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힘차게 달려갈 줄 알았던 나는 졸업 이후, 나의 소속을 찾기 위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생각보다 빠르게 소속을 찾게 된 나였지만, 그는 꽤 오랜 시간 취준생으로 살아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래도 우리에게 핑크빛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나와 취업을 준비하는 그의 일상은 점점 평행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일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들이 늘어났고, 그럴수록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허공에 떠다니는 듯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될수록 불안함을 느낀 것은 나였다. 혹시라도 그가 내 손을 놓아버릴까봐. 그가 말했던 평균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를 놓아버릴까 봐 겁이 났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마중 나온 그였다. 상사에게 깨지고, 거래처에 깨지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그런 날이었다. 퇴근하며 회사를 막 나오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꼭 이런 날은 비까지 이런다니까.'
우산을 사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멍하니 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아주 크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빨간 우산을 든 그가 나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를 확인하자마자 그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황한 것도 잠시, 나에게 오늘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는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그는 나를 아주 꼭 안아줬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비에 젖은 풀냄새가 싱그럽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너, 나 떠나면 평생 후회할걸 나만큼 너 아끼고 사랑해줄 남자 세상에 없어"
"오빠는 아직도 나 사랑해?"
"당연한거 아냐?"
"내가 진짜 간다고 하면 어쩔건데?"
"당연히 안 놔주지. 사랑하는 여자를 왜 놓쳐."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 준다고도 말하잖아."
"남자가 사랑해서 헤어진다고 말하는 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은 버려도 그 여자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난 평생. 네 옆에 딱, 붙어서 절대 안 떨어질 거야."
다시 한번 나를 꼭 안아주는 그의 품 안 에서 나는 비로소 안정감을 느꼈다. 나는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은 버려도 그 여자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며 평생 내 곁에 있겠다던 그의 말을 믿었다. 그의 말이라면, 그의 마음이라면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단단함과 달리 주변에서는 우리의 연애를 조금은 위태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원과 취준생의 연애는 끝내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보란듯이 중명하고 싶었다. 나와 그의 결말은 당신들이 아는 그들과 다를 거라고.
비록 평행선을 달리는 우리의 일상이 계속 이어졌지만, 예전처럼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고, 나 또한 그 옆에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의 꿈을 응원했다. 그는 나 조차도 순진하다고 여겼던 나의 꿈을 여전히 응원해주고 있었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나 또한 여전히 응원하고 있었다.
가끔은 아무런 빛도 없는 터널을 몇 년째 계속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이 버거워 보였고, 지쳐보였다.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때때로 괴로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곁에서 그를 기다려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자신이 말했던 그 평범한 삶. 평균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누구보다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그는 포기보다는 끝까지 직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결과가 비록 실패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해도, 그는 도망가거나 회피하기보다는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나의 짧은 인생에서 그처럼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고, 응원했다.
꿈보다 현실을 택한 나였지만,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계속해서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였다. 그의 곁에서라면, 나도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나, 우리의 꿈이 모두 이뤄졌을 때, 우리가 서로의 곁에 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멀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했다. 봄의 절정이 만연한 교정이었다.
벚꽃 비가 흩날리며,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날,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다. 문예 창작 수업에 과제로 쓰고 있던 소설을 보며 걷고 있던 그때, 바람이 불었다. 흩날리는 수많은 벚꽃잎 사이로 내 소설의 제목이 적힌 첫 페이지가 구름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우연인 듯 운명처럼 한 남자의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저기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
"아,네."
누군가에게 비밀이라도 들킨 듯 당황한 마음으로 급히 내려간 곳에는 그가 서 있었다. 내게 종이를 건네며 살짝 미소 짓는 그의 눈웃음과 중저음 목소리까지. 순간적으로 그가 왜 내 앞에 있는지, 내가 왜 그 앞에 서 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미친듯이 뛰는 심장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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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부분들 제외하고 최대한 타이핑 해본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