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한표도 얻지 못하면 합법적 왕따가 된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25명의 백연여고 2학년5반 아이들은 왜, 무엇을 위해 이 폭력적인 게임에 순응하는 것일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달꼬냑 작가의 웹툰을 영상화한 작품으로 신예 최수이 작가가 각본을 쓰고 <성스러운 아이돌>의 박소연 감독이 연출한 학원 스릴러물이다. 전학생 성수지(김지연)는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A부터 F등급까지 아이들의 서열이 매겨지고, 표수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의 위치가 매번 뒤바뀌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임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지가 택한 방법은 만년 F등급 명자은(류다인)의 손을 잡는 것. 반란을 위한 이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건의 키를 쥔 배우 김지연, 류다인과 나눈 대화를 전한다. <피라미드 게임>은 총 10화 중 4화가 2월29일 첫 공개되며 이후 매주 목요일 2편씩 공개된다.
배우 김지연의 시작을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의 고유림으로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그는 2016년 우주소녀의 보나로 데뷔한 바로 그다음해에 드라마 <최고의 한방>으로 배우 신고식을 치렀다. <오! 삼광빌라> <조선변호사> 등 넘치는 승부욕과 성실함으로 자기 자신과 싸워가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고 연약해 보여도 대단히 심지가 굳은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이윽고 배우 데뷔 8년차에 드디어 작품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까지 쟁취해냈다.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에서 김지연은 백연여고 2학년5반에 전학 온 고2 성수지 역을 맡았다. 반에서 수지는 투표로 왕따를 뽑는 ‘피라미드 게임’에서 최하위 F등급을 받아 폭력에 시달린다. 왕따 탈출뿐만 아니라 게임의 주동자를 찾아내 이 기괴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피라미드 게임>의 성수지는 단순한 복수의 화신도 영웅도 아니다. 성수지의 복잡다단한 면모는 앞으로 이 반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성수지라는 쉽지 않은 캐릭터에 피와 살을 돌게 한 배우 김지연에게 직접 물었다.
-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후 오랜만에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돌아왔다. 다시 교복을 입게 한 <피라미드 게임>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신선함이 컸고 몰입도가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변호사>란 사극을 찍던 때에 대본을 처음 받았는데, 새벽에 지방 촬영 끝나고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4부까지 내리 다 읽을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똑똑하고 주체적이라는 게 좋았다. 여자주인공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왕자님이 데리러 오지 않고, 결국 혼자 끝까지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선뜻 하겠다는 얘기는 안 나왔다. ‘수지라는 캐릭터에 내가 과연 잘 어울릴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소연 감독님과 최수이 작가님이 “수지로 염두에 둔 배우가 지연씨 말고는 없었어요”라며 지지해주셨다. 그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 크레딧에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는 큰 역할에 동급생 역할인 동료 배우들이 대부분 신인인지라 부담도 컸을 것 같다.
= 이렇게까지 비중 있는 역할도, 현장에서 ‘언니’인 적도 처음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자신에게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촬영 초반에는 폐만 끼치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감독님이 “지연씨가 여러모로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얘길 듣고 나서야 이번 현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잘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동료 배우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모두를 끌어나갈 방법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 피라미드 게임이란 설정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진입장벽이긴 했다. 그래서 감독님과 제일 먼저 의논했던 부분도 설정에 관한 것이었다. 시청자가 피라미드 게임을 납득하도록 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설정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피라미드 게임>은 도대체 이 게임을 다들 왜 하는지 궁금해하는 수지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그가 느끼는 혼란한 감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수지가 속으로 하는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내레이션이 이 시리즈의 형식이다. 내레이션이 낯선 이야기에 진입한 시청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다가 분량도 상당해 힘들었겠다.
= 그렇다. 초반에 진짜 어려웠다. 예컨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의 내레이션을 할 때 실제 맞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면서 해야 할지 아니면 어디까지나 마음의 소리이니 평온한 톤으로 가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별수 있나. 잘 모르겠더라도 계속 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익숙해질수록 감이 생겼다. 밝을 필요가 없는 역할이니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고 본래의 낮은 톤을 살렸다. 이야기의 무게를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힘 있게 말하려고 했다.
- 생활기록부상에 따르면 수지는 ‘상호의존성이 매우 낮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소녀다. 김지연 배우는 수지를 어떻게 해석했나.
= 착할 때도 나쁠 때도 있고, 정의로운 동시에 이기적이기도 한 친구. 다시 말해 수지는 단편적이지 않고 사람의 다양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봤다. 그래서 어느 한면만 부각하는 일이 없도록 톤 조절에 신경 썼고 감정도 되도록 덜어내고자 했다. 외로움에서 비롯한 자립심이 강한 인물이라고도 생각했다.
- 수지가 어디까지 올라가서 자기 계획을 실행할지를 지켜보는 게 이 시리즈의 묘미가 될 것 같다.
= 그렇다. 아직 작품 공개 전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두뇌 싸움이 벌어질 거다. 수지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전체가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으면서 각종 관계가 생겨나는데 그걸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비록 나는 그 관계성을 다 파악하느라 머리가 아팠지만 말이다. (웃음)
- 지난 2월25일이 연예계 데뷔 8주년이었더라. 가수로, 배우로 활동하며 보냈던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어떤가. 앞으로의 자신에 대한 어떠한 기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 진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앞만 보면서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야 그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이나마 생긴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일할 때와 안 할 때를 구별 짓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배우로서는 이제껏 해보지 않은 재난영화 같은 장르물이나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말과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앞을 계획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미래의 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즐겁게 하고 있을 것 같다.
상처투성이의 얼굴과 손, 교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채 맨 뒷자리에 엎드려 있는 아이. 전학생 수지(김지연)는 그런 자은을 보자마자 ‘일진’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자은의 상처는 백연여고 2학년5반에서 치러지는 ‘피라미드 게임’에서 득표하지 못해 왕따가 된 후 하린(장다아)의 꾸준한 괴롭힘까지 더해져 생겨난 것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수진은 자은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자은 역시 수진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배우 류다인의 명자은에겐 <피라미드 게임>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이 쏟아졌다. “자은을 너무 사랑한” 신인배우 류다인은 <18 어게인>의 황영선과 <일타 스캔들>의 장단지를 넘어 명자은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 원작 웹툰의 팬이었다고.
= 달꼬냑 작가님의 그림체를 원래 좋아했고 무엇보다 게임과 학교폭력을 연결지은 스토리 자체가 신박하게 느껴졌다. 결제해가며 볼 정도로 재밌게 봤는데, 어느 날 이 작품이 드라마화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혼자 상상해봤다. 내가 만약 여기에 출연한다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명자은이 마음에 들어왔다.
- 원작을 읽었으니 시나리오에서 각색된 점도 더 눈에 들어왔겠다.
= 초반 내용은 웹툰과 유사한데 갈수록 새로운 사건, 사고가 추가된다. 반 친구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는 게 납득도 되고 흥미로웠다. 후반부 대본 언제 나오냐고, 어떻게 되는지 너무 궁금하다고 제일 많이 재촉한 사람이 아마 나일 거다. (웃음)
- 명자은의 어떤 점에 마음이 갔나.
= 솔직히 처음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이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볼수록 자은이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게임에서 한표도 받지 못해 F등급이자 왕따로 낙인 찍힌 인물이지 않나. 타의에 의해 그런 상황에 놓인 것 같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그저 자기 마음 편한 길을 택한 거다. 내가 이 상황을 거부하면 결국 다른 친구가 타깃이 되기 때문에 그 상황을 지켜보느니 그냥 자기가 다치고 말겠다고 결정해버린 거다. 그런 방식으로 수지가 전학 오기 전까진 유일하게 피라미드 게임에 저항해온 사람이다. 내 해석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자은이가 안쓰럽다고들 말할 때 ‘정말 그런가?’ 하고 스스로 반문했다. 내겐 너무 단단하고 올곧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었거든. (웃음) 그래서 자은이가 마냥 착하고 불쌍하게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공개된 4화까지는 이런 속사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은이가 표정 변화도 적고 말도 없어 배우로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맞다. 워낙 차분하고 말이 없어 내가 어떻게 연기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처음엔 이 캐릭터로 10화까지 가는 게 걱정이 됐는데 내가 해내기만 한다면 배우로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감정 표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대신 메마르고 버석한 눈빛에 사연을 담는 데에 집중했다.
- 자은은 수지랑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외형에도 변화가 생긴다. 배우가 의견을 낸 부분이 많았다던데.
= 초반에는 일부러 손톱 정리를 잘 하지 않고 직접 물어뜯기도 했다. 자은이의 감정 상태를 고려하면 그런 흐트러진 모습이 더 맞는 것 같았다.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고 톤다운하거나 다크서클을 강조하는 정도로만 하고, 얼굴이 더 푸석해 보이도록 했다. 자은이에게서 컬러를 다 빼버리고 싶었다. 항상 걸치는 후드 집업도 블랙 컬러인데 이게 그레이 컬러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자은이의 감정 변화가 반영된 것인데, 그 순간을 잘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 앞서 화보 촬영을 진행했을 때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14살 때부터 6년간 모델로 일했다고. 어릴 때 꿈은 모델이었나.
= 그건 아니다. 원래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10cm가 컸다. 그러면서 자세가 구부정해지니까 보다 못한 엄마가 자세 교정 좀 하라고 모델 학원에 보내셨다. 그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잘할 수 있었고, 매 순간이 즐거웠다.
- 모델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오다 갑작스레 배우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 적어도 내겐 갑작스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꿈이 배우였기 때문이다. 장래희망을 써서 내라고 하면 항상 ‘탤런트’를 적었다.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갈 무렵 광고도 찍고 런웨이에도 서고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계속 허전했다. ‘내가 서고 싶은 무대는, 내가 바라보고 싶은 카메라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모델과 배우를 병행해선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서 과감하게 모델 일을 포기했다. 그렇게 21살 때 <18 어게인>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데뷔했다. 막상 해보니 모델 일과 비슷한 점도 많더라. 카메라 앞에선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뒤에서는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피라미드 게임>의 촬영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제작발표회 날, 시사회에 참석해 작품을 보는데 정말 모든 걸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을 위해 연기하는 거구나 싶었다.
- <18 어게인> <일타 스캔들> <피라미드 게임>에 연달아 학생 신분으로 출연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많을 텐데.
= 보면서 공감하고 슬퍼할 수 있는, 휴머니즘 가득한 로맨스물에 출연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꼭 진한 누아르를 해보고 싶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복싱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춤도 배우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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