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악귀> 애청자예요. 반갑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정말 재밌는데, 그만큼 무서워서 드라마 본 날엔 화장실도 못 가겠더라고요. 괜히 거울과 문지방 한 번씩 보고. 직접 연기한 배우도 그런지 궁금했어요.열심히 했죠. 특히 과거 신은 글로만 보고 현장에서 영상으로 처음 접하는 거니까, 시청자 입장에서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악귀> 반응이 좋았어요.감사하게도 많이 사랑해 주셨어요. 만드는 입장에서는 시청자들이 흐름을 놓치지 않을지, 재미있어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시청했죠.
우려했던 이유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한국형 오컬트 장르여서일까요?쉽게 내용을 전하는 게 아니라 사건이나 인물을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는 미스터리 장르니까요. 너무 쉬우면 아쉬울 것 같고, 어려우면 단점일 것 같았어요. 그런 지점을 항상 고민하면서 ‘여기선 쉽게 표현해야 하나?’, ‘이런 건 나중에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하나?’ 계속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어떤 지점을 택했는지.매번 조금씩 달랐어요. 어떤 신에서는 내가 느낀 극 중 캐릭터 ‘염해상’의 마음을 담아 쉽게 표현했고, 또 어떤 신에서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작품의 방향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절제하기도 했죠
민속학 교수 염해상은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에요. 어릴 적부터 악귀를 보기도 했고요. 인물에 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민속학이라는 학문에 깊이를 더하기보다는 해상의 정서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악귀를 쫓아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악귀를 없애러 가는 여정 중에 만나는 사건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고민했죠.
그렇게 느낀 염해상의 정서는 어떤가요?평범한 사람이라면 지나온 아픈 기억이나 억울하게 죽 은 이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죠. 하지만 해상은 그보다 더 짙고 깊은 마음을 갖고 있어요. 특정 인물이 곧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생명의 소중함과 고통에 대해 느끼는 무게가 큰 인물. 그래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못 구하면 아파하기도 하죠.
악귀를 보게 됐지만 그걸 통해 오히려 사람을 살리게 된 심오한 인물이네요. <지리산> 이후 김은희 작가와 재회한 소감도 묻고 싶어요.감사하죠. 작품을 함께한 뒤 보통 다시 만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그래서 더 최선을 다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감독님과 공유하고 적용하는 편이라고 알고 있어요. <악귀>에도 본인의 영감을 반영한 부분이 있나요?큰 서사는 작가님이 탄탄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한 신 한 신 또는 한마디 한 마디 정도만 덧칠했어요. 한 예로, 해상을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히어로가 아닌 일반 사람처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2화 촬영 때 집 안에 갇힌 아이를 구한 뒤 얼음찜질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였으면 했어요. 달리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거나 힘이 무지 세지는 않은.
또 그런 장면이 있을까요? 시청자로서 비하인드를 들으니 재밌네요.아이를 구하고 절에 가는 신이요. 사건 이후 정성을 드리는 해상의 모습을 통해 한 명 한 명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염원이 관객에게 조금 더 보였으면 했어요.
장르가 장르인 만큼 촬영 현장도 공포스러운 분위기였을 텐데, 고충은 없었나요?귀신은 괜찮은데, 벌레는 좀 겁나요. 으스스한 공간 에서 분명 오싹한데, 실질적으로 연기하는 데는 저런 애들(촬영장 한편에 있던 큰 벌레를 가리키며)이 더 무서워요. 폐가에서 물건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들추면 그 밑에 벌레들이 있어요. 그땐 저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거죠.
염해상이 차에서 매일 듣는 음악도 인상 깊었어요. 진도씻김굿이었죠.처음 들을 땐 시끄럽고 적응이 안 됐는데, 해상을 만나면서 듣다 보니 또 편해졌어요.
일상적 음악은 아니니까요. 실제 음악 취향은 어떤가요?취향이 딱 정해져 있진 않아요. 광범위하게 듣는데, 숨은 인디 가수 노래도 좋아해요. 우연히 들은 노래를 좇아, 가수를 좇아 파도를 타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돼요. 최근에는 허회경이란 가수가 좋아서 많이 들었어요. 그중 ‘그렇게 살아가는 것’. 매번 그렇진 않은데 작품을 하다 보면 나만의 OST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해상은 이 노래를 OST로 생각했어요.
어떤 점에서 해상의 OST가 됐는지.가사를 들을 때 위로받는 느낌. 악귀를 쫓아가는 스릴러물이지만 작가님이 생명의 고귀함, 청춘에 대한 곱씹음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이런 노래를 들으면 작품과 맞닿은 어떤 지점이 있어요. 촬영이 끝났을 때는 김일두의 ‘나는 나를’을 들었어요. 해상이가 해상이한테 해주는 말 같아서. ‘나는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 해, 나는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라는 내용의 가사예요.
캐릭터를 연기하는 하나의 역할뿐 아니라 실제 인물처럼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어요.해상을 만나면서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안타까운 사고나 재난을 보면 그냥 안됐다는 정도의 마음을 가진 일반 사람이었는데, 해상을 만난 이후로는 그런 사건・사고가 더무겁게 다가와요. 기회가 되면 추모를 드리러 가기도 하고 발걸음을 늘렸어요.
<악귀>는 오컬트 장르라는 탈을 쓴 추리물이면서 결국은 사람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계속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 속 염해 상은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고, 약자를 구하는 현명한 어른이고요. 본인이 생각하는 현명한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매 순간 그리고 각자 위치에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어른이 아닐까요. 작가님도 가장 큰 악귀는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이라고 표현했거든요. 모든 사람이 나쁜 욕망과 싸움을 하는데, 거기서 이기는 사람이 조금은 어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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