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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종말의바보 [씨네21] '종말의 바보' 안은진X전성우X김윤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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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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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함 속에서 저만큼 아이들을 위하는 게 가능할까? <종말의 바보> 속 세경을 보며 떠올렸던 질문이다. 본래 중학교 기술가정 교사였던 세경은 소행성 충돌 소식이 알려진 후 휴교령이 내려지자 웅천시청 아동청소년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어수선한 틈을 타 발생한 폭동을 겪은 후, 세경은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지키려 분투한다. 김진민 감독은 “세경 역엔 본능적으로 안은진 배우를 떠올렸다”고 말하며 배우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믿음에 부합하는 연기를 보여준 안은진에게 <종말의 바보>는 배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 등장인물이 많은데 그중 세경의 감정 변화와 고민이 가장 세부적으로 그려진다.
= 성장형 캐릭터의 경우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변화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데, 세경은 폭동 이후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했다. 그 단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중간중간 증폭되는 감정을 잘 표현하면 되겠다 싶었다. 아주 평범한 기술가정 교사고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해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다면.
= 상상력이 좀더 필요한 작품이었다. 종말을 바라보는 극한상황이 배경인데 이걸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배우들끼리도 각자의 상상을 자주 나눴다. ‘정말 200일이 남았다면 어떨 것 같아?’ ‘도망가고 싶을 것 같은데.’ 결국 모인 의견은 웅천 시민들처럼 도피하는 대신 일상을 살아갈 것 같다는 거였다. 세부적으로는 연인인 윤상(유아인)의 부재나 폭동 사건이 세경에게 어떻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지를 상상해봤다. 시나리오만 읽었을 때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곧바로 와닿는 장면도 있었다. 가령 폭동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하는 신은 현장을 맞닥뜨리자마자 확 몰입이 됐다.



- 자신과 애인보다 아이들을 우선시하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 세경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폭동 때 아이들을 잃은 후로 세경에겐 그런 선택이 당연해졌다. 가령 생존자인 하율이가 위험에 처하면 이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연스레 몸이 먼저 움직인다. 말하자면 ‘아이들을 지킨다는 것’ 외엔 남은 목표가 없는 거다. 그게 세경이 대단한 인물이어서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놓이면 모두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9화에서 세경이 윤상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신을 연기하는 순간이 좋았다. 그 대화에 세경의 마음이 전부 담겨 있다.



- 아이들을 대할 때와 어른들을 대할 때 다르게 접근한 부분도 있나.
= 특별히 그렇진 않았다. 세경이 워낙 친구 같은 선생님이었고 또 동네에서 오래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세경에게는 다 똑같고 편안한 사람들이다. 다만 아역배우들과 함께 촬영할 때는 선생님의 입장으로 계속 케어해주다보니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발동하더라. 그리고 정말 쑥쑥 자란다는 걸 느꼈다. 촬영 시작할 때는 강훈이 키가 나보다 작았는데 지금은 나보다 크다. (웃음) 게다가 공연계 선배님들이 많이 계셔서 현장에서 의지가 됐다. 다 같이 식사하고 추도를 하는 등 단체 신이 많아 촬영을 거듭하며 사이가 돈독해졌다.



- 종말을 앞뒀음에도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시민들의 삶을 보면서 이 작품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6화와 12화를 가장 좋아한다. 5화까진 극의 배경이 소개되며 세경의 선택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려진다면, 6화부터는 시민들 한명 한명을 조명하며 성당에서의 일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려진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성당을 복원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또 살아갈 힘이 되고 한편으론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엔딩 시퀀스는 세경의 바람이자 모두의 염원이 잘 구현된 장면이라 좋아한다. 사람들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는 데에서 오는 울림이 큰 작품이다.



- <연인>의 길채, <종말의 바보>의 세경 모두 위기를 다부지게 견뎌나가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가 본인에게 자주 주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 길채, 세경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힘듦을 극복할 힘이 있다고 느낀다. 그게 이런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는 캐릭터는 배우라면 다 반길 거고 나 역시 그렇다. 이런 역경을 딛고 힘을 발휘하는, 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개인적으로 재밌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역경 속에서도 자신이 택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를 계속 만나고 싶다.



- <종말의 바보>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 사실 이 작품은 촬영하면서 개인으로서도 바닥에 닿았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한편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내가 이 상황이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려운 작업이었다.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한 뒤로 무대에서의 연기,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에 대한 고민이 컸다. 무대에서는 제스처가 중요하고, 드라마는 감정을 타이트하게 잡기 때문에 미세하고 정확한 전달이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종말의 바보>는 그 중간 지대에서 연기를 펼쳐야 했다. 그간 공연과 드라마에서의 연기를 별개로 봤는데 이번 작품을 기점으로 결국 연기의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더불어 김진민 감독님이 강조한 “발끝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말씀이 <종말의 바보> 촬영 때에도, 다음 작품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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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속 삼총사는 교사, 군인 등 하나같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모범적인 태도를 요구받는 직업에 종사한다. 그중 전성우가 연기하는 성재는 직업이 무려 신부다. 천주교 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 시민이 성당에 다니는 웅천시의 보좌신부 성재는 주임신부(강석우)가 실종되자 졸지에 성당을 지키며 지구 종말을 마주한 신자들의 마음을 보살핀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성재조차 거듭 비극이 닥치자 평생 믿어온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품는다. 어느 날 성재는 성서 구절을 인용해 신에게 고백한다.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



- <종말의 바보>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 김여진 배우와 함께한 연극 <마우스피스> 직후 선배의 남편인 김진민 감독님을 뵙게 됐다. 이후 연이 닿아 작품까지 찍었다. 종말이라는 키워드로 만든 우리나라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성재는 특히 뒷머리를 길게 기른 장발의 신부다. 천주교 신부에게 흔히 보이는 스타일은 아닌데.
= 감독님이 촬영 전 머리를 길러본 적 있냐는 질문을 건넸다. 어릴 때 장발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매체에 장발로 등장하긴 처음이었다. 조사해보니 신부들에게 따로 두발 규제가 없었다. 드라마는 픽션이니 극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그리고 종말이라는 극한상황에 어울릴 만한 모습을 보이려면 배우인 나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남자들에겐 소위 말하는 머리발이 있지 않나. (웃음) 비주얼에 확연한 변화를 주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다만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잦은 변화를 줄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도 있고 장면의 연결을 생각하면 스타일의 한계도 있었다. 작품을 통해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어 새로웠다.



- 웅천시의 공동체가 결집하는 데 성당이 매우 중요한 장소로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성재가 추모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을 포함해 작품 속 성당에 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베어 더 뮤지컬>의 가톨릭계 고등학교 재학생 제이슨이나 <열혈사제>의 한성규 신부를 연기한 경험이 도움을 줬나.
= 신부라는 직업이 특정한 틀이 있어 보이지만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작품 준비 과정에서 몇 차례 실제 신부님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 무얼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신부 같은 느낌을 구현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오히려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사제란 직업의 고착된 이미지를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부에게 금기시되는 행동만 범하지 않는다면 사제도 똑같은 사람이다.



- 웅천시 마을 사람들 전체가 성당에 상당히 의존한다. 이 공간에 관해 어떤 해석을 내렸는지.
= 성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과 경건함 때문에라도 종말이 오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종교에 의존했을 것이다. 내 집이 있어도 종말이 다가오는 상황에 집의 의미가 전과 같았겠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배역을 준비하며 ‘신부가 된다는 건 어른이 되는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곧 성당의 존재 이유와 같지 않을까. 성재는 책임감과 신념으로 신자들을 지키고 보살피며 어른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 종말이 예정되자 중학생들조차 시한부 인생을 달관하고 자조하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성재만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긍정하고 낙관한다.
= 성재도 신부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살면서 끝을 정하고 살진 않지 않나. 처음엔 끝이 정해진 상황에서 여생을 보낸다면 아무리 신부라도 불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성당의 교리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고 한다. 죽음의 다음 차원을 믿는 성재는 상대적으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덜할 것 같았다. 성재가 불안하다고 해서 미래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모처럼 마을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베풀 때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고해소 안에서 신자들의 고해를 들을 땐 냉정하게 자신을 다잡지만 고해소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분노하는 모습도 보인다.
= 사제로서의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외줄을 타듯, 두 모습의 경계에서 내가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사람의 고해에 100% 공감하며 함께 감정을 호소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신의 뜻을 해답처럼 전하는 게 옳은 표현일지 끝까지 고민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다. 실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들으면 감정적으로 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 CG가 들어갈 부분을 상상하며 연기하는 경험은 어땠나.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관해 상상을 요하는 무대 연기 경험이 도움을 줬는지.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무대는 매체처럼 공간을 컷 개념으로 이동하기엔 제한이 많다. 이를 표현하는 배우가 확신이 없을 때엔 무대를 함께 보는 관객도 눈앞에 무언가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 내 상상 속 실체와 실제 CG가 다를 수 있지만 확신을 가진 채 무언가를 바라보려 애썼다.



- <종말의 바보>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 <종말의 바보> 속 수많은 인간 군상은 끝을 보고 살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인생의 종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 곱씹었다. 그럴수록 현재 내가 사는 삶의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최근 <네이처 오브 포겟팅>이라는 움직임극에서 연기한 톰도 시작은 명확했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결말을 맞는다. 그 배역을 연기하며 끝을 짐작한다 해도 지금 내가 사는 삶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종말이 닥치든 그렇지 않든 현재 자신이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건네며 작품을 감상하면 훨씬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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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공개를 누구보다 기다렸을 것이다. 배우 김윤혜가 <종말의 바보>에서 맡은 전투근무지원 대대 중대장 ‘강인아’는 그만큼 근사하다. 투블록커트의 카리스마는 일부일 뿐, 지구 종말을 200일 앞둔 상황에서 시민과 동료와 친구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인아의 직업윤리는 그를 더욱 품위 있게 한다. 인아의 얼굴이 어둠과 햇빛에 가려져도 김윤혜의 크고 진한 눈은 살아남아 디스토피아를 비추는 횃불이자 손전등이 된다. 2002년에 데뷔해 <점쟁이들> <빈센조> 등에 출연해온 김윤혜는 주연작 <씬>과 <종말의 바보>를 선보이고 차기작 2편까지 촬영 중인 올해를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 작품 공개일이 가까워질수록 “또래 배우들과의 즐거운 작업, 김진민 감독님만의 편안한 작업 방식” 하나하나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전했다.



- 강인아는 김윤혜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본 적 없는 도전적인 캐릭터다.
= 이야기가 재밌을 때 캐릭터도 입체적이고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종말의 바보>가 딱 그랬다. 오디션 때문에 대본을 짧게 읽었을 때부터 대사 하나하나가 절절히 아리고 극한상황에 내몰린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잘돼 간절하게 붙고 싶었다. 대본에서도 인아는 우직하고 책임감이 강한, 분명 멋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건 항상 감정을 누르고 어깨에 짐을 이고 사는 사람의 힘듦이었다. 그런 인물의 복합적인 면을 배우로서 잘 살려보고 싶었다.



- 군인, 친구, 딸일 때 인아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무게가 각기 달랐던 게 이해가 간다.
= 친구들과 있을 땐 좀 풀어지더라도 인아와 세경(안은진)이 단둘이 붙는 신에서만큼은 인아가 세경을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게 느껴지게끔 연기했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지키고자 위험한 일에 뛰어들려는 세경과 그를 막으려는 인아의 감정 신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안)은진 배우의 감정이 풍부해서 나도 더 진심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모녀 관계에 있어서 인아의 마음은 더 복잡하다. 오빠만 위하던 엄마에게 상처도 있지만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큰데 인아는 그걸 다 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차가운 톤을 가져가려고 했다.



- 군인 역할이라고 해서 마초적인 면을 부각하기보단 규율을 중시하는 직업적 특성을 담백하게 체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 뭔가를 많이 하려다 보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라 최대한 덜어내고자 했다. 인아의 강단 있는 면모가 직접적으로 드러났으면 싶어 머리만 바짝 잘랐다. 일부로 굵은 목소리를 내거나 딱딱한 말투를 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직업군인인 형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중대장다운 행동이란 무엇이고 총은 어떻게 다루는지 세세하게 물어보면서 디테일을 만들어나갔다. 특히 신경 쓴 건 경례였다. 자주 나오는 경례하는 모습에서 익숙함이 느껴지지 않으면 시청자가 인아를 어색해할 것 같았다. 경례를 경례처럼 보이게끔 하는 각도가 있다고 형부가 팁을 주어 그 각을 배웠고 ‘오늘은 내가 경례 100번 채우겠다’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사소한 부분이긴 하나 윗사람과 아랫사람에게 하는 경례 방식에 차이를 두지 않는 것으로 인아의 공명정대한 성격을 보여주고 싶었다.



- 인아가 친구들과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마지막 순간에도 이러고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을 찍으면서 종말을 앞둔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해보기도 했는지.
= 내 끝은 처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디데이가 얼마 안 남은 걸 확인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무너져내렸다가 괜찮았다가를 반복하며 힘들었을 텐데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와인 신에서처럼 편안했으면 싶다. 촬영하면서 종말을 앞둔 200일 동안 나는 뭘 할 수 있을지를 수시로 고민했다. 아마 인아처럼 혼란 속에서도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고 그들이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을 것 같다.



- 오늘 이야길 듣다 보니 인아는 김윤혜 배우를 닮은 캐릭터였던 것 같다.
=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는 점도 그렇고 여러모로 나랑 비슷한 부분이 꽤 많다고 느끼면서 촬영했다. 평상시엔 늘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좋은 일에 들뜨지 않고 나쁜 일이 생겨도 거기에 빠져들지 않는 게 습관이 돼 이젠 마인드 컨트롤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



- 그 덕분에 20년 넘게 한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물론 일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엔 어렸고, 모든 게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 와 돌아보면 무탈하게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지나온 시간을 괴롭고 고생스러운 시간으로 기억하고 싶진 않다. 과거는 ‘맞아, 그 작품 찍을 때 나 참 좋았어, 괜찮았어’ 정도로 한편에 잘 정리해두고 현재에 충실하려고 한다. 그럴 힘을 <종말의 바보>를 찍으면서 얻기도 했다. 감독님이 “너 자신을 믿고 가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의지가 돼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는 적극성이 생겼다.



- 차기작인 시리즈 2편 <정년이>와 <인사하는 사이>를 동시에 찍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 <정년이>는 체감상 70% 정도 찍은 것 같다. 1950년 ‘매란국극단’의 최고 여역 배우이자 야망 있는 여성 서혜랑 역을 맡았다. 그간 한국무용과 소리를 기본기부터 익히는 일에 정성을 쏟았고 다 같이 국극 장면을 만들어나가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인사하는 사이>는 막 시작해 10%도 안된 것 같다. 동화작가이자 7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 ‘수현’은 씩씩하고 엉뚱한 친구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밝은 에너지를 받아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앞으로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액션이 주가 되는 작품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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