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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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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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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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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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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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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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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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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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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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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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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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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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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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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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qoo.net/2716385979 (욱이 시점)
후기(리뷰) 환혼 조영 시점으로 풀어본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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