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화는 꽃을 피우기 전 쓰임새가 다 해 햇볕도 들지 않는 방에 방치된 난이야
난은 한 방향에서 꾸준히 들어오는 채광이 있어야만 곧고 힘차게 자라나고 꽃도 피우지
그런데 여화는 들여오자마자 그늘진 방구석에 방치돼서
세상의 파편같이 아주 작은 햇볕을 쫓아 자라느라
줄기가 구부정하고 들쭉날쭉한 모양이야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스스로 길을 찾아나섰기에
늘 푸르른 창포잎을 닮은 검으로 약자를 살리고 스스로를 살리는 복면활동을 하게 됐고
제 가치를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지
극초반에 부인들 앞에서 여화가 씩씩하게 붓으로 잎을 그려댈 때 다른 부인들은 못 생겼다고 실패작이라고 비웃지만
그건 바로 삶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온 여화의 흔적이자 자화상인거지
그래서인지 10화 속 여화는
석정이 돌아오고 알록달록한 부녀자 한복을 다시 입으면서
외적 아름다움은 회복했지만 매우 어색하고 불편해보였지
여화의 삶은 난 끝에 달린 꽃이 아니라 빛을 쫓는 줄기 그 자체였으니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 들 수 밖에
꽃잎의 가치를 아름다움이 아닌 한철 반짝였다 사라지는 죽음으로 강조하는데
이건 또 호판부인의 삶으로 이어짐
호판부인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 후에도 정갈한 모양새로 유명한 난임
살아있는 내훈이라는 호칭만으로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만하지
그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필요로 하는 꽃이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뿌리가 묶이고 잔가지나 이파리는 잘려왔을 것이며 그것이 당연한 순리라 여기고 살아왔을 것임
제 뿌리에서 난 잡초 강필직은 단주가 되어 줄기로서 살아갈 수 있단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지
예쁜 꽃이 돼야한다는 순리가 당연치 않았다는 사실에 신물을 느끼고 후회하는 그 심정은
좌상과 이를 갈면서 독대하는 장면에 다 담겼다고 생각함
그 역할을 하고도 고작 호판부인이라니 셈이 맞지 않는다
선왕 시해를 위해 스스로 독을 품은 꽃을 피워 비싼 값에 거래되길 자처했으나
이제서야 돌아보니 내 삶의 가치는 꽃이 아니라
꽃이라는 장식을 피웠다 떨군 뿌리과 줄깃잎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진작 깨닫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그 과거가 너무 부당하다는 것
이 모든 분노를 축약하는 대사 한 줄
셈이 맞지 않는다…
결국 드라마의 총체적 주제로 돌아가서 얘기해보자면
옛말에 아름다운 여성은 한떨기 꽃잎 같다고 비유하잖아
결국 이 말에는
똑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여성들이
혼인을 위해 억지로 피운 꽃으로만 가치를 평가받고
열매를 맺은 뒤엔 져버린 생명 취급받던
그 시대상의 모순이 담겨있단 말이지
그리고 울드는
꽃보다 줄기로 살아가길 택한 여화
꽃으로 살다가 썩어버린 난경 (호판부인)
과부가 되어 꽃을 떨구고 용덕과 다시 햇볕을 쫓아가는 새순 백씨부인 등등
다양한 난의 형상을 통해 그 시대에는 못 이뤘지만 지금은 추구할 수 있는 지향점을 보여주는 듯
우리 여화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