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절절한 대사에 울컥해요. 녹화하다 울음이 터져서 NG도 냈다니까요. 대사가 너무 좋고 대본이 참 좋아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배우 김영애(65)를 울린 대본은 지난 21일 2회에서 전국 시청률 14.2%, 수도권 16.2%를 기록하며 순풍을 타고 있는 SBS TV '닥터스'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박신혜(혜정 역)의 할머니 강말순 역을 맡고 있다.
젊어서는 배운 게 없어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밥집을 하고 있는 말순은 못난 아들 자식이 재혼하며 내팽개친 손녀딸 혜정을 거둬 온 마음을 다 준다.
그런 할머니의 헌신과 사랑에 혜정은 학교를 때려치울 생각을 접고 교복을 다시 입는다. 1~2회에서 그려진 혜정과 말순의 교감은 이야기의 절절함과 개연성을 한껏 끌어올리며 시청자에게 감동을 전해줬다.
김영애는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대본을 읽을 때와 연기로 표현할 때 느낌이 또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그렇다"며 "대본을 보면서도 좋은데, 연기하고 화면으로 옮겨진 것을 보면 또 다른 좋은 게 나와 있더라. 오랜만에 이런 경험을 하는 데 참 좋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함축적인 대사가 참 절절해요. 말순이 지홍(김래원) 앞에 무릎을 꿇고 문제아인 손녀를 부탁하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울컥해서 혼났어요. 연습할 때부터 눈물이 막 나는 거에요. 너무 가슴에 와 닿잖아요."
2회에서 말순은 그동안 자신의 집 하숙생으로 편하게 대했던 지홍이 손녀의 담임이 됐다는 소식에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살면서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과거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선생은 그러면 안 되잖아. 우리 애 잘 부탁한다"고 간절히 애원했다.
김영애는 "술장사, 몸장사 하며 들풀처럼 살아온 할머니지만 삶의 지혜가 있는 할머니"라며 "그런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고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연기하고 나니 참 좋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번 말순 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할머니 역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킬미, 힐미' 등 앞선 작품이 있지만 할머니로서의 모습이 온전히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김영애는 "사극에서는 대왕대비도 많이 연기했지만, 본격적인 할머니 역할은 '닥터스'가 처음인 것 같다"며 "그래서 되게 걱정했는데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화장도 기본 메이크업만 하고 출연했는데 조명과 카메라가 좋았는지 그렇게 늙어 보이지도 않더라"며 웃었다.
"극의 흐름상 할머니의 존재가 되게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출연하게 됐는데 정말 하기 잘한 것 같아요. 너무 기분이 좋아요. 말순은 혜정의 인생에 중요한 인물이고 혜정이가 앞으로 할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죠.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닥터스'의 하명희 작가는 지난 2월 김영애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등 하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인간에 대한 따듯함이 있는 작가잖아요. 하 작가가 2회 끝나고 문자 보냈는데 '신의 한수'였다고 하더라고요. 말이라도 기분 좋았어요."
김영애는 손녀 역인 박신혜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신혜는 감성도 풍부하지만 굉장히 건강한 아이더라. 정말 예쁜 딸, 손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맞는 말 같아요. 신혜는 발이 땅을 딛고 서 있는 아이 같아요. 땅을 튼튼하게 짚고 서 있는 참 밝고 건강한 아이. 이쪽 일하다 보면 땅에서 붕 떠 있는 아이들이 많은데 신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고, 좋은 여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함께 호흡 맞추는 게 예뻤어요."
김영애는 최근 드라마 '마녀보감'에서는 대비로, 영화 '특별수사'에서는 대기업 회장 사모님 역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하지만 '닥터스'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이보다 따뜻할 수 없는 할머니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이 나이에 짧게 나와도 존재감이 느껴진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죽는 날까지 계속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 말순 할매 너무 좋은데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