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과의 말도 안되는 스캔들로 쓰러진 치열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영양실조래요.
당연하지.
위장에 들어가는게 없는데 멀쩡하면 그건 인간의 재발견이자 과학계의 특이점,
살아있는 자체만으로 노벨상이 될거다.
치열은 한숨이 나왔다.
링겔 덕분에 체력은 조금 돌아왔지만
오랫동안 무언가를 먹지 못한 몸은 여전히 흔들거렸다.
언제부터 밥이 도통 먹히지 않았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
미슐랭. 맛집. 온갖 컨셉의 온갖 식당들을 찾아가도
한 술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영양실조로 굶고 있는 1조원의 남자.
거기에 이번의 스캔들까지.
지금의 상황이 도통 답답하기만 한 치열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한숨과 교차해서, 찰칵,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뭐하는 거야?
치열의 시선이 순간 앞에 있는 병실의 간판을 향했다.
비뇨의…학과?
아니. 아니. 잠깐. 이건 아니지. 와 이건…
진짜 아니지!
-아 쫌! 어이! 폰 줘요! 이런 장난 좀 치지 맙시다 쫌! 이거랑 나랑 또 엮을라고?
-네?
-바로 삭제하면 문제 안 삼을 테니까. 폰 내놔요.
주춤주춤 도망가는 사내를 붙잡아 폰을 보려 하는데, 남자의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뭐야, 어제 그 사진도 당신이야? 사주받았어?
-호랑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답만 하는 상대에게, 더 화가 났다.
-폰 내놔봐, 폰 내놔보라고!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한 여자가 끼어들었다.
-뭐야, 당신은 또. 아 둘이 한 패야?
-일단 놓고 얘기해요. 네?
-됐고! 오늘 내가 좀 기운이 없어서 그러니까, 사진만 바로 삭제하면 문제 안 삼을 테니까. 폰 내놔요.
-일단 놓고 얘기해요. 아니 애가 놀래잖아요!
퍽.
여자의 두 손이 닿은 순간, 치열의 시야가 휙, 돌아갔다.
왜..갑자기 천장이 보이고.
왜..갑자기 나는 하강하고 있는 거지?
아.
말 그대로, 한 방에 쓰러진 거구나.
행선은 당황했다.
그냥 동생에게서 남자를 떼내려던 거 뿐인데.
물론 한 때 그녀가 국가대표 선수였다지만,
남들보다 힘이 좀 더 셀 순 있지만
이렇게 쓰러진다고?
성인남자가?
한 방에 나풀나풀.
종이인형이야 뭐야.
잠시, 주변의 수군거림 사이에서 치열과 행선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치열의 귀에,
군중 중 누군가가 핸드폰 녹화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고생 스캔들. 비뇨의학과. 여자에게 한 방에 쓰러짐.
이 3개가 하나로 엮이고 나면,
일타강사 최치열 앞에 무슨 수식어들이 붙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치열은 가장 빠른 해결책을 택했다.
도망가기로.
하지만 그는 이 한 번의 선택이,
세상에서 가장 끈질긴 여자가 그를 따라오게 할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지금, 치열의 인생에서 가장 빡센 문제풀이가 시작되었다.