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
교회의 종이 울렸다.
마치, 잠시 멈추라는 듯이.
눈에 들어온 색색으로 반짝이는 첨탑.
그 풍경이 익숙했다.
분명 본 적이 있는 풍경.
너와 함께, 보았던 그 풍경이다.
자물쇠 뭉치 사이에,
낮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자물쇠가 보였다.
너와 나의 이름을 새긴. 그 자물쇠.
그 날의 우리가, 여전히 이 다리 위에 있었다.
그 날의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이 곳에 매달려 있었다.
조금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는 듯.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일분 일초가 아까웠다.
빨리, 더 빨리, 너에게로 가야 한다.
이 손에 가득히 든 파란 클로버들의 행운과 함께,
너를 웃게 해 줄 이 작은 기적을 빨리.
홍해인, 너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해인]
해인은 손에 들린 케밥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따끈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걸 어떻게 쟁취했는지, 현우에게 자랑하면
현우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 그 얼굴을 가득 채우는 미소를 볼 수 있겠지.
휴대폰을 켜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걸 끄자, 가족들로부터 산처럼 쌓인 메시지들이 계속 울려댄다.
알게 뭐람.
액정을 끄고 앞을 바라보자, 달려오는 그가 보인다.
내게로 달려오는 그가.
-현우씨! 여기
해맑은 미소를 띈 그가, 계단을 뛰어내려온다.
-뭐야, 뭘 들고 있는 거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잠시 빨간 불로 막힌다.
하지만, 그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이어져 있는 이 순간이 좋다.
그 때, 또다시 메시지가 왔다.
엄마였다.
-하…
한숨과 함께 엄마가 보낸 파일을 열어본다.
그대로, 표정이, 그리고, 마음이
차갑게 굳어간다.
몸은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마음 속에서 격랑이 친다.
[현우]
파란 불과 함께,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손에 파란 행운을 가득히 쥐어주며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해인아, 그거 있어. 내가 오다 봤는데
그녀의 손이 매섭게 나의 손을 뿌리친다.
너를 위해 사 온 행운이, 바닥으로 초라하게 흩뿌려진다.
아.
너의 휴대폰 안의 화면을 채운, 이혼합의서.
알아버리고…말았구나.
-아니라고 말해. 아니라고 해. 모르는 거라고 해.
-해인아.
-…말하라고! 아니라고. 넌 모르는 거라고.
너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분노가 일렁인다.
하지만, 그 일렁이는 분노의 아래에
상처입은 진심이, 그 슬픔이 덜덜 떨고 있다.
내가 어리석었다.
멍청하고, 바보같았다. 구제불능이었다.
나의 어리석음이 나만을 상처입혔더라면 좋았을텐데.
내가 좀 더 비겁해서,
너의 상처를 피하려, 지금 이 순간 거짓말을 할 수 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니..내가 쓴거야 .
하지만 해인아.
나는 이제 너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할 수 없어.
너의 그 올곧은 눈동자에, 너의 진심 앞에서.
너에게 상처를 줄 걸 알면서,
그럼에도 나는, ‘우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 너에게, 얘기할 수 밖에 없다.
진실을.
-…먼저 얘기 못해서 미안해.
[해인]
그의 말이, 내 마음 속에 무겁게 가라앉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클로버들을 본다.
젖은 바닥에, 초라하게 내던져진 그 모습이,
마치 당신으로 인해 산산히 조각난, 내 마음 같아서.
당신의 눈과 나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우리의 사이에 침묵이 차오른다.
이것이 나의 나쁜 병이 보여주는 끔찍한 환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럽게도 올곧은 성정의 당신은,
왜 이 순간에도 거짓말로 나를 달래주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웃기게도, 그런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상처입는 이 순간에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