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사람들이 KBS2의 50주년 특별기획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연출 전우성, 극본 이정우)을, 그리 좋아하고 아꼈던 이유는 명확하다. 사료 부족으로 조사 자체가 어려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우리나라 역사의 자랑스러운 한 귀퉁이가 정성스러운 만듦새를 가지고 탄생했으니까. 퓨전사극들 사이로 연명해 오던 사극이 아주 오랜만에 정통사극으로, 그것도 정통사극의 명가 KBS2TV에서 나왔으니 반갑기도 했을 터.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최수종의 귀환까지, ‘고려 거란 전쟁’(이하 ‘고거전’)은 탄탄한 고증을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스토리, 탁월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 등, 방영 초기부터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고, 결국 드라마가 시작된 지 두 달여만에 주연 배우를 연기대상의 주요 자리에 올려놓는 쾌거를 올렸다. 이는 드라마가 단순히 이야기적인 재미가 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결과는 절대 아니다. 특히 정통사극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드라마는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작가의 시선과 매만짐이 개입되는 허구의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끌고 들어와, 진지하게 다루겠다고 했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시선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졌는지, ‘왜곡’(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되는데, 실존했던 인물의 삶에 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 공통의 정체성이기도 하여, 사극은 그저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는 즐거움 외에, 현재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기반을 이루는 역사 속 위인들이 살아 움직이며, 올바른 가치관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당시의 세계와 맞붙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즐거움 또한 제공해야 한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것과 또 다른 성격으로, 드라마는 장르의 특성상 보는 이들과 등장인물 사이에 강한 몰입의 관계가 형성되는 까닭이다.
다큐멘터리가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야를 갖출 거리에서 직관하는 것이라면 드라마는 코 앞까지, 내부에까지 진입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마저 생성되도록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사극이라면 더더욱 제대로 된 사관에 근거해서 만들고 있다는 신뢰도를 먼저 형성해야 한다. 안심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고거전’이 얻었던 인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고거전’의 원작이 되는, 소설 ‘고려거란전기’(현 ‘고려거란전쟁:고려의 영웅들’)는 길승수 작가가 기껏해야 10쪽 남아 있는 사료를 기반으로 고려사부터 거란, 송나라의 것까지 공부하여, 거대했던 역사의 한 장면을 정성스레 복원시킨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고 하니 ‘고려 거란 전쟁’이 지닌 사극으로서의 역사의식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몰입을 위한 초석이 아주 깔끔하게 깔렸다 하겠다.
드라마로서의 만듦새도 좋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단출한 몇 줄의 글로만 접하던 역사와 역사 속 인물들, 현종과 강감찬을 중심으로 한 당대의 여러 영웅을 생생하게 구현된 형태로 맞닥뜨릴 수 있었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강하고 아름다운 우리 역사의 한 단면에 자부심 또한,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작품이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된다는 점은, 한국 드라마 역시 잘 만든다는 감탄과 함께 중국의 동북공정(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중국의 국가적 연구 사업)이 얼마나 잘못된 사고방식인지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될 터였다.
그러나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며, 최수종의 수상과 함께 너무 일찍 축포를 터뜨린 탓일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가장 토대가 되는 신뢰도에 관해서이니 치명적이라 할 수있겠다. 좀 더 흥미롭게 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기존 서사에 있어 불필요한 갈등 관계의 투입으로, 주요 인물 몇몇의 애써 쌓은 공든 탑, 개연성을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그것도 올바른 역사관에 반(反)하는 방향으로. 그간 ‘고거전’에 애정을 쏟아오던 이들로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원작자이나 현 작품에 크게 개입하고 있지 않은 길승수 작가의 블로그에 가서 성토했을까. 그런데 제작진은 이러한 속내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단순히 원작자와의 갈등으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즉, 원작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따르지 않아서 생긴 소동이라고만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도 원작과 각색된 영상물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현 상황의 쟁점은 ‘정통사극’이란 간판을 달고서 왜 역사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듯한 장면을 만들었냐는 데 있다.
방대한 자료들을 연구했고 연구해 온 시간을 오래 가졌다고 해서 원작이 실제 역사에 한층 더 가깝다고 자신할 순 없다. 때로는, 허구여도 사람들의 삶으로 접근한 역사가 실재적인 모양새와 더 흡사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전제가 필요하다. 올바른 역사적 감수성을 가지고 해당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주하겠다는 책임감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 열렬히 고민하겠다는 다짐. 그렇다면 왜곡의 늪에 빠지지 않으리라. 현재 논란의 중심에 놓인 ‘고거전’의 제작진이 정작, 주목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윤지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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