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침이 오기 전인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잖아요.”
라디오에서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조울증’에 관한, 현대인의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내과 출신 3년차 간호사 ‘다은’이 새로운 과로 첫 출근하는 날,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뾰족한 심의 팬은 쓸 수 없고, (끈만 보이면 자해하는 환자가 있어) 명찰은 클립, 무조건 끈 없는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우발적으로 자해나 타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곳,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와요’(감독 아재규)가 정식 공개를 앞두고 4화까지 선공개됐다. 명신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처음 하게 된 간호사 다은이 이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새 시리즈다.
주인공 ‘다은’은 박보영이, 대장항문외과 펠로우이자 손가락 뼈를 시도 때도 없이 꺾어대며 강박증을 앓고 있는, ‘다은’에게 첫 눈에 반한 ‘고윤’은 연우진이 연기한다. 다은의 베스트 프렌드 ‘유찬’은 장동윤이, ‘다은’의 정신적 지주인 수간호사 ‘효신’은 이정은이 분했다. 고윤의 친구이자 다은과도 인연이 깊은 츤데레 ‘황여환’은 장률이 연기한다.
이들 외에도 차기 수쌤으로 촉망 받는 민들레(이이담) 간호사, 완벽주의 워킹맘 박수연(이상희) 간호사, 친밀함이 매력인 홍정란(박지연) 간호사, 정신병동 식구들 모두를 다독이는 듬직한 에이스 윤만천 보호사(전배수)까지. 탄탄한 라인업만큼 실제로 병원에 가면 있을 것 같은, 완벽한 싱크로율이요, ‘닥터 김사부’의 돌담병원 못지 않은, 실력갑 의리갑 훈훈한 팀워크다.
다은의 정신병동 입성은 첫날부터 쉽지않다. 다은이 처음 마주한 환자는 ‘1인실’에 머물고 있는 금수저 오리나. 발레를 했고, 공부도 잘 한데다, 판사 사모님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극심한 조울증에 걸렸다.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발가벗고 춤을 추거나, 망상증에 빠져 한 남자를 스토킹하기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을 사위 몰래 정신병동에 입원 시켰고, 누구보다 딸의 상태에 괴로워하고 아파하지만 정작 깊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알고 보니, 이 환자는 엄마의 말 한 번 거역한 적 없이 풍족하게 자라왔지만, 엄마의 속박 속에서 마음의 병을 키웠고 자신을 잃어버렸다. 고통의 연속 속에서 이 같은 병에 걸렸고, 모든 걸 벗어던질 때 그 행방감에 숨을 쉬고 있었다.
또 다른 환자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극심한 사회불안장애를 앓고 있었다. 상사의 가스라이팅에 심리적 지배를 받고, 사회 공포증을 앓다 폭력에 적응해버렸고, 심리적 한계에 다달아 스스로를 포기하게 됐다.
낯선 환경에 실수투성이인 다은은 매번 당황하고, 사고도 치며 자신과 정신병동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며 한뼘씩 성장한다. 수간호사 효신을 비롯한 정신병동 식구들은 처음엔 그녀의 한없는 친절함과 여린 마음에 걱정하지만, 환자들에게 깊이 공감하며 진심을 다하는 모습에 마음을 열고 응원한다.
이들은 각자의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서로를 치유하고 또 치유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에, 기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움받을 용기도 배운다. 효신의 말처럼,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도, 끝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르고 또 같다고.
메가폰은 정신병동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자칫 민망하거나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예민한 장면들, 환자들의 증상이나 행동은 동화적으로 다룬다. 판타지적인 기교를 섞어 친숙하고도 따뜻하게 다가간다. 그렇게 판타지와 현실이 공존한다. 정신병동에 대한 편견과 장벽을 넘고 친근하고도 유쾌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다가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무채색 대신 다채로운 색채들로 정신병동의 공간과 의료진의 의상을 만들어 밝은 기운을 전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강조한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도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등 다양한 장치를 활용한다. 적재적소에 터져 타오는 유머들의 타율도 좋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저마다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과 이들 간 케미도 다채롭다. 마음에 남는 대사들은 또 어떻고. 박보영을 비롯한 연우진, 이정은 등 모든 배우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기분 좋은 하모니를 이뤄낸다. 단 한 군데도 구멍이 없는, 환상의 팀플레이다.
마음의 병,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하지만 홀로는 치유할 수 없는 것. 작품은 정신병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 보편타당한 이야기로 잔잔하게 전한다. 웃음도 사랑도 위로도 충만하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픈,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진심이 듬뿍 담겼다. 이들이 전하는 파동은 서서히 점점 더 크게, 또 깊이 가슴에 와닿는다. 미소가 지어지고, 온 몸이 따뜻해진다.
밀당의 고수, 적절한 균형감,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휴먼 드라마의 정석이다. 잘 다듬어진 착한 매력이 그리웠던 요즘 딱 기다렸던 웰 메이드다. 오는 11월 3일 넷플릭스 통해 전 세계 공개.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09/0005206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