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섬은 눈 앞으로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백색의 대제관의 옷.
엄숙한 걸음걸이.
굳게 다물린 입술.
그가 기억하던 소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땅을 닮은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걸음에
늘 미소가 맞물려있던 입술.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 눈동자.
아스달의 별이 흐르는 밤하늘을 담은 듯한
검고 깊은, 따뜻한 그 눈동자.
그 눈이 은섬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분명 은섬의 벗이자, 정인이고,
은섬의 이 긴긴 시간을 끝끝내 살아내게 한 그의 신.
탄야.
-깨어났다는 전갈을 듣고 기뻤습니다.
아이루즈의 보살핌입니다.
너의 목소리다. 탄야 너의…살아있는 목소리.
-가시죠. 총군장.
탄야의 뒤를 따라 걷는다.
이 순간이 마치 꿈과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그저, 너의 얘기를 들으며 걷는다.
-몸은 다 나은 거야?
정말 태알하가 그런 거야?
너도, 무백님도.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너의 말들 중 하나가, 거세게 나를 붙든다.
-만났어?
봤어? 니 배냇벗. 봤냐고.
나를. 찾고 있었다. 니가.
너의 마음에도, 내가 있었다.
이 기나긴 시간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로.
깨달은 순간,
이미 은섬의 품에는 탄야가 들어와있었다.
혹시나 어딘가 날아갈세라,
탄야를 꼭 끌어안는다.
탄야.
8년이었다.
아스의 대륙 위로 수천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너와 함께였던 날이 없었고,
단 하루도, 너없이 보낸 날이 없었다.
니가 좋아하던 꽃을 보면,
니가 사랑하던 계절이 오면,
너와 닮은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은섬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어김없이 그 곳에 니가 있고, 니가 없었다.
알려야한다. 너에게.
내가 왔다는 것을.
내가, 너에게로 왔다는 것을.
-세상, 참 재밌네. 이거 무슨 병인가봐.
이것은 우리 만의 추억. 우리 만의 암호.
순간 너의 눈동자가 커진다.
알아보겠는가 그대.
너에게 웃어 보인다.
폭풍같았던 회의의 끝.
방으로 드는 나의 뒤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제관 니르하 드십니다.
너와 나를 남겨두고, 모두가 나간다.
너와 나만의 공간.
뒤돌아본 너의 눈에도, 너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도
눈물이 어려 있다.
나에게 니가 안긴다.
어떠한 말도 없이, 흐느낌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립고, 그리워 미칠것만 같았던 너의 얼굴.
어찌, 그 긴 세월은 우리는 둘로 나뉘어 살아왔던가.
서로의 입술이 닿는다,
숨이 닿는다,
그리움이 닿아
불처럼 타오른다.
탄야!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었던가.
얼마나 보고 싶었던 그대였던가.
드디어, 우리가 다시 만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