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를 이루는 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 신연식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첫 드라마 <삼식이 삼촌>은 그 원형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전쟁 중에도 주변 사람은 ‘하루 세끼’를 먹게 한 ‘삼식이’ 삼촌, 박두칠(송강호)과 열정적인 청년 김산(변요한)이 만나면서 믿음과 의심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거미집>의 원안과 제작, <1승>의 각본·연출에 이어 <삼식이 삼촌>까지 신연식 감독은 최근 송강호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관통하고 있다. <삼식이 삼촌>의 디즈니+ 편성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린 날 신연식 감독을 만났다.
- <삼식이 삼촌>은 신연식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첫 드라마다. 어떻게 성사된 프로젝트인가.
=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직후였다. 그때 송강호 선배님을 처음 만났다. 내가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봉준호 감독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당장 만나자고 하셨다. 시나리오를 훑어보며 몇년 동안 본 것 중에 제일 좋다며 캐스팅과 투자사 이야기도 술술 하셨다. 밤늦게까지 선배님과 단둘이 술을 마시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눴다.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선배님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삼식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했다. <삼식이 삼촌>에서 박두칠과 김산이 빵집에서 처음 만나는 신이 있는데 나와 선배님의 첫 만남 때 받은 느낌을 투영했다. 어떤 이야기인가가 형식과 포맷을 결정한다. 애초에 <삼식이 삼촌>은 2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시대물이라 제작비도 높다. 드라마가 된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 그럼 김산 캐릭터에 당신을 이입한 건가. (웃음)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나한테 굳이 왜 이렇게 잘해주지?”라는 느낌을 받은 게 캐릭터와 스토리의 시작이 됐다. 배우와 만나자마자 무언가를 구상한 경험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선배님께 드렸던 사극영화 시나리오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사이에 <거미집>과 <1승>으로 선배님과 인연을 맺으면서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해 잘 알게 됐다. 선배님과 거의 매일 통화하고 만나면서 자신 있게 내가 ‘송잘알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삼식이 삼촌> 대본을 드렸다. 감독은 누구나 배우의 정점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데, 박두칠은 송강호 선배님의 모든 얼굴이 농축돼 있는 캐릭터다.
- ‘삼식이 삼촌’이라는 네이밍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 송강호 선배님이 박두칠의 별명을 말도 안되는 어감으로 만들자고 했다. 삼식이라는 별명은 그에게 프라이드다. 그리고 해외에서 ‘오빠’를 완벽하게 번역하는 단어가 없는 것처럼 ‘삼촌’은 한국 사회에만 있는 개념이다. 특히 남자들은 누구나 어렸을 때 삼촌을 본 적이 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다 하고 있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삼촌 말이다. 한국 근현대사, 특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삼촌은 아버지의 부재를 보충해주는 존재였다. 전통적 가부장제와 현대화가 맞물리면서 생겨난 균열 안에 자리 잡은 개념이다. 동양의 봉건적 사회 시스템에서 결핍을 채우는 존재가 중국에서는 따거, 한국에서는 삼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개념이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데 미묘하게 작동한다.
-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거의 재현된 적 없는 시대다.
= 결국 내가 영화라는 극예술을 하는 목적은 우리가 사회에서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고 싶어서다. 역사는 언제나 미시적인 감정과 거시적인 시대 흐름의 상관관계를 통해 흘러간다. 역사학자들이 정치공학과 역사적 맥락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공백을 작가들은 개인의 심리를 파고들며 채워넣을 수 있다. 1960년대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만든 중요한 격변기였다. 특히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은 지금 한국인의 정체성을 만든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다. <삼식이 삼촌>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의 원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정점에 한국 근대사에서 태동한 돌연변이 삼식이 삼촌이 있다. 삼식이 삼촌과 김신의 미시적인 드라마는 결국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촉발시킨다.
- 드라마는 처음 연출했는데 어땠나.
= 힘들었다. 나도 황동혁 감독처럼 이가 빠졌다. (웃음) 나와 김태경 촬영감독, 송강호 선배님은 영화가 처음이었는데 산업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했다. 기술적으로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5개월 동안 16부작을 모두 찍었다.
- 첫 드라마인데도 여타 작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프로덕션을 진행한 것 같다.
= 영화를 연출할 때도 “감독님이 드라마보다 빨리 찍는다”는 말을 듣곤 했다.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가장 성격이 급한 사람이 송강호, 이준익 그리고 나다. (웃음) 시나리오를 쓸 때 프로덕션과 회차, 예산과 캐스팅을 계산한다. <삼식이 삼촌>은 77회차 만에 찍었다. 동시에 배우들의 평균 연기 수준이 매우 높다. 송강호 선배님은 작품을 할 때 오로지 그 생각만 하고 대사의 음을 쪼개서 하나하나 갈아 끼우며 확인하는 배우다. 그런데 변요한 배우도 비슷한 유의 욕망을 가졌더라. 잘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걸출한 연기자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 김태경 촬영감독과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그 회차에 촬영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출중한 재능들이 모인 판이라 모두에게 건강한 긴장감이 조성된 현장이었다. 배우들의 커리어에서 어떤 정점이 될 것 같다.
신연식 감독이 말하는 관전 포인트
“역사의 용광로 속에서 타오르는 인물들의 욕망과 사랑과 질투와 배신. 역사의 변곡점은 미시적인 부분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바뀐 역사는 다시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삼식이 삼촌>은 결코 잔잔한 드라마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제작 슬링샷스튜디오 / 감독·각본 신연식 / 출연 송강호, 변요한, 이규형, 진기주, 서현우, 유재명 / 채널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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