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거나 말거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년시대>는 이렇듯 독재자에 맞서 싸우는 피지배층의 이야기다. 그 과정은 아래에서 시작돼 위를 바꾸는 일종의 ‘혁명’이었고,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게 한다. 해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가 이문열의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적잖게 겹친다. 다만 충청도 사투리가 좀 더 구수할 뿐.
사실 <소년시대>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늘 맞고 사는 병태가 처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충청도 사투리였다. 불쌍해 죽것는디 말만 하면 웃긴겨. 어느 시점이 되니까 아픈데도 그렇게 웃긴 병태가 무지 강해 보이기까지 하더라. 그건 병태 개인의 혁명이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 다들 덕담을 주고받느라 바쁘다. 하지만 한두 해 속아본 것도 아니고, 내 장담하는데 올 한해도 나나 당신이나 주로 얻어터지면서 살 게 뻔하다. ‘좋은일만’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 우주의 90%가 어둠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나. 하다못해 냇가의 조약돌도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른데.
올해도 분명 365일 중에 90%(328.5일) 정도는 얻어터지면서 살지 않을까. 왜? 행복은 1t을 가져도 늘 부족하고, 고통은 겨우 1g에도 몸서리치는 게 인간이거든.
해서 올해는 좀 색다르게 실존주의(實存主義)적으로다가 새해(청룡의 해)를 맞이해 보는 건 어떨까. 공교롭게도 병태가 경태 일당에 대한 응징을 위해 쓴 가면도 ‘청룡’이었다. 올 한해도 모쪼록 얻어터지면서 살겠지만 병태가 경태의 주먹에 연신 처맞으면서도 안 아픈 듯 웃었던 것처럼 “다 때린겨?”라고 대차게 맞서보자. 그리고는 한마디 더 해주자. “그럼 인자(이제) 내 차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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