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야기꾼 석정의 입을 통해
여화의 뜻을 이어받은 수호의 금위대를 통해
복면의 존재가 온 나라에 알려짐으로써
여화의 꽃은 비밀스러운 혼자만의 꽃이 아닌 모두의 꽃이 됐어
모두의 꽃이라 함은
모두가 존재를 알고 인정하는 꽃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품고 키워낼 수 있는 꽃이기도 해
여화가 피워낸 밤에 피는 꽃은
시대상에 반하는 모습으로 활약하는 여성의 존재로서
더이상 쉬쉬하며 묻히지 않고 도성의 많은 여인들에게 알려진 거야
여인도 결혼을 위한 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나라를 위해 정의를 위해 살아갈 꽃이라는
새로운 여성상을 알려준 거지
여화의 복면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진 않았겠지만
그 힘은 도성을 돌고 돌아 여성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궈냈어
금위대장 딸 이경이는 결혼을 해야 완성된다는 조선시대 여성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해야 완성되는 제 삶의 가치를 위해 자유연애로 제 짝을 찾아
혼기와 상관없이 직접 그 시기를 정하겠다 선언하고
여화의 단짝 연선이는 여인, 평민의 신분에서 벗어나
재능을 살려 상단에서 일을 하고 제 집을 구하기 시작했고
신분의 벽으로 밀어내던 좌부승지의 마음을 받아들여 미래를 약속했지
그리고 연선이라는 꽃도 이경이라는 꽃도 아마 먼 훗날에는 새로운 이야기로 새로운 꽃으로 알려지고 여인들에게 전달될 거야
결국 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여성은 꽃이다 라는 관념 자체가 잘못됐던 것은 아니라
그 말을 해석하는 이들의 짧은 식견이 잘못됐던 거지
여성은 꽃이고 남성도 꽃이야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고 이 나라는 그 꽃과 나무가 이뤄낸 숲이야
그리고 하나하나의 꽃은 혼자 피어날 수는 있지만
숲을 이뤄내기 위해선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해
즉 우리 모두 꽃을 피울 수 있는 뿌리를 갖고 있어
꽃은 아름다운 관상용 뿐만 아니라
여화의 복면같은 약초로도
호판부인의 독꽃과 같은 독초로도
쓰일 수 있고
열매를 통해 자손을 꾸려낼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이라는 꽃으로 숲과 같은 이 나라에 다채로움을 선물하기도 해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이야기를 좋아하는 석정이란 꽃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셈을 잘하는 연선이란 꽃
여인으로 태어났지만 장사치로서 협상에 능한 단주 소운이란 꽃
이들이 있기에 이 나라가 더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지
이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좌상은
여성에겐 곱고 단정한 역할
아들에겐 늠름한 나랏일이란 역할만 요구하다가
지위도 가족도 잃고 초라한 신세가 된 것이고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호판부인은
호의호식, 부귀영화라는 가치에만 얽매여 독초를 피워내어 많은 이를 해하고
여성의 곱고 단정한 꽃에만 얽매여 제 자신과 양반가의 많은 여성의 자유를 앗아버렸어
그리고 그 삶의 마지막에야 내 삶의 방향성을 잘못 정한 것은 바로 나였다며 여화에게 아쉬움과 후회를 내비치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할지 모르겠다만
이 포괄적인 주제를 하나하나 생생한 캐릭터들로 그려내고
밤에 피는 꽃이라는 제목 다섯글자로 요약해낸 제작자들의 역량이 너무 대단하다…
진짜 재미도 의미도 가득한 드라마였던 것 같아
한동안 계속 앓을 듯 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