안의 뉘앙스가 대체로 거칠고 마초적이며 직설적으로 표현되어온 편이다. 나는 그동안 공중파 드라마에서 많이 쓰인 인물의 질감은 지양했다. 센 표현은 배우에게도 쉽고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에도 편하다. 나로서는 그것을 피하는 도전을 해본 셈이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박두칠이 어떤 사람인지를 시청자가 점점 더 몰랐으면 좋겠다. 근데 결국은 알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이걸 실질적으로 어떻게 만들어내냐고? 베테랑인 배우들이 각자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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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요한에 따르면 <삼식이 삼촌> 속 김산은 “매 사에 진지하고 진중하며 진심인, 편견이 없는” 1960년대 엘리트 청년이다. 육사 출신 올브라이트 장학생, 미국 경제학 전공생인 김산은 재무부 과장으로 복무하며 전후 대한민국의 국가 재건을 위해 힘쓰지만, 그의 계획은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의 벽에 좌절한 청년에게 “당신은 대통령도 할 사람”이라며 삼식이 삼촌(송강호)이 접근해온다. 회유와 거절, 설득과 번민의 반복 속에 김산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 김산은 대한민국을 공업국가, 무역국가로 만들려는 꿈을 품고 귀국한 청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뜻과 신념을 같이한다고 믿는 혁신당 주인태 의원(오광록)을 지지하기도 한다. 김산은 유학 생활 중 경제학뿐 아니라 민주시민의 자세까지 배워온 듯 보이는데.
= 김산은 미국에서 사람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편견 없이 사람을 마주하고 관계를 맺는 법 등 말이다. 육사는 단체생활을 요하는 군대다. 거기서 장학금을 받고 그중에서 1등을 할 정도면 그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능력이지 않았을까. 유학생 신분으로서 김산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벽이 또 있었을 것이다. 이상향이거나 허황된 판타지일 수도 있다. 김산은 그게 무엇인지 뚜렷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한국에 왔겠지. 엘리트 청년이어도 국가의 성장에 자신이 기여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산은 자신이 꿈꾸는 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역동적인 사내다.



- 김산의 혁신당 찬조 연설 장면이 예고에서부터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김산이 삼식이 삼촌에게 잠재력을 인정받는 계기면서 시청자에게도 김산이 지닌 이상을 입증해내는 장면인데.
= 나 역시 이 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김산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과 분석이 들어갔다. 그리고 현장에선 연극을 하듯 생생함을 살려 4분 정도의 연설 장면을 통으로, 세 테이크 정도에 장면을 끝마쳤다. 평소 엔지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는 배우는 아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크루들에게도 배우 변요한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준비 방도는 결국 진심이다. 서툴더라도 진심으로 외치고 설득하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 심지어 상대 배우가 리버스숏을 촬영할 때도 동일한 에너지 크기를 가지고 앞에서 연기했다.



- 어쨌든 나를 보고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상대는 연인이든 귀인이든 남다르다. 김산은 삼식이 삼촌의 어떤 점에 감응했을까.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누구를 처음 만나 대화하면 의심부터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상대는 자기를 치장해 잘 보이기 위해서, 혹은 속내를 안 들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테니까. 그런데 적어도 삼식이 삼촌은 진실을 꺼내 보인다. 도리어 그 점이 김산에겐 위협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일견 고맙다가도 당혹감도 느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날? 왜?’ (웃음)



- 시대극이었던 <미스터 션샤인> 정도를 제외하면 안경을 쓰고 등장한 작품이 거의 없다.
= 계산이 있었다. 김산의 피로를 드러내는 소품으로 안경을 사용했다. 김산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나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안경을 쓰거나 벗었다. 말하자면 장치다. 안경을 쓰면 김산의 지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다. 그러다 안경을 벗을 때면 안경 뒤에 숨긴 김산의 복잡한 감정을 들키게 할 수도 있다.



- 김산과 변요한의 닮은 점이 있다면.
= 꿈과 목표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걸 이루어나 가려 하는 점. 작품을 만났을 때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 뜨거운 꿈을 가슴에 품은 청년의 모습을 시청자들도 봐주었으면 한다.



- 그래서 전작 중 김산과 유사한 캐릭터는 <소셜포비아>(2015)의 지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캐릭터 모두 시대의 격동이나 징후가 꿈 많은 청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나.
= 동감한다. 나는 196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셜포비아>만 해도 10년 전 작품이다. 그런데 2010년대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과 지금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1960년대의 젊은이들의 마음과 2024년의 젊은이의 마음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결국 문명 발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뇌하는 청년의 본질은 같다. 묻고 싶다. 더 좋은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김산은 좋은 사람인가.
= 아니다. 그렇다면 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얼까? <삼식이 삼촌>에서도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게 이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다. 지금의 내 판단으론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이 내 편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욕망은 어떤 캐릭터에게 가 있는지 찾으며 작품을 본다면 훨씬 즐거울 것이다.



- 최근 배우 변요한의 필모그래피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더블’이 아닐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선 김윤석과 2인1역이었다. <자산어보>의 창대는 정약전(설경구)과 사제 관계고, <한산: 용의 출현>의 와키자카는 이순신(박해일)의 숙적이다. 김산은 삼식이 삼촌과 짝패가 된다.
= 부반장을 주로 맡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 있는 운명이었지만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다. 나를 냉철히 객관화했을 때, 몇몇 독립영화에서 잠깐 주목받았다는 이유로 작품 전체를 단독으로 떠받드는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후배 상관없이 가르침을 받는 대상에게 배울수 있는 한 배우고 싶다. ‘변요한은 크레딧 1번 에만 이름을 올리는 배우다’라는 문장이 박히는것 딱 질색이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잘하는 재밌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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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손을 맞잡은 삼식이 삼촌(송강호)과 김산(변요한)의 대척점엔 강성민이 자리한다. “대한민국의 귀족”과 다름없는 그는 부와 권력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차기 지도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두려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실은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존재는 기필코 제거해야 성이 풀리는 불안과 잔혹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다중인격 악역(<보이스> 시즌4)이나 단단함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선역(<라이프>) 등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거쳐온 이규형만큼 강성민의 양면성을 표현할 적임자는 없었다. 신연식 감독 역시 강성민이 “복합적인 이미지를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라 이규형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너무 잘 연기해줬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대 배경에 맞게 리얼함을 살리면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는” 작품이라고 이규형은 <삼식이 삼촌>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 대본을 읽기도 전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 <삼식이 삼촌>에 관해 전해 듣던 중에 송강호 선배님이 참여하신다길래 일단 하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 대본을 받아 읽었고 글로만 접해도 강성민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던데.
= 강성민은 대본에 헤어스타일까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국회의원이니까 보통 슈트를 입고 다닐 것이고, 시대배경이 1950~60년대라 클래식한 포인트가 잘 어울릴 것 같아 분위기를 참고할 겸 옛날 영화들을 찾아봤다.



-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듣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음악이 주는 힘이 크다고 느낀다. 대본을 읽으면서 작품 혹은 특정 신과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음악을 듣는 편인데 이번에는 <대부>와 같은 묵직한 고전을 골라봄과 동시에 <대부>의 O.S.T도 즐겨 들었다. 강성민이 살인을 사주하는 등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상황이 펼쳐지기에 밀도감 있는 음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무거운 음악만 들은 것은 아니고 반대로 빠른 비트의 음악도 들으면서 강성민이라는 인물의 분위기를 갖춰나갔다.



- 시대극에 출연할 땐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 따로 레퍼런스를 찾아보나.
=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땐 <대한늬우스> 영상을 찾아봤는데, 보면서 ‘대사를 이런 말투로 이렇게 리얼하게 구사해선 안되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극 나름의 톤이 있는 것처럼 이것도 시대상이 명확한 작품이라 연기를 통해 고유의 색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픽션의 서사를 펼치는 작품을 좋아한다. 시기 적으로 너무 먼 과거가 아니라 낯설지 않고, 또 <삼식이 삼촌>은 특유의 묵직함을 갖고 있어서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재밌었다.



- 강성민은 자신의 야망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이지만 내면엔 불안정하고 연약한 모습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정치판에 뛰어들어 이토록 강하게 권력욕을 드러내게 됐는지 궁금했다.
=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과거의 경험이 강성민으로 하여금 정치계에 발을 들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강성민은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상류층 자제다. 현재는 국회의원의 자리에 올랐고 차기 지도자 후보로 명명되고 있기 때문에 이 조건만 놓고 보면 강성민은 아쉬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재적으론 열등감과 불안감이 있어 한번씩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겉으론 강해 보여도 순간순간 약한 면이 드러나는 복합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있겠다. 그러나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낸 삼식이 삼촌에게만큼은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드러내 보이곤 한다. 이러한 강성민의 전사가 작품 안에서 전부 그려지진 않는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과거가 조금씩 밝혀지기 때문에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시청자들도 강성민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 강성민의 첫인상은 귀족, 혹은 황태자에 가까워 보였다. 대본에 헤어스타일까지 묘사되어 있었던 만큼 외형 구현에도 신경을 썼을 것 같다.
= 과하진 않되 외적인 모습에서 각이 잘 잡혀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래야 무너지는 모습과의 대비가 더 극대화될 테니까. 강성민은 항상 스리피스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춰 입고 나타난다. 의상은 화려하게 갖춰 입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블루톤의 의상을 입었다. 의상팀에서 신경을 써준 덕분에 강성민에게 몰입이 잘됐다.



- 신연식 감독과는 강성민이나 작품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감독님이 “강성민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을 것 같냐”고 물어보시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강성민의 입장에서 답을 생각해 이야기했고 그런 식으로 감독님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결과적으로 강성민의 대사 곳곳에 나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었다. 실제로 창작 초연 연극을 할 때 이런 방식으로 연출자, 배우가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곤 한다. <삼식이 삼촌>을 촬영할 때 오랜만에 창작 초연 연극을 준비하는 기분이라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즐거웠다.



- 송강호 배우의 캐스팅 소식만 듣고 출연을 결심할 정도였으니 극 중 삼식이 삼촌과의 조우를 꽤 기대했을 것 같다.
= 강성민과 삼식이 삼촌이 함께하는 신이 많긴 했다. 송강호 선배님은 마에스트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지에 올라 있는 느낌이랄까.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촬영 후 며칠이 지난 뒤라도 (송강호 성대모사를 하며)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그 장면, 다시 찍자. 아니면 녹음이라도 다시 해보자”라면서 집요하게 접근하신다. 그런 면에서 많이 배웠다. 연기는 리액션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송강호 선배님이 내 연기를 잘 받아주셔서 함께 하는 신마다 수월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다.





<삼식이 삼촌>에 등장하는 1960년대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지성을 어떻게든 국가의 중흥에 이바지하려는 열망이 있다. 진기주가 분한 주여진도 마찬가지다. 여진은 혁신당 국회의원인 아버지 주인태 의원(오광록)의 사무실에서 참모로 일하다 훗날 기자가 된다. 작품 속 여진은 절대 혈연을 이유로 아버지의 일을 돕는 청년으로 비치지 않는다. 여진이라면, 정확히는 진기주가 연기한 여진이라면 삶의 모든 선택에 자기만의 논리와 기대를 걸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 전작 <어쩌다 마주친, 그대>에서 1980년대를 사는 여성을 연기한 적 있다. 이번엔 그보다 앞선 시기인 196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 분했다.
=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1980년대 한국에 갑자기 떨어진 인물이라 시대고증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땐 스스로 상황을 직접 맞닥뜨려야 진짜 감정이 나올 것 같아서 예습하지 않았다. 그때보다 <삼식이 삼촌>은 훨씬 더 과거이다 보니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책과 유튜브 영상을 주로 참고했다.



- 대본을 받은 후 들었던 첫인상은.
= 브라운 컬러, 베이지 컬러가 처음 떠올랐다. 가을 웜톤이라고 해야겠다. (웃음) 언젠가는 연기 해보고 싶은 컬러의 캐릭터였다. 여진은 정말 많이 익어 있는 사람이다. 다 익어서 고개를 숙인 벼 같은 친구다. 그게 좋으면서 어려웠다.



- 어떤 점이 어려웠나.
= 이렇게 말수가 적은 배역은 처음이었다. 어쩌다 말을 해도 짧게 답하다 보니 한정된 문장 속에 뭔가를 담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금껏 나는 감정을 대사에 전부 녹이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우리가 일상을 살 때도 대개 발화의 의도와 목적을 언어에 담지 않나. 그런데 여진인 그렇지 않다. 여진의 말을 꼭꼭 씹어 위장에서 소화한 뒤 연기해야만 했다. 여진은 두 마음이늘 갈등하는데 그 갈등을 100시간 안에서 숙성시킨 다음 겨우 한 문장을 꺼내 보이는 사람이다. 그 무게감이 공포로 다가온 때가 있었다.



- 여진과 김산(변요한)은 사랑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아도 서로를 굳게 믿는 연인으로 그려진다. 둘의 사랑을 어떻게 해석했나.
= 삼식이 삼촌(송강호)이 김산을 포섭하기 위해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을 한다. 단언컨대 나는 김산과 같은 꿈을 꾸는 건 여진이라고 본다. (웃음) 둘은 정말 같은 꿈을 꾸고 있고 같은 열망을 마음속에 갖고 있다. 둘은 모든게 맞물려 있어 서로 강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둘의 가슴엔 같은 피가 끓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대사는 여진이 해야 한다!



- 여진은 삼식이 삼촌을 만나 파란만장해지는 김산의 삶을 곁에서 오래 지켜보는 캐릭터다. 달리 말해 시청자와 함께 김산의 궤적을 함께 담지하는 캐릭터다.
= 여진의 시선이 곧 당시 시대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이라 생각했다. 시청자의 시선이기도 하지만 작품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가장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눈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피를 끓게 한 여진의 장면이 있다. 기자가 된 여진이 기사를 쓰고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기사 내용이 나가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빨리 공개됐으면 좋겠다.



- 여러 고초에도 불구하고 여진이 유지하려는 신념과 욕망이 있다면 무엇일까.
= 여진에게도 분명한 욕망이 있다. 삼식이 삼촌과 같은 존재가 힘을 가져다주면 여진 또한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여진은 유혹에 동하지 않는다. 꼼수나 전략, 이해관계를 좇는 지름길 대신 속도가 느리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길 택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상이 좌절되더라도 여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라 생각한다.



- 여진의 잠재력에 관해 정리하기도 했는데.
= (손으로 큰 타원을 그리며) 여진은 이만한 그릇을 가졌다.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큰 그릇을 품은 캐릭터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곁의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선택에 의해 삶의 방향이 바뀌지 않나. 여진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도 감당해낼 수 있다. 그래서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여진의 성정상 그 잠재력을 발휘하겠다며 스스로 나서진 않을 것이다. 사실 여진은 쓸데없이 정직하기도 하다. (한숨을 쉬며) 캐릭터로선 멋있을지 몰라도 자기 현실을 살아가는 덴 불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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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우가 묘사하는 엘리트 군인 정한민은 “액면가 그대로의 인간”이다. 군 개혁을 꿈꾸지만 처세를 모르는 다혈질의 인간인 그는 종종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약간의 위트일 수도 있고 혹은 레이어일 수도 있는” 입체성을 부과하는 타고난 감각으로 카메라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온 이 배우에게 그래서 정한민은 어려운 도전이었다. 있는 그대로 화내고, 소리 지르고, 마음 안의 불씨를 태워 재가 되기까지 밀어붙이는 시도였던 <삼식이 삼촌>은 배우 서현우에게 데뷔 이래 가장 긴 호흡으로 따라가야 했던 캐릭터였음은 물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도 선물했다.



- 16부작 드라마를 77회차 만에 찍었다. 누수 없이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현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 쟁쟁한 무림의 고수들 사이에 어쩌다 낀 것 같았다. 교차되는 짧은 신들이 많이 펼쳐지는 구성이기도 해서 분량이 적지 않은데, 감독님부터 송강호 선배님, 모든 베테랑 배우들이 정말이지 뚝딱뚝딱 프로들의 경합처럼 만들어 나갔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집중력을 온전히 털어 쓰지 않으면 안되는 현장에 있는 건 정말 행운이다.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는 대신 밀도가 높아서 어떤 신은 한신만 찍어도 진이 빠지기도 했다. 기분 좋은 긴장감에 의지해 개인적으로는 초심을 다시 돌아본 시간이었다.



- 송강호 배우와는 <관상>에 함께 출연한 적 있지만 대면해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관상>에서 내 단독 숏을 처음 찍는 날이었는데 연기가 끝나자 컷은 안 나오고 누군가가 기립박수를 쳤다. 나도 스태프들도 의아해서 모니터 쪽을 바라보니 송강호 선배님이 서서 박수를 치고 계셨다. 그러고 나선 나를 모니터로 불러 방금 찍은 장면을 같이 보자며 관심을 표현하시는 거다. 어깨동무를 하며 건네주셨던 질문도 기억난다. “뭐 하다 이제 왔어! 그동안 연극했어?” 그날 이후로 뭐랄까, 현장에서 나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웃음) 엄청난 일이었지. 최근에 선배님이 농담 삼아 “그때 네가 2~3년 안에 아주 잘될 줄 알았는데 한 10년 걸린 것 같다”고 하시더라!



- <삼식이 삼촌> 초반부에 진급 심사에서 떨어진 정한민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회식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장면에서 박두칠이 그의 역량을 눈여겨보고 불러 세운다. 이 대면 장면이 낯설지 않았겠다.
= 정한민이 담배를 태우는데 옆으로 박두칠이 다가와 “가슴속에 뜨거운 용광로가 있으시네”라고 말한다. 나도 그 신이 정말로 재미있었다. 서로의 눈을 보면서 같이 연기를 하는 순간은 완전히 처음이었기 때문에 과거에 내가 선배님과 실제로 겪은 일들이 공교롭게 떠올랐고, 박두칠이 정한민에게 그런 것처럼 실제로도 송강호 선배님이 나의 어떤 점을 캐치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정한민은 김산(변요한)과 같은 올브라이트 장학생 출신의 엘리트 군인인데, 불같고 타협 없는 성정의 소유자라 비슷한 배경을 지닌 김산과 다른 노선을 걷는다.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
= 다혈질적인 남자인데 그 면모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관건이라고 봤다. 반듯하게 세워진 이름 세 글자도 딱 그답다. 한민족의 한민 같기도 하고. <삼식이 삼촌>의 정한민을 연기하면서 새삼스레 성격이 팔자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시대의 격동 속에 있더라도 결국 사람은 자기 성격대로 인생을 펼쳐간다. 엘리트 군인이자 뜨거운 원칙주의자인 한민도 자신의 성정으로 인해서 어떤 운명과 상황들을 맞이한다. 마음속에 불씨를 품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정한민과 인간 서현우의 결정적인 차이는 정한민이 자꾸 적을 만든다면 서현우는 제법 사회생활을 할 줄 안다는 거다.



- 보이는 그대로의 에너지가 강한 캐릭터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어땠나.
= 다른 의도를 숨기고서 연극하는 게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인 인물이길 바랐다. 조금이라도 음흉한 레이어가 느껴지면 이 인물이 가진 열정, 굳은 의지 같은 것이 변색되어 보일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위트와 레이어를 살리는 연기를 많이 해왔다.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비극에도 위트를 섞는 식으로. 그런데 정한민은 대본에 표현된 것처럼 저돌적인 에너지로 끝까지 밀고나가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삼식이 삼촌>은 오히려 불필요한 입체성을 계속해서 걷어내는 방식으로 임했다. 그 자신다운 원색이 중요한 인물에 충실했다고 할까. 이런 경험이 초반에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 외면상 많이 다르긴 하지만, 아까 언급한 정한민과 서현우의 숨겨둔 공통점인 마음의 불씨에 관해서 조금 더 듣고 싶다.
= 30대 중반에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주변 배우들을 120명 정도 결집해 당시 홍대 근처에 있던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다. (서현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이다. -편집자) 배우 1명당 프로필 10장씩 준비시킨 다음 아카데미 건물 앞에서 다같이 모아서 내가 그걸 들고 건물로 들어갔다. 예비 감독들의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한 사람당 1분씩 자기소개를 했다. 원장님이 인상 깊으셨는지 이후 정식으로 다과회를 열어주고 감독들과의 미팅도 주선해주셨다. 그 무렵 이지승 감독님 소개로 <죄 많은 소녀>의 김의석 감독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엔 촬영장에서 어떤 후배가 다가와서 자기가 그때 있었던 120명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라. 덕분에 단편 4~5개를 찍고 계속 일할 수 있었다고. 얼마나 뭉클하던지. 말하고 보니 나 선봉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네. (웃음)



- 그리고 지난해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신설 교육 과정인 카파 액터스 선생님으로 초청받지 않았나.
= 그렇게 운명이 연결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수위 아저씨가 여기 들어오면 안된다고 막을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 듣다보니 정한민에게까지 애정이 간다.
= 그렇다니까, 그 시대의 집단주의적 이상에 지나 치게 충실했던 짠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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