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변치 않을 사람에게
변치 않을 마음을 주는 것뿐인데.
나는 그저 연모하는 이와 더불어
봄에는 꽃구경하고
여름에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마시면서
함께 늙어가길 바랄 뿐인데..."
이 소박하고 순수한 길채의 바람에는 전제 조건이 있음.
바로 '혼인'
이건 장현이한테 했던 말에서도 드러나는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는 도련님이 내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것이라 여겨 경계했는데, 생각해 보니 도련님은 비혼인가 뭔가로 산다고 했다면서요?
응 그럼 되었지요.
도련님과 저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요.
우리는 절대 혼인할 사이가 아니니
서로 여인과 사내가 아니지요.
아니, 저는 여인이지만 도련님께서는 여인이 아니고
도련님도 사내지만 제게 도련님은 사내가 아닌 것입니다.
그냥, 돌덩어리나 풀떼기 같은 것이죠 .
그러니 우리는 서로 거리낌없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요."
+ 길채한테 혼인은 필수불가결한 것
그래서 장현이가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내게 청혼 하시는 겁니까?"
"도련님한테 시집갈 바에는
내 차라리 머리를 깎아 비구니가 되어..."
"지금 그걸 청혼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장현의 '비혼' 설정은 이장현에 대한 마음을 길채로 하여금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어. 그 마음이 점점 자라날수록 더 강한 부정을 할 수 밖에 없었지. 왜냐 이장현은 길채가 바라는 그 '혼인'을 해줄 사람이 아니였으니까.
7화에 혼인을 할 의향이 있다 말을 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의향일 뿐 확답이 아니였으니까...
길채가 다시 청혼이냐고 되물었을 때조차
"급할 건 없어요
난 아주 오래 기다릴 수 있으니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낭자는 좀
철이 들어야 하니까."
길채 입장에선 확실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주지 않는 사람...한테 절대 자기 마음을 드러내보일 수가 없는 거지.
근데 참 아이러니하단 생각이 들었던 게 이장현이 '비혼'이 아니였다면,
과연 이장현이 길채 마음에 길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훅 스며들어올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음.
처음 길채한테 이장현이 사내로 인식된 순간이
이때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런 데이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애초에 이장현이 '비혼'이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여겼기 때문이었음.
전혀 여인과 사내로 엮일 일이 없는 그저 풀떼기나 돌덩어리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경계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 틈을 타 이장현이 길채 마음에 정말 훅 들어오는 결과가 생김
그래서 원래 길채라면 하지 않았을 제안까지 하게 됐지..
"그러면 옷도 돌려드릴 겸 제가 내일 배웅을 하죠."
하여튼 '비혼'이란 설정은
장현을 향한 길채의 마음이 시작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어줬으나
한편으론 그 마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양면의 동전같은 설정이란 생각을 했어 ㅋㅋㅋㅋㅋ
뭘 적고싶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